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1. 개요
傍觀者
주로 학교폭력이나 범죄 등에서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거나 잘못된 길을 향하고 있을 때, 도움이 필요해 보임에도 도움을 주려하지도 않고 방관[1] 하는 사람을 뜻 한다.
2. 상세
무리 내에서라면 3명만 있어도 발생할 수 있는 존재로,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느 포지션도 아니지만 이에 간섭하지 않는 제 3자의 포지션만을 유지하면 방관자라고 간주된다. 가해자 입장에선 있든 없든 크게 상관 없지만[2] 피해자 입장에선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원망스러운 존재로 비춰진다.[3] 다만 방관자 입장에서도 방관자 입장을 고수해야만이 볼 수 있는 수혜가 있긴 하다.
- 추가로 가해에 휘말리지 않는다.
특히 집단괴롭힘이나 집단 따돌림 현장에서 방관자가 나오기 쉬운 이유. 방관자가 협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간 가해자가 그 사람도 함께 싸잡아서 제 2의 피해자로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집단괴롭힘/집단따돌림 상황을 더욱 공고히하고 다른 이들을 방관자 혹은 동조자가 되게 유도한다. 가정에서도 부모 중 한 쪽이 가해자일 경우 다른 한 쪽은 방관자가 되는 일이 은근히 흔한데, 특히 가정 내의 약자라면 자신도 가해자인 배우자의 가해에 휘말리기가 무섭거나 꺼려져서 결국 자식들의 학대를 사실상 방관하는 구도로 흘러가기도 한다.
- 가해-피해 구도에 간섭할 때 수반되는 소모감이나 부담감을 겪지 않는다.
똑같이 위계가 평등한 집단 내 소속원(EX. 같은 반 학생)이든, 가해행위에 간섭하여 제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계가 높은 소속원(EX. 담임선생님)이든 간에 일단 가해-피해 구도에 간섭해 제지하고 상황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따라올 여러 사항들에 대한 소모감과 부담감을 느끼기 싫어서 방관자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방관자는 신경 끄고 내 할일만 하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지만 한 번 간섭하는 협자가 되면 그 이후의 중재자 포지션으로써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괴롭힘, 따돌림, 악습 등은 협자가 하나 끼어든다고 해도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어서 결국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데, 그런걸 달가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게다가 간섭한다고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중재자로써 해결하려고 했던 이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갈 여지가 있기에 부담스러워서 방관자를 택하기도 한다. 물론 학생이라면 큰 책임이 물려지지 않지만 선생이나 학교 높으신 분들처럼 한 집단을 관리해야하는 관리자인데도 의도적으로 방관했다간 책임소재가 돌아갈 여지가 있긴 하다.
- 자신의 일이 아니니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방관자는 결국 제 3자이기 때문에 가해-피해 구도라던가 범죄자 등에게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왠만해선 피해볼 확률이 직접 개입시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해결하려고 들지 않아도 상관 없이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유 하에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지들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식으로 라며 선을 긋고 피해자들이나 범죄를 외면하기도 한다.
- 도와주고 누명쓰기를 당하지 않을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사례는 피해자들이 방관자가 되질 않고 협자가 되길 택한 사람들을 오히려 엿먹이는 사례가 하도 많고 잘 알려져서 결국 방관자만 늘리는 경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는데 이건 사실상 이런 협자들을 누명쓰게 만든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고 입 닫아버린 피해자들의 자업자득.
