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image] '''복싱(권투)'''
'''Boxing'''
경기에 임하는 복싱 선수들
카운터를 적중시킨 복싱 선수
'''스포츠 정보'''
'''종류'''
'''격투기'''
'''공격 방식'''
'''타격 - 펀치'''
'''공격 강도'''
'''풀컨택트'''
'''올림픽 등재 여부'''
등재됨 (2020년 기준)
1. 개요
2. 특징
3. 역사[1]
4. 규칙
4.1. 체급
4.2. 올림픽 복싱
4.3. 경기 종료
6. 복싱 선수의 스타일 분류
6.1. 경기 운영 스타일에 따른 분류
6.2. 특수한 주력기술에 따른 분류
7. 복싱 장비
8. 위험성
9. 실전성
10. 현황
10.2. 인기
10.3. 여자 복싱
10.5. MMA에서의 복싱
11. 유명 선수
11.1. 국내
11.2. 국외
12. 그 외 주요 선수들
13. 관련 용어
14. 관련 작품
14.5. 픽션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4.6. 대전액션게임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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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무하마드 알리가 '''3초에 12번의 펀치'''를 꽂는 장면.

'''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

'''나비처럼 날아서, 처럼 쏜다.'''

'''무하마드 알리'''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얼굴에 주먹을 맞기 전까지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지.'''

'''마이크 타이슨'''

'''권투'''() 또는 '''복싱'''(boxing)은 격투기의 한 종류로, 체중별로 체급을 나눠 동급끼리 사각의 에서 손에 권투글러브를 끼고[2] 오직 주먹으로만 공격하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스포츠다.

2. 특징


권투는 까마득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주먹을 사용하는 격투기 중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종합격투기계에서도 권투는 모든 파이터들의 필수과목일 정도로, 권투가 다른 격투기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권투의 공격기술은 스트레이트, , 어퍼, , 바디 이렇게 5가지밖에 없다. 그래서 무척 단순해보이지만, 기술이 적은 만큼 반복 훈련이 많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몇 수 앞까지 생각해서 공격 방법을 정해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무술이기도 하다. 펜싱 종목 중 오로지 상반신 공격만이 인정되는 사브르 종목이 제일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3. 역사[3]


아주 오래전인 BC 4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부터 당시 왕의 군대가 권투를 익혔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BC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도 있고 나중에 이집트나 에티오피아에서의 권투가 크레타섬을 거쳐 고대 그리스로 건너갔고, BC 688년 제23회 고대 올림픽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복싱의 기록은 기원 전 2,500년경부터 나타난다. 그리스에서는 복싱(πυγμαχία(퓌그마키아))[4]은 물론 팡크라티온(pankration)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MMA 경기와 비슷한 것까지 실시되었다. 이 경기는 기원전 776년 제우스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열린 고대 올림픽의 한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직업 권투선수가 등장하여 생사를 판가름하는 잔혹한 시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아예 너클(세스타스)을 끼고 상대방을 패죽이는 것도 다반사. 이러다보니 기록상으로 혼자서 18년 동안 2천여 명을 때려죽인 선수까지 있었다. 그리고 처벌은커녕 잘 먹고 잘 살고 부유하게 살다가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404년 로마황제 호노리우스가 기독교를 믿으며 검투와 더불어 이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으나 비공식적으로는 계속 행해졌다.
특이하게도 스파르타에서 권투는 금지된 종목이다. 권투는 한 명이 죽거나 패배를 인정해야 시합이 끝났는데 항복이 곧 수치인 스파르타인은 패배를 인정하면 안 됐기 때문이다.
근대 영국에서 현대 권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이즈 파이팅(prize fighting)이 등장했다. 이 시기의 권투는 레슬링이 허용되고 맨주먹이어서 오늘날보다 실전 지향적이었지만 하층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었고 음주와 도박 등으로 물의를 빚었기에 상류층에서는 빈번히 금지하곤 했다. 돈을 거는 경기는 금지되었지만, 상류층에서도 호신 목적으로 권투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5] 중상류층의 복싱 클럽을 중심으로 점차 권투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럽의 뿌리깊은 결투 문화가 보다 안전하고 사망사고의 위험이 적은 권투로 대체되는 경향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있는 현대적인 모습의 복싱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검술과 곤봉술로 이름이 난 제임스 피그(James Figg)가 1718년 런던에 복싱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제자들에게 복싱을 가르친 것이 시초다. 당시는 맨손으로 싸웠으며, 승자는 상금을 받았으므로 복서를 프라이즈 파이터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프로복서의 전신이다. 그뒤 피그의 제자 잭 브로턴이 처음으로 스포츠화하였다.
1786년에는 당시 아마추어스포츠협회 임원인 J. G. 젬버에 의해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권투의 후원자인 퀸즈베리(Queensberry) 후작의 이름을 따서 ‘퀸즈베리 룰’이라 불렀다. 이것이 현대 권투규칙의 기반이 되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체급별로 경기를 하였다.
이후 펜싱의 풋워크를 응용해 권투에 접목시켰고, 권투글러브의 도입으로 손가락 부상을 우려해서 주먹을 세워 치던 '베어너클 복싱'에서 주먹을 뉘여서 치는 현대 복싱으로 변화하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막싸움 수준이었지만 "펀치는 맞히는 것보다 떼는 것이 중요하다"란 명언을 남긴 슈거 레이 로빈슨과 풋워크의 극한에 달한 무하마드 알리 같은 선구자들 덕에 현재에 이르렀다. 보통 1970~80년대 정도부터 현대 복싱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선 주먹을 쓰는 타격계 무술이라면 본 이름보단 무슨무슨 복싱하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무에타이를 '타이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쿵푸를 '차이니즈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사바트를 'boxe française'라고 말한다던가. 인도의 타격무술인 '무스티 유다'를 '무키 복싱'으로, '프라달 세레이'를 '캄보디아 복싱'이라고 부른다거나.

