허난성

 


[image] 중화인민공화국
河南省(Hénán Shěng

허난성 | Henan Province

[image]

성정부 소재지
정저우시 진수이구 진수이둥로 22
지역
중난
면적
167,000km²
하위 행정구역
18지급시 16현급시 82현 50개구 1892향진
인구
9,532만 4,200명
인구밀도
570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왕궈셩(王国生)
성장
천런얼(陈润儿)
HDI
0.725 (2017)
GRDP
$7,266억 500만 (2018)
1인당 GRDP
$7,579 (2018)
행정구역 약칭

ISO 3166-2
CN-HA
홈페이지
1. 개요
2. 기후
3. 역사
4. 중국 내 부정적 인식
5. 중국의 바이블벨트
6. 여담
7. 주요도시
8. 출신 인물
8.1. 실존 인물
8.2.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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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난성(하남성, 河南省). 중국 중남부에 위치한 성이다. 약칭은 예(豫, Yù)로 고대 중국의 우임금이 천하를 9주로 나누었을 때 정한 예주(豫州)에서 유래한다. 훗날 한나라가 설치한 행정구역 역시 이 이름을 이어받았다.[1] 중심 도시는 정저우(郑州) 시. 이름의 유래는 황하의 남쪽에 있다는 의미다. 중국 8대 고도(古都) 중 9개 왕조의 수도 뤄양, 북송의 수도 카이펑, 5개 왕조의 수도 정저우, 7개 왕조의 수도 안양 4개 도시가 있는 중국사의 중심과 같았던 지역이다.[2]
면적은 167,000km²로 남한의 약 1.6배 정도이며, 인구수는 2017년 기준으로 약 1억명으로 중국 3위의 크고 아름다운 인구를 자랑한다. 9640.0万人(2019年) 사실 인구 1위인 쓰촨 성이 충칭 시가 떨어져 나간 후 3000만 명 정도가 인구에서 빠져나가면서 1997년부터는 허난 성이 중국에서 인구 1위였는데 경제발전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 산둥 성광둥 성에게 추월당해 현재는 3위이다.

2. 기후


중국 중남부인 북위 32~36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 거의 전부가 고도가 매우 낮은 평원지역이다. 중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역이다. 성의 남북 간 기온차가 크지 않으며 1월 평균기온은 -2~2°C도 정도이며 7월 평균기온은 25~29°C, 연평균기온은 13~16°C 정도 한다. 강력한 한파가 올 때는 -19도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으며 강력한 폭염이 올 때는 43도 까지도 올라간다. 대충 겨울은 우리나라의 남부지방과 비슷하며 여름은 좀 더 덥다.
쾨펜의 기후 구분상으로 우리나라 남부 내륙과 같은 Cwa이며 일부는 Cfa 이다.

3. 역사


얼리터우, 은허가 허난성에 있다.
이곳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화 문명의 발상지다. 좁은 의미에서의 중원(中原)이 이 지역을 가리킨다. 거의 대부분의 중국 지방은행 이름에는 지역명을 붙이는데 여기 은행은 당당히 중원은행 이름을 쓴다. 게다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곡관 서쪽 진나라는 미개한 이민족이 사는 동네 취급을 받았고 그 수도인 장안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우임금이 9주를 정했을 때부터 중주(中州), 신주(神州)라고도 불렸고 주례(周禮)에도 음양이 조화하는 곳, 천지가 화합하는 천하의 중심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 지금도 중국 8대 고도(古都) 중 4개[3]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오악 중 중악 숭산이 여기에 있다. 세상의 중심을 자칭하는 중(中)국에서도 허난이 중심이라는 자부심은 엄청나다.
전설시대 하상주부터 중원은 명실상부한 천하의 중심이었고 초한쟁패기성고 전투, 광무제곤양대전, 삼국지호로관 전투와 관도대전 등 굵직한 전투들이 허난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남송, 그리고 원나라부터 북방 유목민 왕조의 남하와 강남의 본격적 개발로 중국의 정치, 경제 중심은 동쪽 하북과 강남으로 이동했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붕괴된 후에는 북양군벌직예군벌의 실세 우페이푸의 지배를 받았으며 국민당의 1차 북벌 이후 펑위샹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중원대전 후에는 국민정부의 직할령이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1939년 황허 홍수와 전쟁의 여파로 허난 대기근이 발생해 수백만명이 아사하기도 했다. 지금은 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 중심부에서는 가난한 지역으로 남아있다.