- 소속집단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
제 3의 내부고발자가 나오거나 피해자 스스로가 내부고발자가 되지 않는 한 가해자 + 피해자 + 방관자 다수의 구도로만 있으면 그 집단의 문제점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상황을 감추기에 유리하다. 이런 상황아 장기화될 경우 원조를 구하기가 어려운 피해자는 결국 계속 당하는 포지션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소속집단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외부의 추가개입으로 인해 피해보기를 꺼려하는 다수의 방관자는 해당 상황을 끝까지 감추기를 고수하는데 그러면 소속집단의 누가 까발려져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외부개입이 들어오는 등의 불이익을 막을 수 있기 때문. 더 나아가면 아예 높으신 분들이나 집단 내 권력이 강한 가해자, 혹은 집단 내 분위기가 여러 명의 제 3자들에게 방관자가 될 걸 직접/암묵적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작은 사회, 닫힌 사회등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4]
내부고발자가 잘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연계된다. 내부고발을 한다고 해도 계획한 만큼 조직에 타격을 줘서 문제해결이 된다는 보장도 낮으며, 내부고발자가 들킬 경우 원래 방관자였던 이들이 모두 함께 내부고발자를 린치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방관자들은 손 놓고 방관한 것을 제외하면 범죄나 가해-피해 구도에 직접 개입한 것이 없어서 책임질 것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방관행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매우 크다. 다만 이런 점이 미성년/성인 불문하고 특정 집단 내의 괴롭힘이나 따돌림과 맞물릴 경우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게 부지기수이다. 다만 이들이 딱히 기존의 소속집단 내의 가해-피해 구도 등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방관자 자세를 고수했는데도 추가로 찍혀서 피해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다.[5] 역으로 단순 방관자에서 벗어나 가해자의 동조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제법 발견된다.작은 사회, 닫힌 사회등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4]
내부고발자가 잘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연계된다. 내부고발을 한다고 해도 계획한 만큼 조직에 타격을 줘서 문제해결이 된다는 보장도 낮으며, 내부고발자가 들킬 경우 원래 방관자였던 이들이 모두 함께 내부고발자를 린치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집단따돌림이나 집단괴롭힘을 막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로 지목된다. 집단 내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들이 방관자가 되려는 경향성이 높을수록 집단따돌림/괴롭힘이 발생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심화되지만 정반대일수록 그런 것들이 발생할 확률이 어느 정도 내려가기 때문. 그래서 집단 내에서도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이런 상황들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건이나 사고현장 같은데서도 방관자가 많을 경우 피해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지만,[6] 피해자를 방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사고현장의 해결이 쉬워진다.[7]
3. 관련 문서
[1] 傍觀 무슨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고만 있는 것.[2] 그래도 방관자가 방관자인 채로만 있는게 가해자에겐 유리하다. 자칫하다가 방관자가 입장을 바꿔서 피해자에게 직, 간접적인 조력을 넣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귀찮아지기 때문.[3] 특히 방관자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다면 원망감과 배신감은 배가 된다. 그런데 의외로 방관자가 피해자의 가까운 친인척이나 지인이고 근거리에 있었는데도 고의적으로 방관자가 되는 사례도 제법 많다는 것. 가정폭력, 학교폭력, 왕따 사례에선 의외로 가까운 지인이 피해자의 방관자로만 남은 사례들이 흔히 발견된다.[4] 특정 구역같은 경우는 경찰조차도 범죄의 방관자가 되는 경우가 흔할 정도다. 사실 학교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한데, 같은 학생에게 사고친 가해자가 나올 경우 학교 이미지가 당연히 망가지기에 관계자들이 최대한 쉬쉬하면서 고의적으로 방관자 태세를 유지한다.[5] 애초에 대다수의 방관자는 현재의 집단괴롭힘이나 집단따돌림, 악폐습의 피해자보다 안전한게 분명히 사실이지만, 이런 류의 상황들을 당하는 피해자도 특별히 진짜 당해야 마땅할 큰 이유가 있어서 찍히는 경우는 낮으며 보통 정말 오만가지 이유로 제 3자에서 찍혀서 피해자가 되는게 부지기수다. (다만 피해자가 주로 집단 내 강자기보다는 약자일 확률 하나는 매우 높다) 즉 지금은 방관자여도 언제 피해자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집단괴롭힘이나 집단따돌림 가해자들 중엔 그냥 만만해보이는 녀석이나 별다른 모난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순전히 기분에 거슬리는 녀석이란 이유 하나로 제 3자를 자신들의 타깃으로 삼는 사람들도 상당하기 때문.[6] 방관자 효과에 여러 사례가 나와있으니 참고. 이 예시 중 하나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살해, 시신은폐까지 하는 등 완전범죄를 시도했던 심각한 사건이었는데다 사정을 아는 이가 사실 100명 정도 있었으나 신고조차 한 사람이 1명도 없고 모두 방관자가 되길 택했기에 가해자들이 노리던 것처럼 완전은폐될뻔 했다. 사건이 드러난 것도 방관자들 중 하나가 나중에서라도 생각을 바꿔 고발자가 된 것도 아니고, 담당형사의 말실수에 가해자가 반응해서 진상을 터는데 영향을 줬다는 전말이 뒤에 있다.[7] 대표적으로 한국 포함 세계 각국에서 종종 보고되는 지하철 참사에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나서서 몸으로 지하철을 떠밀어 사람을 구하는 사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