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

 

1. 攝政 (Regent)
1.1. 현실의 섭정 혹은 그 사례
1.1.1. 동양
1.1.2. 서양
1.2. 가상의 섭정 혹은 그 사례
2. 전국시대자객 聶政
3. 천랑열전의 등장인물


1. 攝政 (Regent)


군주가 위중하거나 나이가 너무 어려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에 군주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림. 또는 그런 사람. 현대의 대통령제로 비유하면 대통령 권한대행에 해당한다.
신하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도 있으며 동양의 경우는 군주의 어머니뻘인 왕대비(황태후)나 할머니뻘인 대왕대비(태황태후)가 통치하는 수렴청정과 군주의 후계자인 왕세자(황태자)가 하는 대리청정이라는 별도의 명칭으로도 존재한다. 후계 군주가 어릴 경우에는 전임 군주가 그 어린 군주의 양육을 부탁한다는 뜻인 탁고를 써서 탁고대신이라고도 부른다.
유교권은 적합한 후계자가 없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같은 가문원을 후계자로 내세웠기에 주나라의 공화 시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시피 했으나[1], 국가가 가문에 귀속되지 않은 군주제를 가진 유럽의 경우 군주의 급사[2], 국가 내부의 권력투쟁[3] 등으로 '''적법한 군주가 없는''' "공위(interregnum)"[4] 상황이 왕왕 있었고, 당연히 공위 상태에서의 섭정이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유교권과 달리 유럽에서는 기존 왕가와 혈연이 있는 가문의 가문원을 군주로 내세우거나, 혹은 유력 귀족가문에서 인물을 골라 내세우는 식으로 다른 왕조가 국가를 이어갔다.[5]
창작물 등에서는 간신들이 무능하거나 어린 군주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사용하는 클리셰도 많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일은 매우 많았다.'''
조선에서는 원상이라 하여 선왕이 사망하거나 퇴위한 뒤 차기 왕이 국상을 치루고 즉위할 때까지 국정을 책임지는 임시 관직이 있었다. 다른 섭정과의 차이점이라면 원상은 말 그대로 국왕 자체가 없을 때만 시행하는 것으로, 차기 왕이 공식 즉위한 뒤에는 수렴청정의 여부와는 별개로 원상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영국에서는 왕의 혈족이 아닌 귀족이 섭정이 되었을때는 호국경이라는 작위를 주었다.

