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메이도프

 


1. 개요
2. 생애
2.1. 폰지 사기


1. 개요


버나드 로렌스 "버니" 메이도프
Bernard Lawrence "Bernie" Madoff
(1938년 4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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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증권 거래인, 유대계 대학 이사장을 역임한 유명한 유대계 미국인이자,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주동자.

2. 생애


메이도프는 미국에서 인정받는 투자자였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투자를 해 자수성가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건 메이도프 가족재단을 만들어 각종 자선활동을 하며 여러 단체에 매년 막대한 양의 기부금을 지원했고 자신의 아들이 암에 걸렸을 때 5억 달러를 암 연구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능력 좋고 인격도 훌륭한 인물로 모두에게 존경 받으며 살고 있었지만 미국이 대침체를 겪게 되고 진실이 드러났다.

2.1. 폰지 사기


메이도프는 주식 브로커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주식 투자를 했으나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고 생각을 바꿔 돈이 많은 투자자들을 찾아 나섰다. 메이도프는 유대인이었고, 폰지사기라는 것이 발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계의 롤모델처럼 취급받았다. 이 때문에 부유한 부자들이 모이는 장소들을 찾아가 자신이 다른 투자자들에게 인정받는 주식 브로커라고 하며 자신에게 투자를 하면 돈을 불려서 매년 10%의 수익률을 보장해 주겠다고 하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신용을 기반으로 할 수 있었고, 투자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유대인이었다.
메이도프는 돈을 투자받은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러 투자자들에게서 투자금을 받고 원금의 10%로만 꼬박꼬박 돌려줬을 뿐이다. 하지만 메이도프를 믿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메이도프의 명성을 믿고 원체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했으며 원래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갑자기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많지 않아 메이도프의 사기행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년을 그런 식으로 사기를 치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원금 상환을 동시에 요구하였고 동시에 이들에게 줄 돈이 없었던 메이도프는 결국 경찰에게 자수하여 사기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피해액은 약 650억 달러에 달하며 스티븐 스필버그, 케빈 베이컨, 뉴욕 메츠의 구단주 프레드 윌폰 같은 유명인사들도 메이도프의 고객이었는데, 이들의 상당수도 유대계였다. 많은 투자자들은 비관하고 자살을 택했다.
메이도프는 법원으로부터 150년 형을 받고 감옥에 복역중이며 장남 마크 메이도프는 사람들의 비난과 민사소송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1]했고 차남 앤드루 메이도프는 암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사기 행각을 금융위기 전까지 몰랐다고 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메이도프는 동료 수감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뉴욕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콜롬보 패밀리 두목의 도움을 받아 교도소에 적응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피아/기타 문서 참고.
[1] 사건 당시 현장 상황이 매우 비참했다. 부인이 외출 한 사이 마크 메이도프는 두살난 아들을 거실에 두고 방에서 자살했고 자살 직전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어 장인이 마크의 집을 찾아갔다가 시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