4. 규칙


'''세계 어떤 격투기도 권투만큼 규칙과 규정이 복잡한 격투기는 없다.'''
아무튼 간에 뭐만 했다 하면 권투는 무조건 반칙 처리다. 권투 룰북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은 반칙 부분이다. (이와 반대로 무에타이 룰북에서 가장 얇은 부분이 반칙 부분.) 못 믿겠으면 격투 기술 관련 정보에서 '권투에서 반칙인 기술'을 한 번 세어보자. '''80%가 반칙이다.'''
물론 이 여러 규정 안에서 어떻게 하면 게임을 재미있고 유리하게 풀어나갈까를 구경하는 세련된 맛이 있다.

4.1. 체급


복싱도 극 초창기에는 체급 개념이 따로 있지 않았지만 1800년대 초반부터 체급이 분화되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반 기본 8체급(헤비-라이트헤비-미들-웰터-라이트-페더-밴텀-플라이) 체계가 갖춰졌다. 이후 그 사이 사이에 중간체급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1980년대에 현재의 17체급 체제[6]가 완성되었다.
('''WBA 기준'''[7])
  • 라이트 미니멈급 102 lbs.(46.266 kg.) 이하 [8]
  • 미니멈급 105 lbs.(47.619 kg.) 이하
  • 라이트 플라이급 108 lbs. (48.979 kg.) 이하
  • 플라이급 112 lbs. (50.793 kg.) 이하
  • 슈퍼 플라이급 115 lbs. (52.154 kg.) 이하
  • 밴텀급 118 lbs. (53.514 kg.) 이하
  • 슈퍼 밴텀급 122 lbs. (55.328 kg.) 이하
  • 페더급 126 lbs. (57.142 kg.) 이하
  • 슈퍼 페더급 130 lbs. (58.956 kg.) 이하
  • 라이트급 135 lbs. (61.224 kg.) 이하
  • 슈퍼 라이트급 140 lbs. (63.492 kg.) 이하
  • 웰터급 147 lbs. (66.666 kg.) 이하
- 경량급~중경량급까지는 가볍고 얇은 8온스 글러브를 사용한다 -
  • 슈퍼 웰터급 154 lbs. (69.841 kg.) 이하
  • 미들급 160 lbs. (72.562 kg.) 이하
  • 슈퍼 미들급 168 lbs. (76.190kg) 이하
  • 라이트 헤비급 175 lbs. (79.365 kg.) 이하
  • 크루저급 200 lbs. (90.718kg) 이하
  • 헤비급 200 lbs. (90.718 kg.) 이상
- 슈퍼웰터 이상의 중량급은 조금더 두껍고 큰 10온스 글러브를 사용한다 -