1.1. 현실의 섭정 혹은 그 사례



1.1.1. 동양


왕대비(태후)나 대왕대비에 의한 섭정 혹은 수렴청정은 대부분 임금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통치능력이 부족하므로 이루어진 것이 대다수이다. 신라나 고려 혹은 조선 모두 말기에 이러한 수렴청정이 몰려있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어린나이의 임금이 즉위한 상황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 말기 왕권이 불안정하고 정치가 문란해지는 테크를 타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나라) (집권자) - (당시 왕) 순
수렴청정 혹은 대리청정이 아닌 경우: ★
  • 고구려 부여태후 - 태조왕
  • 백제 부여훈해 - 전지왕(★) : 아신왕의 둘째 동생으로, 아신왕 사후 조카 전지 태자(전지왕)가 일본에서 귀국하기 전까지 잠시 국사를 대리했다. 그러나 막내동생 설례쿠데타를 일으켜 훈해를 죽이고 왕을 칭했다. 다행히도 대신 해충이 비밀리에 전지 태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 신변의 위협을 경고, 전지 태자는 가까스로 왕이 되었으며 설례는 국인에게 피살당한다.
  • 신라 지소태후 - 진흥왕
  • 신라 만월부인 - 혜공왕
  • 신라 김언승 - 애장왕(★) : 원성왕의 아들이자 소성왕의 동생, 애장왕의 숙부로서 애장왕 시기 섭정이 되었다가 반란을 일으켜 그를 시해하고 헌덕왕으로 즉위했다.
  • 고려 천추태후 - 목종
  • 고려 사숙왕후 - 헌종
  • 고려 덕녕공주 - 충목왕, 충정왕 : 충정왕의 경우 섭정은 덕녕공주가 했으나, 충정왕의 생모인 희비 윤씨의 친척들도 정권을 일부 장악했다. 이에 불협화음으로 정치가 혼란해지자 원나라에서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충숙왕의 아들이었던 강릉대군을 공민왕으로 즉위시켰다.
  • 고려 공원왕후 - 우왕 : 그러나 이인임의 힘이 워낙 커서 공원왕후도 이인임의 도움 없이는 통치를 하기 어려웠고, 공원왕후 사후엔 우왕이 그에게 사실상 통치를 맡겨버려서 이인임이 섭정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조선 태종 - 세종(★) : 원래는 실권 없는 상왕으로 있으면서도 인사권군권을 꽉 잡고 있었다.
  • 조선 문종 - 세종 : 왕세자 시절 대리청정의 유형.
  • 조선 김종서 - 단종(★) : 공식적인 섭정은 아니었으나, 의정부가 정무를 도맡았으며 좌의정인 김종서가 실질적인 대표였다. 황표정사를 통해 인사권을 장악했다.
  • 조선 정희왕후 - 예종, 성종 : 예종의 경우 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이었으나 형식적이었다. 성종의 경우 대왕대비로서의 수렴청정으로, 조선의 실질적인 수렴청정은 이 쪽이 최초.
  • 조선 문정왕후 - 명종
  • 조선 인순왕후 - 선조
  • 조선 사도세자 - 영조 : 왕세자 시절 대리청정. 다만 실질적인 결정은 대부분 영조가 직접 내렸다.
  • 조선 정조 - 영조 : 왕세손 시절 대리청정
  • 조선 정순왕후 - 순조
  • 조선 효명세자 - 순조 : 왕세자 시절 대리청정
  • 조선 순원왕후 - 헌종, 철종
  • 조선 신정왕후 조씨 - 고종 : 신정왕후 조씨는 고종의 법적 어머니로 고종이 15세가 될 때까지 섭정이었고(약 3년간) 이후는 명목상 고종의 친정이 이어지지만 사실상 실권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이 좌지우지하였다. 사실 흥선대원군은 법적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공식적 직책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법적으로 고종은 효명세자와 신정왕후 조씨의 양자라는 형태로 즉위했기 때문.
  • 주나라 주공단 - 성왕(주): 동아시아사에서 섭정의 기틀이 된 사례이다.
  • 진나라 여불위[6] - 진시황
  • 청나라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 순치제
  • 청나라 동태후, 서태후 - 동치제
  • 청나라 서태후 - 광서제
  • 청나라 융유태후, 감국섭정왕 재풍 - 선통제
  • 일본의 셋쇼노미야 히로히토 황태자[7] - 다이쇼 덴노
  • 일본의 쇼토쿠 태자 - 스이코 덴노
  • 일본의 인세이[8]
  • 일본의 후지와라씨[9]

1.1.2. 서양


  • 이집트 하트셉수트 - 투트모세 3세
  • 러시아의 소피아 알렉세예브나 - 친동생 이반 5세의 정신병과 의붓동생 표트르 1세의 연소함을 명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하였으나 표트르 1세가 장성한 후 역 쿠데타를 일으켜 섭정 직에서 쫒겨나 수녀원에 종신 감금당했다.
  • 영국의 조지 4세[10] - 조지 3세
  • 프랑스 -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 -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
  •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11] - 루이 15세
  • 스페인돈 후안 호세 데 아우스트리아 - 카를로스 2세
  • 스페인프란시스코 프랑코[12] - 군주 없음
  • 헝가리후녀디 야노시, 호르티 미클로시 공작 - 군주 없음[13]
  • 벨기에의 플랑드르 백작 샤를 - 레오폴드 3세[14]
  • 유고슬라비아의 파블레 - 페타르 2세
  • 불가리아 왕국의 키릴 - 시메온 2세[15]
  • 그리스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 콘스탄티노스 2세?[16]
  • 동로마 제국의 요르요스 무잘론, 미하일 8세 - 요안니스 4세[17]
  • 바티칸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 - 비오 12세[18]
  • 멕시코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19] - 페르난도 7세?
  • 리히텐슈타인의 공세자 알로이스 - 한스 아담 2세 : 2004년 이후 현재까지 계속 섭정중이다.

