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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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군교도소이다.
2. 상세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의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군교도소이다. 흔히 "희망대"라고도 부른다.[2] 국내 관영 교도소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법무부 교정본부 소속이 아닌 대한민국 국방부 소속이다. 명칭은 교도소지만 사형수 등 미결수도 수감하는 구치소 기능도 한다.[3] 소장은 각 군 군사경찰병과 중령이 맡는다. 군 교도소이므로, 교도관역할은 교정직 공무원이 아닌 군사경찰 장병들이 맡는다. 홈페이지는 여기다.
과거에는 육군본부 직할부대이었고 이름도 '''육군교도소'''였으며, 육군본부 인사사령부에서 관리 및 운영하였다. 그런데 해군, 해병대, 공군은 이러한 시설이 없었으므로 이들의 교도 대상자들 또한 "위탁받는 식으로" 수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4년 11월 21일 부로 육군에서 국방부 직할 기관으로 소속이 바뀜과 동시에 이름도 "국군"교도소로 바뀌었고, 감시/관리하는 근무 군사경찰도 육군 군사경찰들뿐만 아니라 3군 군사경찰들이 모두 배속되었다.
모든 군종의 1년 6개월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4] 병[5] 과 군 사형수[6] , 또는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군대와 관련된 사고를 친 민간인 범죄자(군무원)를 수용한다. 장교와 준사관, 일정 기간 이상 복무한 부사관, 이들에 상응하는 계급을 받고 장기 근무한 군무원은 수감 기간과 관계 없이 무조건 여기로 수감되므로 무기수나 장기수도 의외로 많다.
국군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는 모두 남자 현역군인으로, 1심 판결 후 항소 또는 상고 중인 미결수와 형이 확정된 기결수로 구성돼 있다. 사형수를 포함한 장기수도 일부 있지만 1년6월 형 미만의 수용자가 많다고 한다. 직업군인인 간부급 수용자는 이곳에서 형기를 마친다. 병사의 경우, 1년6월 형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법무부 산하 일반교도소로 이송된다. 형이 확정되는 동안 사실상 군 복무 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여군의 경우, 구치소 역할을 하는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구속돼 있다가 형이 확정되면 제적(전역)돼 민간교도소로 이송된다.
2013년까지는 영관급 장교 및 위관급 장교, 준사관, 중사 이상의 부사관들은 병, 하사와는 달리 독방을 쓰며, 괜히 사고치다가 독방에 수감되는 병들 역시 장교 및 부사관들이 생활하는 "장교동" 이라는 독방에서 생활하는데 이게 은근히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온다. 교도소 내부 구조는 구치소 성격의 "미결수"동, 형이 확정된 "기결수"동, 그리고 위에서 언급된 사형수와 영관 및 위관장교 그리고 중사 이상의 부사관이나 장교들이 홀로 생활하는 "장교동"이 존재한다. 미결수 간부들은 부사관과 위관, 영관으로 나누어 혼방을 사용하며, 형량이 확정되어 기결수가 되면 계급과 상관없이 이등병으로 전역처리후 여주교도소로 이송되어 남은 형을 집행한다. 일반 현역부적합 전역이 계급이 보존되는 것과는 달리 국군교도소에서는 계급을 몰수한다. 여주교도소에서 남은 형기를 다 채우고 만기출소를 하더라도 군 인사법에 징역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복역한 자는 수형 사유로 병역판정검사 6급 병역면제로 변경되어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을 받을 수 없다.
3. 수형생활
이곳에선 수용자나 재소자라고 불리지않고 '''수련생'''으로만 불린다.
죄수복 색상은 미결수가 갈색, 기결수가 하늘색이며, 사형수는 형이 집행되지 않았기에 미결수 갈색 죄수복을 입는다. 죄수복에는 일반 교도소와는 달리 상의 뒷면에 "희망" 이라는 큼지막한 글씨와 하의 허벅지 양쪽에 희와 망이라는 글씨가 써진게 특징. 일단 군법상의 죄를 짓고 들어오면, 우선 해당부대 영창에서 구속수사를 한 뒤에 해당 사단, 함대, 비행단 혹은 그 위 단위 군사법원에서 1심 판결 후 국군교도소로 이감된다.
