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흠
1. 繁欽
(? ~ 218)
후한 말의 인물. 조조의 부하. 자는 휴백(休伯).
글 재주, 말솜씨가 있어 어려서부터 여남, 영천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번흠이 서기에 장점이 있으면서 시부에도 능했는데, 조비에게 보낸 편지에 후전의 의미를 기록한 것은 대체로 모두 교묘하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승상주부로 임명되었다가 218년에 죽었다.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번흠이 보낸 이 후전의 의미를 기록했다고 한 것에 대해 하작은 기후전의(記喉轉意)라는 글자에서 기 뒤에 탈자가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손지조는 4글자가 한 구가 되기에 탈자가 없다고 여겼다.
그 편지에서 능후전인성(能喉囀引聲) 여가동음(與笳同音)이라는 내용을 통해 후전이라는 것은 입으로 소리를 내서 악기의 연주를 흉내내는 일종의 기술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저서로는 여위문제전이 있고 이는 문선에 그 내용이 남아있다.
한단순, 노수, 정의, 양수, 순위 등과 함께 문체가 있었지만 건안칠자와는 함께 논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1.1. 창작물에서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37, 무용 22, 지모 44, 정무 48, 인사 62, 외교 63의 능력치로 173년생으로 나온다.
2. 番歆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번묘의 형.
구진군의 공조로 구진태수 담맹이 장인 주경을 위해 주인이 되어 고급 관리들을 초청해 연회를 할 때 음악이 연주되자 번흠은 주경에게 춤을 추면서 청했는데, 주경이 일어나지 않자 번흠은 강제로 시키려 했다가 분노한 담맹에게 몽둥이로 얻어맞아 군의 관부 안에서 사망했다.
오나라에서 여대가 교주에 부임했다가 다시 부름을 받을 때 설종이 여대의 후임자로 적합한 자가 없음을 걱정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언급된다.
2.1. 창작물에서
소설 난세의 별에서는 남월에서 번묘와 함께 조영을 남월왕으로 추대해 7만의 군사를 이끌고 합포로 진격했으며, 합포에서 사섭군의 사인이 이끄는 군사와 싸웠지만 사인이 준비해둔 함마갱에 큰 피해를 입고 주태, 하만 등이 이끄는 매복해 둔 군사의 공격으로 패했다.
주태가 돌진하자 군사들에게 막으라면서 고함을 질렀으며, 호위병들은 모여서 주태에게 칼질을 했지만 주태의 군사들이 이를 저지하고 주태의 공격에 쇄골 부위가 꿰뚫려 낙마해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