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태후

 

''''''
<colbgcolor=white,#2d2f34> '''사도부인(思道夫人)'''
'''별칭'''
사도태후(思道太后)
'''본관'''
경주 박씨(慶州 朴氏)
'''성씨'''
박(朴)
'''이름'''
사도(思道)
'''아버지'''
박영실
'''배우자'''
진흥왕
'''아들'''
동륜태자, 진지왕, 김구륜
'''생몰연도'''
530년대[1] ~ 614년
1. 소개
2. 창작물


1. 소개


신라 진흥왕의 왕비.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의 '원종흥법 염촉멸신'에서는 모량리(牟梁里) 각간 박영실의 딸로 식도부인(息道夫人/息途夫人) 혹은 색도부인(色刀夫人)이라고도 한다. 진흥왕과 결혼해 김동륜(진평왕의 부친)와 진지왕(김사륜), 김구륜(金仇輪)을 낳았다.
삼국유사 '왕력'에서는 진지왕의 어머니이자 진흥왕의 어머니도 될 수 있다고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는 오기로 본다.
진흥왕 사후 출가비구니가 되어 영흥사(永興寺)에서 지내다 사망했다. 몇 년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손자인 진평왕이 즉위하고 36년이 지나서 사망했으므로 상당히 장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옥진의 딸로 미실의 이모이며, 자신의 둘째 아들이기도 한 진지왕의 폐위를 주도했다고 나온다. 참고로 화랑세기의 영향으로 사도부인을 사도태후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정사에서 그녀는 태후라고 불린 적이 없어서 태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이는 진흥왕 사후에 출가해서 절에 있었기 때문인 듯.

2. 창작물


대왕의 꿈에선 정재순이 연기했다.
선덕여왕에도 나올법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화랑세기 역사대로 하자면 미실은 중간보스 느낌으로 사도태후는 '''진 최종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
[1] 손자인 진평왕의 탄생년도등을 볼 때 540년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아무리 적어도 530년대 태어난 게 되는데 진흥왕보다 몇살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