미결수인 경우엔 아직까진 군인의 신분이기에 월급이 지급되며[7] , 재판 출석 시에도 군복으로 갈아입고 재판에 임한다.[8] 미결수 동에서는 열심히 반성문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항소심의 경우 서울특별시 용산구의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이뤄지며[9] ,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집행유예가 아닌 형 확정후 1년 6개월 미만의 경우는 기결수 동으로 옮겨지며, 1년 6개월이 넘으면 군에서 제적되어 민간인 신분이 되므로 법무부 교정본부 산하 여주교도소로 이감된다.[10]
4. 처우
신분은 공통적으로 이등병처럼 취급된다.[11] 왜냐 하면 계급을 그대로 놔둘 경우, 계급을 무기로 기간병들에게 갑질을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감되기 전에 장성급 장교였어도 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감자에게 '''조 중위님''' 이런 호칭따위 없다. 수형번호 또는 그냥 이름으로 호칭된다. 그래서 수감자 가족들도 '''조 중위의 가족'''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한때 중위었던 조 아무개의 가족'''이라는 호칭을 쓴다.
죄수복의 경우 피복은 하계, 동계용으로 2벌을 지급하고, 식사 역시 수감된 방이 아닌 식당에서 식사를 함을 원칙으로 한다. 단 식사의 경우엔 해당 부대의 급양식단과 똑같은 식단으로 먹는다.[12] 2004년 여름을 기점으로 국가 인권 위원회의 권고로 교도소내의 PX를 열었으며,[13] 병 기결수동 내부에 개인샤워시설이 생기고, 하루 저녁 8시마다 1시간만 볼 수 있었던 뉴스시청시간을 2시간으로 늘리는 등[14] 수감자의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말에는 철 지난 영화겠지만, 영화감상 역시 가능하다.[15] 운동 및 체육활동은 우천시를 제외한 하루 한번 오전 및 오후시간까지 허용된다. 하지만 단체로 나가는 걸 원칙으로 한다. 종교행사 역시 일요일에 주 1회 참석이 가능하다. 주로 여가활동으로는 독서가 있고,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최대 5권까지 책 대여가 가능하며, 검열을 거친 도서를 요청을 통해 구매해 들여오는 것도 가능하다. 수감된 사형수 중 한 명인 임도빈 육군 보병병장이 미소녀 나오는 만화책을 반입해 읽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독방 수감자 역시 대여는 가능하지만, 직접 도서관에 가서 읽거나 빌려 올 수 없고 도서 목록에서 선택하면 교도병들이 방안으로 넣어준다. 부식같은 경우도 건빵이나 사발면같은 증식도 정말로 잘 주는 편. 주 1~2회정도 단체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가 허용된다. 허나 자살이나 자해의 문제로 샴푸같은 액체세제는 불허, 무조건 비누같은 고체세제만을 허용한다.
의료 및 건강상의 문제로 교도관에게 얘기하면, 한달에 한 두번 정도 군의관이 와서 진료를 해주며, 질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버스를 타고 국군수도병원에서 외진이 가능하다.[16] 국군수도병원 외진을 수시로 다녀와봤거나 입원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특히 수요일에 국군교도소 군사경찰들이 기결수를 데리고 다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기결수 확정후 일단 징역형이기에 일을 해야되는데, 여기서 기술교도대 출신 기간병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급여도 지급된다. 일을 함과 동시에 한식 중식 조리사,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 그리고 자동차 정비기능사 그리고 전기 및 가스용접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수감자가 탈옥할 경우, 육군 제2강습대대 5분대기조가 출동하여 탈옥수를 체포한다. 교도소라고 특별관리하는 건 아니고 국군교도소가 7군단 영내에 설치됐기 때문에 인근 부대가 초동대처를 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국군교도소에서 탈옥해도 여전히 7군단 영내에 있으니 금방 눈에 띌 수 밖에 없다.
과거엔 남한산성 근처에 있었기에 '남한산성'이라는 은어도 있었다. 현 위치로 이전한 당연히 지금은 사어가 된 상태.[17]
국군 장병들이 사용하는 침대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내무실(생활관)이 침상 위주였던 예전엔 주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무부 소속 혹은 민영 교도소처럼, 이곳에서도 출소 후를 대비한 직업 훈련 등의 일환으로 교도작업을 하는데, 군부대에 들어가는 비품 일부가 이 곳 수감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수감자 숫자를 생각하면 모든 군납 비품을 거기서 만들 수 있을 리는 없고, 대부분은 각 군 군수사령부에서 민간 업체를 통해 구매한다.