4. 중국 내 부정적 인식


한국으로 말하자면 유구한 역사성은 경주시급에 해당하는 곳인데... 이상하게도 이미지가 굉장히 나쁜 곳. 수많은 지역드립에 시달리는 동네북이며, 호남지방에 대한 차별과 비슷하다. '허난 성 사람에는 도둑놈이 많다', '음흉하다', '거짓말쟁이' 정도는 약과고,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허난성이다!"라는 인식마저 퍼져있을 정도다. 실제로 중국 최다 연쇄살인범 양신하이가 이곳 출신이다. 허난 사람의 이력서는 받지 않는다는 채용 공고가 버젓이 나올 정도니 말 다했다. 그리고 짝퉁은 허난인들이 만들어낸다는 인식, 사기꾼이라는 인식도 크다. 즉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중국인에게 가지는 부정적 속성들을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허난인들에게 다 투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어찌나 차별이 심했는지 2001년부터 허난 성 정부가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라는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했다.
허난 성에 대한 이토록 이미지가 나빠진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 허난이 전통적으로 중국 각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던 만큼 상업이 발달했고, 상인들을 사기꾼에 가깝게 인식하는 전통적인 시선 때문에 허난 사람들에 대한 간사한 이미지가 고착되었다는 설. 실제로 허난 성은 춘추 전국 시대의 정나라[4] 시절부터 상업이 발달한 곳으로 유명했다. 장사꾼을 의미하는 상인이라는 말은 상나라 사람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는데 상나라가 위치한 지역 역시 허난 지역이다.[5]
  •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적 역학 관계 때문이라는 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 지역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는데, 덕분에 춘추시대부터 주나라를 밀어내고 북쪽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초나라주나라 중심의 봉건 질서를 지키려는 진나라 세력이 맞붙는 지역이 됐다. 덕분에 이 지역에 있던 정나라 같은 소국들은 그때 그때 초나라 편에 붙었다 진나라 편에 붙었다 하면서 나라를 이어갔는데, 심지어 한 해에 세 번 항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덕분에 당대에도 정나라는 못 믿겠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6]
  • 풍속 때문이라는 설. 위 두 설과 연관되는 설인데, 정나라는 춘추시대 이후로 풍속이 음란하기로 유명했다. 시경에서도 대놓고 '정나라에는 음란한 노래가 많다'고 깠을 정도.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탕녀의 대명사로 통해 온 하희 역시 정나라 출신이다.
  • 송나라 무장 악비를 모함하여 죽인 간신 진회가 허난 성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설. 하지만 실제 진회는 허난 출신이 아니고[7], 오히려 악비가 허난 출신이다[8].
이런 사유 말고도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 혜택을 입은 중국의 동부, 남부 해안 지방에 비해 허난이 경제적으로 뒤처지다보니, 허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 지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허난은 중국 성들 중 인구가 항상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경제가 뒤쳐지자 밖으로 유출되는 인구도 많았다. 문제는 타 지역에 빈손으로 갔던 허난 사람들은 주택을 구하기 전까지는 도시에 빈민촌을 이루며 살게되다 보니 당연히 이들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고, 거기에다가 해당 지역의 좋은 일자리도 현지인이 이미 차지하게된 경우가 많다보니, 이들은 당연히 3D업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고, 수익이 적으니, 빈민의 위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거기에다가 허난 지역에 대해서 안좋은 편견마저 있으니, 간신히 구하는 3D업종도 금방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덕분에 허난인들은 타 지역에서 빈민층 중에서도 최하위를 차지했고, 이러다보니 막장인생들이 출현하면서, 허난인들에 대한 편견이 더 가속화되고, 빈민의 지위는 또 세습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중국 전 지역에서 빈민층을 차지하는 것은 허난 출신들이 많다. 오죽하면 생계를 위해 정부의 정착 지원금을 받고자 티벳(서장)이나 위구르(신강)로 이사가려고 하는 허난인들이 있다.
어쨌거나 어찌나 이런 부정적인 편견이 심했던지 별의별 도시전설이 많다. 이런 한 중공군 장성의 조카 부부가 허난 성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당지의 건달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1차적으로는 군인 출신이라서 건달들을 물리쳤지만, 당지의 공안을 빽으로 업은 건달들은 결국 보복을 감행하여 이들 부부는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노발대발한 장성은 이곳을 포격으로 초토화시키겠다는 초강경 발언까지 했고 덩샤오핑이 가까스로 진정시키긴 했지만 대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른바 83년 엄타(严打) 운동을 전개하였다. 문제는 이에 관련된 법이 진나라 빰치는 수준으로 엄격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사법처리도 간략하게 했는지라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나갔다. 