4.2. 올림픽 복싱


권투는 올림픽의 정식 종목 중에 하나로 프로복싱의 12R[9]와는 달리 3분 3R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올림픽의 특성상 경기 주기가 짧아 한 달도 못 되는 기간에 여러번 경기를 가지므로(토너먼트) 과로방지 차원에서 경기당 라운드를 최소화 한 것이다.
더불어 올림픽 권투는 3, 4위전이 없다. 즉, 준결승에 올라가기만 하면 무조건 동메달이다. 그래서 '''동메달이 2명''' 있는 종목이다. 1948 런던 올림픽까지는 3, 4위전이 있었으나 1952 헬싱키 올림픽부터 폐지되어 준결승에서 패배한 2명이 공동으로 동메달을 받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프로복싱과 달리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더 두꺼운 권투글러브를 낀 채로 시합하다가 '''2013년부터 남자 아마추어 복싱에서는 다시 헤드기어가 없어졌고''' 올림픽에서는 2016 리우 올림픽부터 적용된다. 2012년 신설된 여자복싱에서는 유지중이다. 또한 얼굴을 정확히 1번 가격시 1점이 올라가던 포인트제에서 프로에서 사용하는 10-point must 채점 방식을 사용하여 더욱 파이팅한 선수들과 재미있는 경기운영, KO 등을 자주 볼 수있 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마추어 복싱 특유의 테크닉이 조금 줄어들었다.
영어 위키백과 올림픽 복싱 성적. https://en.wikipedia.org/wiki/Boxing_at_the_Summer_Olympics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순위가 우즈베키스탄, 쿠바, 프랑스, 카자흐스탄, 러시아, 영국, 미국 순이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Boxing_at_the_2016_Summer_Olympics
합계순으로 보면 중국도 꽤 선전은 했다.
하지만 아직도 올림픽 역대 금메달 및 메달 합계 1위는 미국이다. 2위가 쿠바, 3위는 영국
소련에는 러시아 말고도 여러 나라들이 있었지만 소련 시절과 러시아 기록을 합쳐 따져보면 금메달순 3위, 합계순 2위가 된다.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공식사이트에서 남자부 랭킹을 보면 2017년 10체급 1위는 쿠바 4명, 우즈베키스탄 3명, 러시아 1명, 카자흐스탄 1명, 프랑스 1명이다. https://www.aiba.org/rankings-2/
2019년 6월 26일 열린 IOC 총회에서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이 단체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음에 따라 IOC 산하 특별 조직에서 임시로 업무를 맡으며 2020 도쿄 올림픽 복싱 경기도 여기에서 주관하게 된다.

4.3. 경기 종료


  • 녹아웃(Knock Out) 승 : 한 선수가 다운 상태에서 10초간 회복을 하지 못하면 선언된다.
    • 테크니컬 녹아웃(Technical Knock Out) 승[10]: 합당한 공격으로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심판이 한쪽 선수가 도저히 싸울 여건이 안 되어 심판이 GG 선언을 한다거나[11], 코너에서 경기 포기 의사를 알리면 선언된다.
    • 녹아웃 무승부(Double Knock Out) : 양 선수가 동시에 녹아웃이나 TKO패 조건에 들면 양쪽 모두 KO로 무승부가 선언된다.
  • 판정(Decision) : 녹아웃이나 몰수패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 심판진 판단으로 승패를 가린다.

5. 기술 체계


권투 기술 항목 참고.