구 육군교도소 시절부터, 경찰서 유치장과 마찬가지로 수감자가 0명이 되면 백기를 올리는 규정이 있다. 육군교도소 시기 창설 이래 딱 한번 잠시 올라간 적 있는데, 이는 경찰서에서도 작은 군 단위 경찰서에서나 어쩌다 가끔 있을 만큼 드물다.
요즘은 꽤나 처우가 좋아져서,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최신영화를 주 2회 볼 정도다.
2022년 4월 국군교도소의 재건축이 완료된다면 죄수들의 처우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18]
5. 사형수
2016년 기준으로 4명이 있는데, 전부 병 출신으로 육군 3명, 해병대 1명이다. 언론과 나무위키 관련 문서에 실명이 공개되어 있어 그대로 작성한다. 입소 순으로 작성.
- 김용식
1996년 10월 1일 강원도 화천군의 육군 제7보병사단에서 당시 상병으로 총기를 난사하여 3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인질극을 벌이다 2시간 반만에 투항하였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중 일어난 일이고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길 때 일어 났던 사건이라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당시 기사도 사건이 일어났다고 짤막하게 보도된 게 전부이다.
1985년 제28보병사단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 이후로 한동안 군인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았고[19] , 이후는 사형집행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여서 국군교도소의 최고참이다. 짬밥이 교도소장이랑 비슷하다. 신학대 과정을 공부하고, 소내 이발 봉사, 각종 작업, 교회 집사[20] 등을 하고 있다. 아예 별명이 깍새나 집사다. 군사경찰이나 수감자들이 '사람 좋은데(!) 대체 왜 사형수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보인다. 실제로도 모범수이다.
1985년 제28보병사단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 이후로 한동안 군인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았고[19] , 이후는 사형집행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여서 국군교도소의 최고참이다. 짬밥이 교도소장이랑 비슷하다. 신학대 과정을 공부하고, 소내 이발 봉사, 각종 작업, 교회 집사[20] 등을 하고 있다. 아예 별명이 깍새나 집사다. 군사경찰이나 수감자들이 '사람 좋은데(!) 대체 왜 사형수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보인다. 실제로도 모범수이다.
- 김동민
제28보병사단 530GP 사건, 소위 김일병 사건의 그 김일병이다.
사건 후 5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생활을 하였다. 교도관, 수형자와 일체 대화를 하지 않고 종교 생활도 하지 않으며 밥도 식당이 아닌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다. 5년이 지난 2010년정도 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풀려 혼자 화초도 키우고, 동물도 돌보고 다른 수형자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어쩌다 한번 교회도 가고 판타지 책도 잘 읽는 편. 10년간 독거 생활만 고집 하다가 2014년~2015년에는 김용식과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조금 밝아 졌다. 목격자에 의하면 깔깔이에 슬리퍼 끌고 여유있게 걸어 가는데, 나이도 많고 머리도 길어서 간부 수형자인줄 알았다고 한다.
유족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가족이 북한군에게 죽었다고 믿고 있어서 최근까지도 국군 교도소로 찾아와 동민이를 만나고 싶다고 면회 신청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민 일병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
사건 후 5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생활을 하였다. 교도관, 수형자와 일체 대화를 하지 않고 종교 생활도 하지 않으며 밥도 식당이 아닌 자기 방에서 혼자 먹었다. 5년이 지난 2010년정도 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풀려 혼자 화초도 키우고, 동물도 돌보고 다른 수형자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어쩌다 한번 교회도 가고 판타지 책도 잘 읽는 편. 10년간 독거 생활만 고집 하다가 2014년~2015년에는 김용식과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조금 밝아 졌다. 목격자에 의하면 깔깔이에 슬리퍼 끌고 여유있게 걸어 가는데, 나이도 많고 머리도 길어서 간부 수형자인줄 알았다고 한다.
