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크 암 사건

 



Shark Arm Case
1. 개요
2. 상어의 뱃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의 팔
3. 피해자의 신원
4. 범인은 누구?


1. 개요


1935년 4월 17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몸길이 4m, 무게 500kg짜리 뱀상어에서 사람의 팔이 나오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당초엔 그저 바다에서 수영하던 사람이 사고로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경찰 수사 결과 피해자가 상어에게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져 미스터리로 남게 된 사건이다.
'''타만 슈드 사건과 더불어 호주 최대의 미제 사건'''이며, 상어의 뱃속에서 팔이 나온 사건이라 하여 샤크 암(Shark arm) 사건이라 부른다.

2. 상어의 뱃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의 팔


사건의 발단은 1935년 4월 17일에 시드니의 쿠지 해변에서 잡힌 뱀상어 1마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뱀상어는 길이 4m, 몸무게 500kg가 나가는 상어였는데 쿠지 해변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발견되어 근처에 있는 쿠지 아쿠아리움으로 옮겨졌다. 쿠지 아쿠아리움으로 옮겨진 이 상어는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의 팔을(!!!) 토한다.'''
[image]
상어가 토해낸 팔
원래 쿠지 해변 일대는 상어의 출몰이 잦았고 사람이 상어에게 물리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 역시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상어를 만나 잡아먹혔고, 소화가 되지 않은 팔이 상어 뱃속에 남아 있었다가 토하면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 측에서는 상어 뱃속에서 발견된 팔의 주인이 상어에게 잡아먹힌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은 게 아니라 그냥 바다에 버려져 있던 사람의 팔을 삼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피해자가 상어에게 잡아먹힌 것이었고, 발견된 팔이 소화가 덜 된 부위였다면 최소한 상어의 뱃속에서 다른 신체 부위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의 팔이 상어에게 물어뜯긴 것이라면 상어의 이빨 자국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고, 오히려 칼에 잘린 것처럼 깨끗하게 잘라져 있었다는 게 경찰 측에서 주장하는 살해 정황이었다.

3. 피해자의 신원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상어의 뱃속에서 발견된 팔은 사람의 왼팔이었는데 어깻죽지에서 손끝까지였으며 팔의 안쪽에는 두 사람이 권투를 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손목에는 밧줄에 묶인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신원을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인 지문이 상어의 위액에 의해서 손상된 것인지 심하게 훼손된 탓에 지문을 채취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드윈 스미스였다. 에드윈 스미스는 상어 뱃속에서 발견된 시신은 바로 자신의 형인 제임스 스미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증거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에는 상어 뱃속에서 발견된 팔의 것과 동일한 문신이 동일한 자리에 새겨져 있었다. 에드윈은 형 제임스 스미스가 실종되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증언을 했는데, 제임스는 쿠지 해변에서 팔만 발견되기 열흘 전인 4월 7일에 크로놀라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 세실 호텔이란 곳에서 투숙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에드윈 스미스와 통화를 했는데 그 이후부터 실종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에드윈이 보여준 사진과 증언을 토대로 피해자의 신원은 제임스 스미스라고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해군과 협조해 제임스 스미스의 나머지 신체 부위를 찾으려 했지만 왼팔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부위는 찾을 수 없었다.

4. 범인은 누구?


피해자의 신원이 제임스 스미스라고 밝혀지자 경찰은 이제 범인을 잡는 데 주력했다. 에드윈은 경찰에게 "형 제임스가 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증언했으며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까지 제보해 주었다. 그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의 이름은 패트릭 브래티였다. 경찰은 패트릭 브래티를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패트릭 브래티는 제임스 스미스를 만나긴 했지만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 택시기사가 경찰에게 자신이 패트릭 브래티를 봤으며 사건이 일어난 그 날에 대해 제보했다. 제임스 스미스가 실종된 날로 추정되는 1935년 4월 7일에 패트릭 브래티는 세실 호텔 앞에서 큰 가방을 들고 서 있었고, 택시기사 본인이 패트릭을 태워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패트릭 브래티는 매우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고 증언했으며, 패트릭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사업가인 레지널드 홈즈의 집까지 태워주었다고 했다.
패트릭 브래티가 찾아갔다는 레지널드 홈즈(1892-1935)라는 인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사업가이자 대부호로 꾸준한 기부 활동과 갖가지 자선 사업 등을 통해 많은 호주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유명인사였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그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 밝혀졌다. 레지널드 홈즈는 앞에서는 존경받는 자선 사업가로 알려졌지만 뒤에서는 더러운 마약 밀매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이 레지널드 홈즈를 소환해 사건에 대해 묻자 레지널드는 패트릭 브래티가 "내가 사람을 죽였으니 당분간 영국에 좀 가 있어야겠다. 내가 영국으로 도피할 때 쓸 자금으로 500파운드를 달라. 만일 500파운드를 주지 않으면 당신이 마약 밀수업자라는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패트릭 브래티가 운반해온 제임스 스미스의 시신은 자신이 직접 바다에 버렸다고 증언했다. 레지널드 홈즈의 결정적인 증언을 들은 경찰은 패트릭 브래티를 살인죄로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패트릭 브래티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확신하고 기소했다. 재판은 1935년 6월 12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샤크 암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레지널드 홈즈가 '''자신의 차에서 총에 피격당해 죽는다.''' 이 사건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증인이 사라져서 결국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었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패트릭 브래티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된다.
사건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레지널드 홈즈가 재판이 열리는 당일에 갑자기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이 사건에 거대한 흑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진실이 드러날 것을 염려한 누군가가 레지널드 홈즈를 죽여 입막음을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증인의 석연찮은 죽음으로 인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고, 이 사건은 호주 최고의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로도 브래티는 30년 동안 자신이 스미스의 살인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그는 1965년 4월 18일 시드니의 콩코드 병원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