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설례

 


<colbgcolor=#4eae47><colcolor=gold>'''碟禮
설례
'''
'''성씨'''
부여(扶餘)
'''휘'''
설례(碟禮)
'''부왕'''
침류왕(枕流王)
'''모후'''
왕후 진씨(王后 眞氏)
'''생몰년도'''
음력
? ~ 405년 9월
'''재위 기간'''
음력
405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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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4년에 아신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하며 태자의 귀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설례(碟禮)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제25권 백제 본기 제3 전지왕

백제의 왕족. 침류왕의 아들이자, 아신왕, 부여훈해의 동생이다. 부여첩례(扶餘諜禮) 혹은 부여접례(扶餘褋禮) 라고 쓰여진 기록도 있다고 한다. 다르게 표기된 세 글자의 음이 각각 碟(설, '''접'''), 諜('''첩''', '''섭'''), 褋('''접''')인 걸로 볼 때 '''접'''에 가까운 어떤 발음을 표기하였던 것 같다.

2. 생애


405년 큰 형 아신왕이 죽었을 때, 태자 부여전지(전지왕)는 당시 일본에 볼모로 가있어서 왕위가 바로 계승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아신왕의 아우이자 설례의 작은형인 부여훈해(扶餘訓解)가 섭정으로서 국사를 대리했다. 405년 부여설례는 진씨 세력의 지원을 받아 친형 부여훈해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군의 무장 호위를 받은 태자 부여전지가 귀국하자 여론이 동요했고, 결국 국인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