유족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가족이 북한군에게 죽었다고 믿고 있어서 최근까지도 국군 교도소로 찾아와 동민이를 만나고 싶다고 면회 신청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민 일병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
- 김민찬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의 주범이다. 사건을 일으키고 나서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하여서 인지 몸에 살이 찢어진 흉터가 있다. 전형적인 중학생 양아치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도소에 수감된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영을 한다느니 헛소리를 하고 근무자와 자주 다투는 등, 아직까지 적응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주 저녁에 잠을 자지않고 앉아서 우는 것을 보면 속으로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정도에는 교도관의 권유로 소극적으로 김용식, 김동민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활동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임도빈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의 그 임병장이다. 재판이 끝난지 얼마 안되었다.
민간 교도소에서는 사형수의 경우 무기수가 가석방 받을 수 있는 기준인 징역 20년(2010년 형법 개정 이전에는 10년)의 1/3정도가 지나야 적응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까지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방에만 처박혀 있거나 말 안듣고 싸움질 하는 등 개판으로 생활한다. 1/3 시점이 지나면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2/3정도가 지나면 슬슬 무기수로 감형 받기 위해 행형점수에 신경쓴다. 그러나 법정 유기 최고형이 징역 15년에 가중시 20년에서, 2010년 10월 16일부터 징역 30년에 가중시 50년(...)으로 늘어 나면서 다 포기하고 개판치면서 살고 있다. 2010년 이전 기준으로 무기수는 빠르면 징역 18년 정도만 살고 출소하고 늦어도 21년 정도 살고 출소 했다. 2010년 이후에는 몇년간 출소자가 없다가 최근들어 고령의 모범수의 경우 징역 상한선에 가까운 27년째에 가석방 되는 추세이다.이에 따라 국군교도소의 사형수 4인방도 교도소 내에서 큰 사고를 치지 않고 모범생활을 한다면 대략 수형생활 30년을 전후하여 무기로 감형 받고, 무기수로 좀 더 살다가 언젠가는 가석방 될 가능성이 있다. 민간교도소의 사형수에 비해, 국군 교도소는 사건 발생시 나이들이 워낙 어리니 가석방 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 그래서인지 국군교도소 수용복 등짝에 찍힌 두 글자가 "희 망" 이다. 재소자들에게는 출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사형수라면 청,중년 시절을 모두 감옥에서 보냈기 때문에 출소했다고 바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이들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다. 반대로 인간답게 죽어라고 거의 죽기 직전에 석방시켜서 요양병원 임종실 등이 자신의 형장이 되어, 비유적으로 사형이 집행될 수도 있고.
다만 감형위원회에서 감형을 논할때 수형생활보다도 가장 먼저 보는게 죄질이다. 죄질이 나쁘면 아무리 모범수로 생활한다고 해도 감형 대상으로 잘 올리지 않는다. 당장 위의 김용식도 국군교도소 몇몇 간부와 사형폐지단체, 종교계에서 감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부조리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이라는 참작 요소가 있음에도 성과가 없고, 2000년대 초반에 몇몇 사형수를 무기수로 감형한 이후 지금까지 사형수의 감형도 없다. 차라리 사형제 폐지 자체를 기다리는 게 더 확률이 높을 지경. 무기수로 감형된다 쳐도 무기수가 가석방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인 이찬희는 이들보다 가벼운 형량인 40년 형을 선고받아서 교정본부로 이첩되어 민간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행형점수가 제일 개판인데다 교도소에서도 사고치고 다녔던 것이 다 알려져서 가석방은 꿈도 꿀 수 없다.[21] 되려 형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까 저 4명의 사형수들은 정신 차리고 최대한 빨리 가석방된다면 되려 이찬희보다 먼저 석방될 수도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6. 연혁
- 1949년 3월 1일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육군형무소"로 창설
- 1950년 12월 18일 - 대구광역시로 이동
- 1955년 7월 21일 - 부산광역시 서면으로 이동. 당시 위치는 경남공업고등학교 옆이었다.
- 1962년 6월 28일 - 경기도 성남시로 이동, "육군 제1·2교도소"로 분할(당시경기도 광주군의 일부 였음.)