1.2. 가상의 섭정 혹은 그 사례


  • 겨울왕국 - 한스 웨스터가드: 안나 공주로부터 본인 부재시의 임시 섭정자로 지명받았었다.
  •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다 - 토하라(비의 공국)
  • 던전 앤 파이터 - 네빌로 유르겐: 카르텔로부터 황녀 에르제가 납치당한 동안 지벤의 섭정직을 맡았다.
  • 디스아너드 - 하이람 버로스, 코르보 아타노: 저 혼돈 엔딩시 누명이 벗겨짐에 따라 다시 호국경의 자리에 복직되어 어린 에밀리를 대신해서 섭정을 펼치게 된다.
  • 반지의 제왕 - 곤도르후린 가문: 마지막 왕 에아르누르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의 계략에 넘어가 후사 없이 실종되어 곤도르 왕가가 단절된 이후 섭정이 통치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군주나 다름없었다. 데네소르가 마지막 섭정이다.
  • 아카메가 벤다! - 대신[20]
  • 얼음과 불의 노래 - 세르세이 라니스터[21], 아에곤 3세의 섭정들, 아에몬드 타르가르옌, 알리사 벨라리온, 샤라 아린
  • 오르텐시아 사가 - 알렉시 바르데브론: 오르텐시아 왕국에 반란이 일어난 국왕이 시해되고 후계자인 왕녀 마리엘마저 행방불명된자 어린 아들인 샤를로를 국왕으로 임명한 오르텐시아 정교회의 교황이며 샤를로 국왕의 후견인이자 섭정이 된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로르테마르 테론: 선스트라이더 왕가의 대가 사실상 끊긴 셈이라 위치가 조금 모호해졌다.
  • 은하영웅전설 -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 창세기전 3 - 버몬트 대공: 클라우제비츠(샤른호스트)가 그에게 국정을 맡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 마이트 앤 매직 6 - 윌버 험프리 : 롤랜드 아이언피스트가 행방불명 되어서 그의 아들인 니콜라이 아이언피스트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너무 어리기 때문에 윌버 험프리가 대신 섭정을 한다. 게임 초반부에 아이언피스트 성에 방문하고 니콜라이에게 말을 걸면 성에서의 생활이 지루하다면서 파티와 합류하고, 일정 기간 휴식을 하면 서커스를 보기위해 파티에서 잠시 이탈한다.
  • Sdorica - 시어도어 카를로스: 형인 윌리엄의 사망 후 그의 딸인 안젤리아 카를로스가 너무 어려서 대신에 섭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가 세계 정복의 야망을 보이고 폭군 정치를 펼치자 안젤리아는 삼촌에 반기를 들고 내전을 준비한다.
  • Warhammer 40,000 - 1대 말카도르, 2대 로부테 길리먼: 말카도르는 황제가 테라에 머물며 웹웨이 프로젝트에 힘 쏟을때 행정부와 암살청을 조직하고 내정을 맡아 다스렸으며, 호루스 헤러시로 말카도르가 사망하고 황제까지 황금 옥좌에 안치되자 프라이마크 로부테 길리먼이 섭정직에 올랐다.[22]


2. 전국시대자객 聶政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韓)의 애후를 섬기던 엄중자라는 인물은 재상이던 협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23]. 재상에게 살해될까 봐 도망쳐 다니다 제나라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이 섭정이라는 인물이 대단한 무사이므로 쓸만할 거라고 엄중자에게 알려준다. 섭정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벌을 피해 제나라에서 숨어 살고 있었는데, 엄중자가 섭정에게 속뜻을 숨기고 자주 찾아가 상당히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섭정의 노모에게 술을 바치며 장수를 기원한다면서 을 100일(鎰, 약 20냥)이나 준 일도 있었는데, 섭정이 깜짝 놀라서 자기에게 어머니를 공양할 재물은 충분하다며 사양했다. 엄중자는 그제서야 은밀히 속뜻을 내비치며 사실은 원수 갚아 줄 의로운 이를 찾아다니다 섭정에게 이른 것이라고 자백했으나, 섭정은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투신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고, 금도 한사코 받지 않아서 엄중자는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엄중자는 조용히 기회를 기다렸고 틈틈이 그의 집에 양식 등을 보내주었다.
훗날 어머니가 죽자 높은 신분으로 자신처럼 낮은 사람을 알아 준 엄중자에게 마음을 내주기로 결심했고, 그를 찾아가 어머님이 천수를 다하셨으니 엄중자의 복수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엄중자는 섭정의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는 걸 도와주고 섭정의 누이의 결혼을 도와준 뒤 자신의 원수가 한의 재상 협루라는 사실을 말하고 인적 물적으로 섭정을 도와주겠다는 말도 덧붙였으나 섭정은 사람이 많으면 일이 위험해진다면서 거절하고 홀로 떠났다.
관청에서,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섭정은 협루에게 뛰어들어 그를 살해하고, 섭정을 제지하려는 자들도 수십을 죽인 뒤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파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고''' 나서야 숨을 거두었다. 자기 정체를 숨겨서 남은 가족과 의뢰한 엄중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연히 큰 죄인이었으므로 한에서는 저잣거리에 시체를 내놓고 자객의 신원에 천금을 걸고 수배했으나 안다는 이가 나오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섭정의 누이 섭영은 그 자객이 자기 동생일 거라는 느낌이 들어 한나라까지 와서 시체를 확인했고, 과연 동생이 맞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천금이나 걸린 대역죄인의 가족이란 걸 스스로 밝히면 당신도 죽을 텐데 어떡하냐고 섭영을 걱정했지만, 자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동생이 저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만들어 정체를 숨겼는데 어떻게 자기 한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겠냐며 슬퍼하다 그 옆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준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가족들을 살리고자 스스로 모습을 숨긴 섭정의 의리를 칭찬하고 그를 알아주고 도와준 엄중자의 의리를 칭찬하고,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아우의 명예를 살리고 자살한 섭영의 절개를 칭찬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죽림칠현 중 한명인 혜강은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광릉산(廣陵散)이란 거문고 곡을 연주했다.
요재지이에는 노리갯감으로 쓰려는 유부녀를 호송하던 무리가 섭정의 무덤 근처를 지나칠 때 섭정의 영혼이 나타나서 호송꾼들을 모두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장철 감독 왕우 주연의 1967년작 <대자객>이 섭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사기의 자객열전의 내용을 충실히 따랐다. 영화는 크게 흥행했으며, <독비도>, 그리고 이후에 제작된 <금연자>의 3연속 홈런으로 장철 감독은 확실한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왕우도 '''천황거성'''이 되었다.