어느 정도냐면, 남녀 여럿이서 밤늦게까지 파티를 열고 즐기면 건달죄로 처벌받는데, 그 중 파티를 연 사람은 사형감이다. 이렇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사고를 친 허난 사람들을 전국적으로 미워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허난 성 사람에 대한 편견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므로 이 역시 도시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2001년부터 허난 성, 안후이 성, 후베이 성, 산둥 성 등 4개 성에서 67명을 살인하고 25명을 강간한 중국 역사상 최대의 살인마 양신하이(杨新海)가 2003년 11월 검거되었을 때 허난 출신인 것이 밝혀지자 역시 허난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당시 황융(黄勇)이라는, 17명의 청소년을 자신이 특수 제작한 도구를 이용해 교살한 역시 허난 출신의 다른 살인마가 같이 검거되면서 그런 분위기에 더욱 불이 붙기도 했다.
현대 중국 최초의 에이즈촌은 허난에서 시작되었다. 이 곳은 지금도 외국 기자의 취재 등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데, 현재는 후베이 성 등에도 생겼다고 한다. # 이렇게 . 2000년대 후반 이전에는 중국에서 매혈을 하면 꽤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었는데(물론 소득 수준의 차이는 감안해야 된다), 특히 허난성은 발전이 뒤쳐졌기 때문에 많은 허난성 주민들에게 매혈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간단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더욱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혈액원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고, 이 때문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매혈을 하다 보니 에이즈가 퍼지게 된 것인데 에이즈에 걸린 피해자가 10만여 명 정도에 달한다. 그렇지만 타 지역 주민들은 에이즈가 성관계를 하다 옮는 병이나 동성애자들이 문란한 성생활을 하다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때문에 허난성 주민들에 대한 인식이 더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 장기밀매와 관련된 괴담이 많은 지역인지라, 중국인들은 허난으로 가는 것을 매우 꺼려 한다고. 오죽하면 넓디 넓은 중국 땅에서 허난 들어가기 무서워서 멀리 돌아간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허난 성의 이러한 차별과 편견이 허난 성 지역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앞서 서술했지만, 이곳은 중원(中原) 지방이다 보니,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허난 성에 대한 편견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안 몰려온다고 한다. 또한 허난 성이 해외에 관광 홍보를 했더니, 타 지역 중국인들이 '허난 성이 외국인들 인신매매하려고 광고한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몇몇 악질들은 허난 성 관광 홍보에 테러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중국인들에게 허난에서 난 물건을 선물로 주면 면전에서 온갖 욕을 먹는다는 얘기도 있다.
'허난 사람(河南人)'이라는 말은 중국어로 못 믿을 사람, 속내가 시커먼 사람이라는 말과 같은 지역감정을 담고 있는 말이며, 실제로 공산당원이 되려 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할 때 허난 출신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2007년 기사.
이외에 남방, 둥베이 지방 출신들 역시 사회적 차별을 많이 받는 실정이란다. 그나마 둥베이인들에 대한 인식은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 "거친 성격이 매력적이다." 등, 인식이 좋은 면도 있기 때문에 허난 출신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둥베이 출신들이 아무리 나쁘게 묘사한다 해도 "허풍이 세다", "고압적이다", "시끄럽고 예의가 없다", "잘 안 씻고 더럽다"[9], 이 정도이다. 그러나 유독 허난인들에 대해서는 "더럽고 역겹다.", "음흉하고 잔혹하다.", "신뢰할 수 없다", "포악하고 흉악범죄를 밥 먹듯이 저지른다" 등 아예 노골적인 혐오를 하며 위험분자 취급이다. 거기에다가 중국인들 사이에서 "허난인을 혐오 안하면 왕따당한다"라는 말까지 돌아다닌다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이다.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구단인 허난 젠예서포터즈들 역시 난폭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영향 때문인지 선수단의 성향도 비슷한 모양인데 중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B팀 감독인 박태하허난이 유독 거친 축구를 즐기는 팀이라고 까지 말했다. 한국 전지훈련을 와서 대구 FC와 벌인 연습경기에서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다가 끝내는 주심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 도중 선수단이 철수해버리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2019년에는 허난성 출신이라는 이유로 회사 서류선고에 불합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 하여튼 한국, 일본의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지독한 수준. #