- 1979년 7월 1일 - 제1·2교도소 통합, 육군교도소로 개칭
- 1985년 10월 22일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이동
- 2014년 11월 21일 - 대한민국 국군 국방부 조사본부 예하 기관으로 소속 변경 및 국군교도소로 개칭
7. 관리 문제
국군교도소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반교도소와 달리 더 엄격하게 관리할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엔 언론을 통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이 다른 수감자들을 상대로 6개월 동안 폭행, 성추행[22]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것이 드러나 추가 기소되었는데, 이찬희 병장을 비롯한 수감자들의 관리를 군사경찰 간부가 아니라 군사경찰 병들이 관리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던 게 이전까지 병 계급으로 이찬희 병장처럼 '''잃을 게 없는 상황'''에 놓였으면서 '''잃을 게 많은 단기 수감자들만으로 구성된''' 감방에 갇힌 사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23] 즉 잃을 게 없어진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 군교도소 측이 경험이 없었기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후 SBS의 궁금한 이야기 Y에서 국군교도소장이 이 병장의 교도소 내 가혹행위 문제를 계기로 교도직 대한민국 군무원 채용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래 이찬희 병장 같은 경우는 형이 확정될 경우 법무부 산하 민간 교도소로 이송되어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국군교도소에 수용했던 것.
군 교도병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국군'''교도소'''라고 하니 뭔가 특수한 부대같고, 마치 특수부대처럼 자원자 혹은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진 인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렇듯이 뺑뺑이를 통해 우연히 자대가 국군교도소로 배치된 인원들에 불과하다. 즉 그냥 군복무를 하러 입대했다가 그냥 군사경찰으로 뽑힌 다음 그냥 뺑뺑이 돌려서 국군교도소로 배치받은, 일반 육해공군 병들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군사경찰이라서 평균 신장은 조금 큰 편이지만 확연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특히 해공군 군사경찰은 경계군사경찰 수요 때문에[24] 체구가 작은 경우도 쉽게 뽑힌다. 요약하면 '''흔한 인남캐 A'''다. 현역 입영 대상자라면 얼마든지 자대가 국군교도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반면 이들에게 요구되는 근무수준은 '''절대 쉽지 않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일과표에 따른 수용자 통제, 이동소요에 따른 계호, 외부 계호, 수용자간 혹은 수용자와 근무자간 마찰 중재[25] , 돌발 상황 대처[26] 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가 주어진다. 불침번이나 위병소와는 비교를 불허하며 당연히 영창 근무보다도 어렵다. 단순히 암기해야할 사항도 행정병급으로 많으며 외운다고 끝이 아니라 몸으로 완전히 체현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교도병은 2~3일 교육만 받으면 바로 배치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간부나 병사/수병들도 근무난이도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신병은 절대로 혼자 근무에 투입되지 않는다. 군사경찰 병과 특유의 지독하게 길고(...) 주말을 가리지 않는 근무를 선임병과 함께 3~4주간 근무를 서면서 배우게 된다. 아마 "교도병은 2~3일 교육만~"하는 구절은 일반 영창 근무자의 사례를 교도소 근무자도 똑같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선임병과 함께 근무 투입한 신병을 정식 근무자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3~4주도 완전히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그런데 위의 문제점들은 진짜 문제점이 아니다. 교정직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죄다 우락부락한 떡대들인 것도 아니고 평범한 남성이라는 건 반대로 말하면 특별한 결격사유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근무난이도도 병으로서 어려운 수준일 뿐 정말로 교정직공무원들처럼 서류작업이나 수용자 상담같은 고급 임무는 당연히 맡기지 않는다. 일반 영창보다는 훨씬 복잡하지만 결국 교도관의 손발로써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보니 아무리 재능없는 사람이라도 몇 달을 근무 서다보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한다. 진짜 문제점은 처음 서술한 바와 같이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냥 '''기간병'''이라는 것이다. 일단 책임감이 부족한 인원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27] 그리고 결국 이들은 '''전역한다.''' 열심히 가르쳐 숙련시킬만 하면 사회로 나가버리고, 새로 들어오는 신병은 당연히 까막눈(...)이라 다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이런 현상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거기다 복무기간의 단축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심화시킨다. 결론적으로 기간병 대신 전문하사나 군무원을 넣는 편이 현재로서는 최선책이다. 전문하사의 경우 적어도 1년은 더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데다 급여다운 급여를 받아 의욕도 있기 때문이다.