3. 천랑열전의 등장인물


수나라에서 만든 전문살수집단 귀련문의 총 두령. 위 2번의 인물이 모티브인 듯하다. 석전웅과의 계약으로 귀련문 전체는 청수문의 명령을 받는다. 무림오성이자 권신이라 불리는 마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검이 독특한데, 독을 가진 생물의 독기를 흡수하여 더욱더 독기가 더욱더 강력해진다.
이후, 연오랑은 마원이, 월하랑을 섭정이 상대하게 되는데, 전 국가의 공인 살수집단의 두령답게 월하랑을 궁지로 몰고, 결국엔 청사검까지 부러뜨린다. 자신의 검인 구로자검에 크나큰 자부심이 있어서, 월하랑과 싸우기전, 청사검과 맞붙는다고 좋아했다. 꽤나 위험한 상대로, 구로자검은 막대한 독기를 뿜어내는 검이라, 악취또한 매우 지독하여, 상대방이 전투에 집중할수 없게 되며, 일단 한번 베이면 그대로 중독 되어서 끝.
공방끝에 월하랑의 청사검을 분질러버리고 임무를 완수하려하지만, 청사검 자체가 뱀을 모티브로 만들어서, 더욱더 강력한 검신이 새로 나타나고, 강물과 함께 구로자검의 독기를 죄다 얼려버린다. 섭정은 이후 자신의 구로자검이 부러지면서 독기에 중독되어 사망. 나우(만화)에서 구로자검의 형제검을 들고 섭풍이란 동생이 등장하지만 별로 비중은 없는 아귀와 비슷한 수준의 조연이다.

