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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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Jones Tilden (1814-1886)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미국의 19대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말많고 탈많던 당시 선거에서 결국엔 낙선한 비운의 인물로 알려져있다.
2. 생애
뉴욕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그는 철도 붐이 일던 당시 철도 회사의 변호사로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게 되어 손쉽게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전반적으로 무난한 길을 걸었지만, 1848년에는 마틴 밴 뷰런을 도와 자유 토지당(Free Soil faction)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찌됐건 남북전쟁 후에 뉴욕 주 민주당 위원회 의장을 맡은 그는 비리를 저지른 위원들의 탄핵에 앞장서는 행동 등으로 인망을 높이게 되어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주지사로서 성공적인 면모를 보인 그는 1876년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2.1. 대통령에 도전하다. 그러나...
1876년 선거 결과 틸던은 백악관 자리에 거의 근접한듯 보였다. 득표에서 25만 표(약 3%차) 이상 앞섰고, 개표가 끝나지 않은 일부 주를 제외한 확정된 선거인만으로도 184명으로 사실상 승리(185명)를 확정한 '''듯''' 보였다. 심지어 나머지 주들에서 다 져도 오리건 주에서 일종의 반란표가 나올 확률이 생겨 이길 수도 있었다. 물론 이것도 결국엔 공염불이 되었지만.. 자세한건 러더퍼드 B. 헤이스 항목 참조.
그러나 연방군의 군정을 받던 남부 3주(사우스 캐롤라이나 7석 + 루이지애나 8석+ 플로리다 4석 = 19석)의 선거인이 결정나지 않음으로서 그의 백악관 입성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수개표를 수십번씩 해도 죄다 오차범위 안에 들어 누가 이겼는지 확정할 수가 없었던 것. 덕분에 취임식 전전날까지도 결과가 나지 않는 사태까지 온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러더퍼드 B. 헤이스 항목에서 보다시피 위의 3주가 공화당 승리로 결정나면서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불과 선거인 1명 차이로.'''
하지만 상대측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는게, 당시 남부에서도 백인들이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당시만 해도 공화당 지지가 높던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한 것은 사실이었고, 애초에 흑인에 대한 투표 방해가 없었다면 선거인단이나 득표율이나 틸던이 깔끔하게 졌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의 한 분석에 따르면 불법적인 폭력이 없었을 경우 이들 주 3개 중 2군데에서 공화당이 이기고 1군데에서 민주당이 이겼겠지만 다른 주에서 공화당이 이겨서 헤이스가 정당하게 당선됐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Who Won the 1876 Election? Issue 9 of Buttons and Ballots, in Spring 1997.
어쨌든 남부인들과 틸던은 불만은 있었지만 러더퍼드 헤이스가 내놓은 타협안을 받아들이고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
2.2. 선거 이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 그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정계에서 은퇴하게 된다.
정계 은퇴 후에는 평범하게 자선 활동 등을 하다가 1886년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새뮤얼 틸던은 제임스 뷰캐넌과 마찬가지로 평생 '''독신'''이었다. 즉,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 두번째 미혼 대통령이 탄생했겠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외 링컨 이후 수염을 기른 대통령들에 대한 기록에서는 번갈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었을 듯 하다.
이때 낙선한 틸던의 복수(?)는 8년 뒤 같은 뉴욕주 주지사 출신의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이룬다. 차이점은 틸던과 달리 클리블랜드는 당시 낙선했을 때의 입장이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재선 선거였다는 것.
4. 매체에서
1876년 선거의 부정을 고발한 고어비달의 소설 1876년에서는 대단히 선량한 인물로 나온다. 일부 지인들이 항의 시위와 무력 행동을 건의하자 그것을 말리는 대인배. 사실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그걸 예상하고 틸던을 반역죄로 체포하고자 미리 함정을 파 놓은 것을 간파한 것도 있다.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북부의 대통령으로 임신(?!)했다는 언급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