8. 장애인이 수감되는 경우
장애인이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는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아 현역판정을 받게 된 사람이 입대 후 범죄에 연루되어 수감된 경우이다. 장애인이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되는 나이인 만 19세가 되는 해가 되기 전에 장애인 등록 후 등록유지를 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국군교도소의 장애인 수감자는 장애인 징병의 피해자이며, 아래의 예가 국군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장애인과 연관된 내용이다.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주범 이찬희 병장에게 가혹행위 피해를 당한 수감자 중에서 지적장애인이 있었으며, 묻지마 살인사건을 저지르기 13년전에 군복무를 하다 탈영해서 8개월 동안 수감되던 사람이 지적장애인이다.[28]
9. 민간인이 수감되는 경우
국군교도소에 민간인 신분으로 수감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군형법이 군인 및 군무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군무원들이 수감된다.
군무원이 아닌 순수 민간인은 군사재판을 받더라도 국군교도소로 가지 않고 법무부 구치소와 교도소 및 소년교도소나 소년원으로 가게 된다.
육군 군사경찰 대령 한 명이 징역 12년을 선고 받고 장교동에 수감되었는데, AH-1H 코브라 공격헬기 관련 문제로 287억의 뇌물을 받았는데, 대부분 재산을 은닉했고 군검찰에서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이미 출소한 것으로 추측된다.
10. 역대 교도소장
11. 관련 문서
[1] 부대마크: [2] 예전에 있었던 성남시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예를 들면 희망대공원, 희망대초등학교).[3] 이건 몇몇 일반 교도소도 똑같다.[4] 1년 6개월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그 즉시 제2국민역에 편입되어 전역 처리되고, 6년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아예 군번이 말소되어 소속군에서 제적되기 때문에 국군교도소가 아닌 법무부 산하 교도소에 수감된다.[5] 수감 도중 복무 기간을 채우면 전역 조치하고 법무부 산하 교도소로 넘어간다.[6] 군 사형수들은 사형 집행이 군형법 제 3조에 따른 총살형이라 총살형을 집행할 수 없는 법무부 산하 구치소 및 교도소인 법무부 교정 기관으로 이송하지 않는다. 다만 군 사형이 1986년 이후 중단되었기에 현재는 사실상 무기 금고수로 처우하고 있다.[7] 이는 영창에서도 똑같다. 아직까진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그러나 보직이 수형이기 때문에 '''수당은 일절 없으며''' 기본급만 나온다.[8] 1심 재판은 해당 부대에 인근한 보통군사법원에서 이뤄지고 판결 뒤 교도소 수감후 2심 재판은 용산에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이뤄진다.[9] 호송차량을 타고 이천에서 서울 용산까지 간다.[10] 국방부에서 법무부로 기록이 통지된다.[11] 계급으로 윗사람 대우를 안 한다는 얘기지, 진짜로 이등병으로 강등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결수 상태이기 때문이며(기결수가 되면 현역부적합 전역 후 여주교도소로 이감된다.) 만약 무혐의나 집행유예일 경우 복직도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계급은 남겨둔다. 2007년 가짜 학사장교 사건으로 구속된 학사 42기 2명은 임관 취소 처분과 동시에 진짜 이등병으로 강등 조치되었다. 또한 말년중위인 학사 44기, 갓 중위로 진급한 학사 46기, 소위인 학사 48기는 '''전원 강제전역 후 병으로 재입대 명령'''(구속이 아니라 재입대라는 부분이 중요하다. '''재입대=이등병 강등'''이다.) 조치하였으며 아직 후보생이던 학사 50기는 퇴교 조치했다. 이등병 강등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다. 물론 기결수라 하더라도 형의 여부에 따라 이건 달라지는데 동원예비군에 편성될 경우, 군인연금 연금 또는 퇴직금 수령 가능 한정(파면 후 1계급 강등이 여기에 해당된다.)으로 계급이 인정된다. 현행법상 군 인사법에 '''임관 무효'''와 '''임관 취소'''가 존재하는 한 이등병 강등은 무조건 존재한다. 임관 무효 및 임관 취소는 소위, 준위, 하사로 임관한 것 자체를 부정하는 조치이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이등병 강등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처벌을 받으려면 어지간한 범죄로는 힘들기 때문인데 '''부정임관 또는 군사반란''' 이 정도나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12] 단 사고 치고 독방 수감 시 독방의 경우 1명의 근무자만 존재하는데 식사 시간때는 추가로 1명의 근무자를 부르고 계호상태에서 철창문 따고 들어가서 식판을 준다.[13] 영치금이나 기교대 노역급여로 계산가능하다. 농협 체크카드가 쓰인다.