[1] 현대의 공화국의 어원이 이 공화 시기다.[2] 군주가 후계를 남기지 못하거나 혹은 후계를 제대로 굳히지 못하고 병사/사고사/전사 하는 경우. 재수가 없는 경우 자식은 많이 낳았는데, 그 계승권자들이 모조리 다 죽어버려서 멸문되는 경우도 있었다.[3] 여러 계승권 주장자들이 서로 치고 박아 제대로된 계승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경우. 혹은 봉신들이 계승을 안 시켜주는 경우.[4] 중지기간이라고도 한다.[5] 헝가리의 섭정이던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 마차시 1세의 경우처럼 섭정이 왕위를 잇는 경우도 꽤 있다.[6] 진시황의 아버지인 장양왕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탈출할 때 도와준 공을 인정받아, 장양왕이 즉위한 후 외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승상이 되었고, 장양왕 사후에는 상국이 되어 어린 진시황의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그가 진시황의 친부라는 의혹 때문에 진시황의 정적들이 정통성을 의심하는 빌미를 주어, 실각당한 후 짐새의 독을 탄 술을 마시고 자결했다.[7] 아버지 다이쇼 덴노가 병석에 누워 5년간 황태자로서 대리청정했다.[8] 천황황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상황이 된 후, '인(원)'이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천황의 조정보다 우위에 서서 정치를 주도하는 기형적인 정치 체제였다.[9] 후지와라씨의 당주는 딸을 황후로 만든 후 어린 외손자를 천황으로 옹립하여 섭정으로서 통치했고, 천황이 장성하면 관백을 칭하며 계속 실권자로 군림했는데 이를 '섭관정치'라 한다.[10] 아버지 조지 3세가 포르피린증으로 인한 조울증이 심해 정신착란을 일으키자 아버지가 사망하기까지 10년간 왕세자로써 섭정을 맡았다. 영국 역사에서 섭정시대라 하면 이 사람의 섭정 기간(1811-1820)을 가리킨다.[11] 오를레앙 공작의 아들이자 루이 14세의 조카. 프랑스 역사에서 섭정시대라 하면 이 사람의 치세기간(1715-1723)을 가리킨다.[12] 1947년 스페인을 왕정체제로 전환하고 스스로 섭정을 통해 종신권력을 획득하여 1975년 죽을때까지 철권통치를 펼친다.[13] 사실 동유럽은 공국들이 제각각인데다 통일되지 않고 걸핏하면 공작이 내쫓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14] 해외로 떠돌던 형 레오폴드 3세를 대신해 1944년부터 조카 보두앵 1세가 즉위하는 1950년까지 섭정했다.[15] 키릴은 조카인 시메온 2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섭정을 맡았는데, 하필이면 2차 대전추축국으로 참전하는 바람에 전후에 전범이 되어 처형되었다. 한편 시메온 2세는 불가리아를 점령한 소련군에 의해 폐위되었지만, 어린아이라서 실권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모후와 함께 추방당해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는데,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1989년 동유럽 혁명에 의해 무너진 후 귀국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의 총리가 됨으로써, 폐위된 군주가 공화국총리로서 권좌에 복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16] 1967년 국왕을 쿠데타로 축출한 다음에 섭정놀이를 하다가 1973년에 왕정을 폐지해버리고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리스 군사정권이 붕괴된 1974년 왕정복고 투표가 있었으나 부결되었다.[17] 요안니스 4세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요르요스 무잘론이라는 귀족이 일단 섭정을 맡았지만, 미하일 팔레올로고스와 그 지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요르요스를 몰아내고 미하일이 새로운 섭정에 취임했다. 하지만 미카일은 그로부터 불과 몇달 뒤에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 4차 십자군에게 빼앗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한 뒤 아들인 안드로니코스 2세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고 요안니스는 폐위하고 실명시켜 수도원에 가둠으로써, 라스카리스 왕조를 끝장내고 팔레올로고스 왕조를 개창했다.[18] 섭정'으로는 조금 애매하지만 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황인 비오 12세는 건강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비서 수녀인 파스칼리나에게 권한을 넘겨서 정치적인 실무들을 대행하게 했다. 게다가 파스칼리나는 한술 더 떠서 집무실에 앉아서 서류 결재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하며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파스칼리나는 여교황(La Papessa)이라는 살벌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19] 이투르비데는 멕시코 출신으로 스페인군 장교가 되어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동포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으나, 스페인군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자 어제의 적이었던 독립군에 가담하여 멕시코의 독립을 쟁취하는데 기여했다. 다만 독립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에는 아직 스페인 국왕의 지배를 옹호하는 왕당파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를 '멕시코 황제'로 추대하고 자신은 섭정이 되었는데, 페르난도 7세는 멕시코가 스페인과 대등한 관계로서 동군연합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에 무산되었다. 이후 이투르비데는 스스로 멕시코 황제 '아구스틴 1세'로 즉위했으나, 공화주의자들의 쿠데타로 인해 폐위되어 망명했고, 귀국하여 제국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처형되었다.[20] 애초부터 마지막 황제가 된 이가 황위 계승에 밀린 지 오래인 최하급 황족으로 대신이 자신의 야욕에 써먹고자 일부러 그를 이용하고자 섭정한 것.[21] 드라마에선 결국 자기가 왕위에 오른다.[22] 길리먼이 그레이트 스코어링 도중 치명상을 입고 정지장에 안치 된 이후 부활할때 까지 섭정직은 궐석이었지만 세나토룸 임페리알리스가 사실상 과두섭정정부로 기능했다.[23] 사실 협루는 매국노로 한나라를 팔아넘기기 위해 진나라와 내통하던 중이었는데 엄중자가 이를 알아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