5. 중국의 바이블벨트


참고로 기독교 교세가 강한 곳이다. 중국 판 바이블벨트에 허난이 들어간다. 물론 당연히 사이비 종교들도 판을 치는데 덩 씨 여인이라는 여자를 예수의 재림이라고 주장하며 신으로 숭배하는 동방번개교 내진 전능신교[10]라는 사교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국내 이주한 중국인들이 서울 구로구부천, 인천, 김포 일대에도 퍼뜨려 서울 온수동에는 얘네 교회가 버젓이 있다.[11] 한국어중국어로 된 찌라시도 경인선 전철역들에 뿌리기도 한다.
당연하겠지만 중공은 이들에게 기독교를 믿지말라고 강요하는 중이며 심하면 교화소나 감옥으로 보내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6. 여담


허난 성과 상관은 없지만 베트남에도 동명의 성인 "하남 성"(省河南, Tỉnh Hà Nam)이 있다. 하노이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쪽은 면적 860km²에 인구 79만으로 사실 중국 기준으로는 지급시라고 하기엔 좀 많이 작은 행정구역이다. 반대로 허난 성에는 하노이와 한자가 동일한 하내라는 군이 옛날에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와 싸운 첫 타자인 방열의 출신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한국에도 이름이 같은 동네가 있다.
2016년에 매장량 105t에 이르는 초대형 금광과 1천 900만t의 납·아연광을 잇따라 발견하였다. #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베이알리 익스프레스 셀러들을 보면 대부분 위치가 이곳으로 잡힌다. 실제로 받아본 패키지에서도 창고 주소가 대부분 허난성 정저우로 되어있다. 아마도 중국의 중심이라 국내운송의 편의성을 위해 이곳에서 물건을 집하하는 듯 하다. 다만 국제배송을 할 경우 트래킹 조회를 해보면 허난성 화물들은 북경 국제우편교환소로 이동한 후 항공배송되는데, 북경, 상하이, 광동에서 부칠때와 달리 1일에서 심하면 1주일 가까이 국내운송으로 잡아먹기도 한다. 특히 E-Packet이나 EMS 말고 저렴한 항공우편이 국내운송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편.

7. 주요도시



8. 출신 인물



8.1. 실존 인물



8.2. 가상 인물



[1] 그 외에도 주나라양나라에서 따온 혹은 (周), (梁), (魏)이라는 약칭도 쓰이는 경우도 간혹 있다.[2] 자리잡은 나라들 임팩트가 약한 정저우를 빼고 중국 7대 고도라고도 한다. 그렇게 해도 허난성 혼자 3개나 있다.[3] 낙양(뤄양), 개봉(카이펑), 정주(정저우), 안양.[4] 성도인 정저우 시 위치에 있었던 곳이다.[5] 나라가 멸망한 후, 상나라 사람들이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야 해서 장사꾼을 상인이라고 불렸다 한다. 게다가 굳이 장사꾼이란 직업적 특성이 아니라도 멸망당한 나라의 국민, 즉 피지배 민족이니 위상이 낮은것도 당연할 것이다. 실제 전국책 등 춘추전국시대의 자료들을 보면, 상나라의 후손들이 세운 송나라 사람을 심하게 까는 경향이 있다. 고사성어에서 등장하여 까이는 주인공은 송나라 사람인 경우가 많다. 다만 당시 송나라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현대 중국인들이 허난 사람들에 대한 인식(간사함, 악랄함)과는 반대로 어수룩하고 멍청하다는게 보편적이었다.[6] 그런데 정나라는 엄연히 주나라, 진나라와 같은 희성 제후국이고 서주 시대부터 있었던 나라인 만큼 역사도 오래되었다. 당시 중원 국가들 입장에서 주나라 공실의 오랜 일원인 주제에 이민족 적국인 초나라에 붙었다 말았다 하는 정나라가 당연히 곱게 보일 리가 없다.[7] 실제 출신지는 강녕(江寧)으로, 오늘날의 난징에 해당되는 곳이다.[8] 이쪽은 상주(相州) 출신으로, 오늘날의 허난성 안양(安陽)[9] 이 지역의 물 부족 상황이 꽤 심한 것이 습관이 형성된 원인이다.[10] 산둥 성에서 벌어진 맥도날드 살인사건의 주범인 사교로 중국 공안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온 걸로 보인다. 주 포교대상은 국내 체류하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이지만 최근 한국인을 포교할려는 조짐도 보인다.[11] 한국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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