[14] 주말의 경우, 검열을 거친 음악프로그램 등 뉴스 이외의 TV시청도 가능함.[15] 그래도 비디오 출시 후 3개월정도가 지난 영화를 틀어준다.[16] "희망"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수도병원을 가면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물론 미결수는 전투복을 입지만, 포승줄을 착용하고 고무신을 신은 상태로 이동한다. 과거엔 명찰이 노출되어 있어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로는 명예가 훼손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명찰의 이름표까지 다 떼고 군사경찰과 함께 이동하는것으로 바뀌었다.[17] 현재 이 자리에는 창성중학교(구 창곡중+창곡여중+영성여중, 2017년부터 통폐합)와 한국폴리텍1대학 성남캠퍼스가 있다. 참고로 육군종합행정학교의 별칭인 '남성대' 역시 남한산성에서 유래되었다. 이곳 역시 위례신도시 개발로 지금은 충북 영동으로 이전한 상태.[18] 재건축 전보다 시설이 훨씬 좋아진다.[19] 어떻게 보면 군사법원(당시는 군법회의)이 이미 민간법원보다 엄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이나 총기난사로 3명을 살해한 사건 등 당시 민간 기준으로도 사형이 선고될만한 사건에도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지금도 민간인과 군인이 공범인 사건으로 각각 민간법원과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을 때, 군인의 형량이 민간인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게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20] 교도소 내에도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회, 성당 등이 있다. 국군교도소에서 신학대 과정을 마치고 목사 시험도 합격했지만 사형수라서 목사는 안 됐고 전도사 직위만 있다.[21] 가석방 허용 여부도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이춘재 가석방 허용을 검토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될까?[22] 성기노출, 타 수감자를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오줌을 갈김.[23] 재소자들은 원래 반성과는 별도로 교도관의 말은 꽤 잘 듣는 편이다. 어차피 사회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국군교도소에 수용된 인원들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간교도소에 비해 형이 평균적으로 짧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는데 바로 사형수, 무기수, 그리고 2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장기수들이다. 물론 군교도소 측도 이걸 알기 때문에 직업군인 출신 장기수나 병 사형수들은 당연히 별도로 관리하므로 사고를 치지 않지만, 이찬희 병장은 흔치 않은 '''병 출신 장기수'''였기에 관리를 어떻게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날뛸 만한 조건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24] 육군은 대부분의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지만, 해공군은 평시엔 군사경찰만 경계근무에 투입된다. 그래서 육군 출신들이 야간근무 얘기를 꺼내도 공감을 못한다. 다만 함정이 있는게 공군의 경우 군사경찰이 전체 병사의 15~20% 정도를 차지한다.[25] 사태가 심각해지면 교도관이 해결하지만 사소한 수준의 마찰은 대개 근무병이 해결하고 추후 보고한다.[26]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뜬금없는 환자 발생, 문제있는 수용자의 난동을 비롯한 기행, 수용자간 통방 등등 예시를 들면 끝도 없다.[27]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의 이 병장이 교도소 내에서 행패를 부렸을 때 피해자의 도와달라는 요청에도 그냥 지나간 것은 이렇듯 책임감도 권한도 없는 병들이 있기 때문이다.[28] 지적장애인 중에서 현역병 복무를 하게 된 경우는 병무청에서 장애가 걸러지지 않았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확인해도 3급 현역판정을 받은 사례이다. 병역판정검사규칙에 지적장애에 3급 판정을 내리는 기준은 없다. 이 경우에는 소아청소년기 장애가 있을때 3급 판정을 내리도록 되어 있는 기준으로 3급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자폐성 장애인 중에서도 그대로 현역병 복무를 하게 된 경우도 이것과 비슷하다.[29] 강화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의 범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아예 초병을 살해한 혐의가 있다.[30] 완벽한 민간인은 어렵고 주로 군무원들이 저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