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

 



1. 개요
2. 손 중위에 관해서
3. 탈옥, 살인
4. 최종판결
5. 둘러보기


1. 개요


[image]
[image]
2001년 5월 24일 부천에서 벌어진 장교에 의한 강도살인 사건. 정확히 말하자면 범인 손모씨(당시 24세, 중위)가 이전에 10여 차례에 걸친 강간 및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탈옥하여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다.

2. 손 중위에 관해서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976년생인 그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였다가 단기간부사관에 지원하여 1998년 10월 1일 소위로 임관(단기간부사관 3기)된 뒤 7일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에 부임하였다.
위 사단 예하 20연대 소속 작전항공장교로 근무해 왔으며, 부임초기 부대 내의 인터넷 교관으로 활동하는 등 임무수행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고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대인관계도 원만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1999년 여름경부터 부대 근무시간 이후에 심야까지 인터넷과 PC게임 등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부부간에 말다툼이 생김과 동시에 동료들과의 대화가 줄어들게 되었고, 외국의 포르노 동영상 등 음란물에 탐닉하여 무분별한 성적 망상과 충동에 빠진 끝에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총 9명을 강간하였는데, 범행 과정에서 만 14세의 어린 여학생을 강간하거나 여동생을 묶어놓고 그 언니를 강간하고, 강간했던 피해자를 3개월 후 또 찾아가 재차 강간하고, 자녀가 보는 앞에서 범행을 저지르기도 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3. 탈옥, 살인


강간죄로 군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국군교도소[1]에서 수감되던 도중, 허리 통증을 호소해 치료를 위해 2001년 5월 15일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가 당일 오전 2시에 근무자인 사병이 졸고 있는 틈을 타 도주했다.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도주 다음날인 5월 16일 오후 6시에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에 위치한 대학생 박양(18살)의 하숙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려던 그는 박양이 자신을 밀치고 달아나려 하자 탈옥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살해를 하려 박양을 이불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살해한 후 마치 박양이 잠을 자는 것처럼 위장해 놓았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수건으로 족적을 지우고 강취한 물건을 박양의 가방에 넣어 범행현장을 빠져나왔다.
이후 그는 박양의 신용카드로 17일 오후 6시 20분에 부천시 소사구 소사본동 모 은행 소사지점에서 친구 신모(26세)씨와 함께 100만원을 인출했다. 손씨는 그 돈으로 서울 용산의 모 컴퓨터 가게에서 컴퓨터를 구입하고, 범행이 탄로날 것에 대비하여 신씨에게 알리바이 조작을 지시하고 그 후 체포될 때까지 수일간을 태연하게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지냈다.
한편 경찰은 신씨가 손 중위에게 건네받은 박양의 신용카드로 컴퓨터를 구입하며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한 것을 확인, 소재를 추적한 끝에 함께 있던 손 중위를 붙잡았다.
체포된 손씨는 고의적으로 정신이상증세가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범행을 부인하다가 신씨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관들의 추궁에 못이겨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5월 23일 오후 8시 30분, 부천 중부 경찰서는 손 중위를 강도 살인 등의 혐의로 육군 수도군단 군사경찰대[2]에 신병을 인계했다.

4. 최종판결


1심과 2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데다 성장과정이 건실하고 범행 전에는 부대에서 충실하게 군대생활을 해 온 점으로 미뤄 교화의 여지가 있는 만큼 사형은 과중하다"고 판결해 원심을 파기했다. 이후 손씨는 무기징역이 선고된 후 군에서 제적되어 일반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3]
한편 박양의 유족들은 2003년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손해 배상을 청구하여 승소, 1억 8천여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5. 둘러보기



[1] 당시 육군교도소[2] 당시 헌병대[3] 국군교도소는 1년 6월~2년가량 복역하면 국군에서 제적된 뒤 그 이후엔 법무부 교정본부 산하의 일반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