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릉
1. 개요
樊陵
(? ~ 18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덕운(德雲). 번영[1] 의 손자.
남양군 호양현 사람으로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다가 거절당했으며, 182년에 하남윤을 지냈고 영락소부를 지내다가 환관에게 뇌물을 바쳐 188년 5월에 태위가 되었다가 6월에 파직되었다. 환관들이 189년에 하진을 죽이자 사예교위에 임명되었다가 8월에 원소가 군사들을 이끌고 궁궐을 공격하자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십상시의 난 때 후한서 효영제기에서는 원소가 억지로 병사를 수습해 번릉, 허상을 비롯해 환관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하진전에서는 가짜 사예교위라는 서술과 함께 원소와 원외가 조서를 고쳐 허상과 함께 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십상시들이 기습적으로 하진을 죽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반 환관파의 거물이었던 원소와 왕윤이 제각기 사예교위, 하남윤을 맡아 수도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하진을 살해한 직후 원소,왕윤을 역적으로 몰아 지휘권을 박탈하고 수도의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인사로 여겨지나 원소에게 선공을 맞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부자(傅子)에서 영제 때 관직을 팔아서 산 사람으로 단경, 최열, 장온과 함께 무리라고 하면서 뇌물로 벼슬을 사들였다고 언급되며, 번릉은 능히 때를 잘 맞추어 재능이 뛰어남에도 뇌물을 써서 지위를 취했다고 평가되었다.
2.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조충의 일파로 영락소부로 있다가 광록대부를 지냈는데, 흑산적의 난이 끝나면서 정원, 공융을 탄핵했다. 정원은 목야로 오라는 유성의 군령을 어긴 항명, 공융은 유성에게 역모를 뒤집어씌운 무고로 탄핵한 것이다.
정원은 하진의 영도 받았다는 것이 참작되어 관직을 강등되는 선에 그쳤는데, 공융은 강한 처벌을 받을 뻔 했지만 유성이 무죄를 주장해 공융은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아 소면호(笑面虎)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할 정도로 영악한 것으로 나오며, 조숭의 저택에 찾아와 자주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나온다.
십상시들이 세력이 약해지자 사직하자는 조숭의 권고에도 관직에 남아있다가 십상시의 난 때 하진의 군사들에게 붙잡히면서 조숭의 말을 듣지 않고 후회하면서 울부짖다가 사망한다.
[1] 樊英, 경씨학을 익힌 사람으로 후한서 방술열전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