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공
1. 개요
龐德公
(? ~ ?)
후한 말 삼국시대의 은사.
양양 사람으로 방통, 방림의 숙부이자 제갈량의 사돈이며 방산민의 아버지.
[1][2]
2. 생애
현산 남쪽에서 아내와 살면서 농사를 지었으며, 유표가 여러 번 청했지만 유표가 벼슬을 하지 않으면서 후세에 무엇을 물려주려 하냐고 묻자 세상 사람들은 위험함을 물려주지만 자신은 편안함을 물려준다면서 거절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어 사마휘를 수경, 제갈량을 와룡, 조카 방통을 봉추라고 했다.
방통(龐統)이 나이가 어렸을 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오직 숙부 방덕공만이 그를 중히 여겼고 방통이 18살(또는 약관의 나이인 20살) 때 사마휘를 만나게 했는데, 사마휘가 덕공은 진실로 사람을 볼 줄 안다면서 덕공의 조카 방통을 정말 훌륭한 덕(聖德)을 지닌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제갈량이 집에 찾아올 때 침상에서 절을 하거나 사마휘가 형 대접을 하거나 방덕을 찾아갈 때 누가 손님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며, 사마휘가 방덕을 방공이라 불렀기에 사람들은 방공을 이름으로 알았다고 한다. 후에는 아내를 데리고 녹문산으로 들어가 약을 캐면서 살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며, 아들 방산민이 제갈량의 작은 누나와 결혼해 제갈량과는 사돈 사이로 사마휘보다 10살, 조카 방통보다는 15살 많다고 한다.
사마휘가 방덕공과 일찍이 교유를 튼 것이 면수를 건너다 만나게 되었는데 방덕공이 올라가 선인의 묘에 제사지낸다고 하자 덕조가 서둘러 그의 집으로 가서 방덕공의 아내와 자식들을 불러내고는, 서둘러 상을 차리게 하면서, 서원직이 곧 손님이 오실 것이니 나더러 가서 방공에게 얘기하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자 방덕공의 처자가 나란히 늘어서 당하에서 절하고는, 분주히 준비를 하였다. 조금 있다가, 방덕공이 돌아와서, 바로 들어와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누가 온다는 손님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마휘의 나이는 방덕공보다 열 살 적어 그를 형으로 섬기며 방공(龐公)이라 불렀으니, 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방공이 방덕공의 이름인 줄 알았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3. 미디어 믹스
3.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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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등장은 없지만 방통이 등장할 때 그 일족으로 언급은 된다.
[1] 동양에서 '공(公)'이라는 경칭은 성에 붙이거나(이 공), 별호에 붙이거나(충무공), 관칭에 붙이는 것이지(시중공) 성명이나 이름에 붙이는 예가 없으므로 방덕공이 '방덕+공'일 리가 없다. 아래 요코야마 삼국지에서 '방덕(龐德)공'이라 한 것도 번역자의 착오일 뿐이다. 이전 작성자가 근거로 든 《송서》에서는 방덕공의 성인 '방'에 '공'자를 붙였을 뿐인데 이것이 '방덕공이 어쩌면 방덕일 수도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성립하려면 (위의 장수 방덕이 아니라) 양양 사람 방덕공을 '방덕'이라고 지칭한 자료가 존재하거나, 《송서》에서 예법에 어긋나게 성명 뒤에 '공'을 붙인 다른 예가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2] 《양양기(襄陽記)》에서는 사마휘와 방덕공이 만나는 대목에서 사마휘를 '덕조', 방덕공을 '덕공'이라고 칭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덕공은 이름 또는 자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