6. 복싱 선수의 스타일 분류


여기를 참고. #

6.1. 경기 운영 스타일에 따른 분류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구분하지만, 경기전략이나 상황에 따라서 경기운영스타일이 천차만별로 다르고, 또한, 복서들의 경기전략이 다변화함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복서가 반드시 한가지 타입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 인파이터: 스워머 (Swarmer), 인파이터 (In-figher), 압박형 파이터 (Pressure Fighter) 등으로 불린다. 상대를 구석으로 몰며, 링 위의 공간을 장악하고, 상대가 기술을 사용하기 어렵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키와 팔길이가 짧아 자신에게 유리한 거리조절이 힘든 선수들이 대체로 이쪽에 분포해있다. 특성상 난투전을 감수하며 근거리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에 클린치와 훅, 어퍼를 잘 사용한다. 정확하고 강력한 한방을 가진 브라울러에게 약하고, 공간을 넓게 사용해야 하는 아웃복서에게 강하다. 머리 쪽을 주로 노리면 헤드 헌터, 몸 쪽을 주로 노리면 바디 브레이커다. 80년대 이후 복싱의 스포츠과학화가 진행되면서 불분명한 한 방보다는 데미지를 누적시켜 넉다운을 노리는 바디 브레이커가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옛날 만큼의 호쾌함이 사라졌다 한다.
  • 아웃복서: 아웃복서 (Out-boxer) 혹은 아웃파이터 (Out-fighter)라고 한다. 치고 빠지며 점수를 벌고 상대의 체력을 깎는데 중점을 두는 스타일이다. 넓은 공간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공간 장악에 특화된 인파이터에 약하다. 반대로 거리를 잘 유지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야 하는 브라울러에게 강하다.
    • 고전 아웃복서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재빠른 주먹과 풋워크로 점수만 버는 스타일이다. 상대를 넉아웃시키지는 못하지만 판정승을 잘 올리는 경향이 강하다. 대체로 주먹이 약해 강한 데미지를 주지는 못하지만 기술에 자신있는 선수들이 많다. 대부분의 공격을 잽에 의존하며, 컴비네이션이나 난투전을 보기 힘들다.
  • 현대 아웃복서
아웃복서들 중에서도 펀치력이 강해 넉아웃을 잘 시키는 선수들이다. 전반적으로 치고 빠지는 아웃복싱을 구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컴비네이션과 난투극 등을 활용하여 넉아웃을 따낸다. 현대의 아웃복서들은 대부분 이쪽이다.
  • 브라울러: 브라울러 (Brawler) 혹은 슬러거 (Slugger)라고 불린다. 비대한 근육과 강력한 펀치력이 특징인 스타일이다. 체급도 크다. 비대한 근육 때문에 주먹의 가동범위와 팔의 유연성이 대체로 떨어진다. 따라서 강력한 스트레이트로 결정타를 먹이는데 집중한다. 브라울러는 기술적인 민첩성이 떨어지는 특성상, 거리를 수시로 유지하는 아웃복서에 약하다. 반대로 계속 다가와주는 인파이터에게는 강하다.



6.2. 특수한 주력기술에 따른 분류


  • 카운터 펀처 (Counter Puncher):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나오는 주먹이 교차되는 크로스 카운터펀치를 잘 날리는 선수군이다.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재빠른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 무버 (Mover): 풋워크, 더킹, 슬리핑 등 회피 기술에 통달한 유형이다. 아웃복서-무버라면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인파이터-무버라면 교묘하게 상대의 펀치를 피하며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복싱 경기에서 취권을 보게 해 주는 선수들이다.

7. 복싱 장비


복싱을 할 때 장비하는 것들로는 권투글러브, 헤드기어[12], 마우스피스[13], 낭심 보호대[14]복싱화[15] 등이 있다. 물론 매체에서는 필수이자 가장 핵심이 되는 장비인 권투글러브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8. 위험성


일반인에게는 대단히 안전한 운동이지만, 선수차원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복싱은 대부분의 경기에서 서로의 펀치가 복부나 옆구리가 아닌 얼굴에 닿고, 그 충격이 뇌로 바로 전달되며, 그것이 축적된 뒤 다운이 되면 승패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중 뇌출혈로 인한 사망자가 상당히 많다.''' 타격이 신체 전반에 골고루 퍼지는 다른 타격기와 달리 대부분의 공격이 머리로 집중되는 탓에 이러한 부상위험과 사례가 유달리 많은 편이다.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이유도 통증의 완화보다 뇌로 가는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제 역할이 더 크지만, 장비를 착용하고 스파링을 해도 주먹이 닿을 때 충격이 그대로 머리에 전해지니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기도 하며, 몇몇 연구에서는 장비를 착용하면 오히려 더 충격이 크다는 결과가 있어서 올림픽 복싱을 시작으로 아마추어 복싱에서도 헤드기어 착용이 감소하는 추세다. 상대 선수의 펀치로 사망하거나 병을 앓게 되는 선수도 선수지만, 공격한 쪽도 사실상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에 극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복싱이 위험하다는 지적은 계속되어 왔다.[16] 김득구 선수의 사망 이후에는 세계 대회에서 대대적인 룰 개정이 이루어질 만큼 그 충격이 컸으며, 최요삼 선수는 경기는 이기고도 뇌 부분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인한 뇌사로 세상을 떠나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김득구의 사망이 15회제가 폐지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세계챔피언전은 12라운드로, 논타이틀전은 10회제로 축소되었다. 이 뒤로도 사고가 계속 이어지면서 복싱 폐지론이 수시로 나오고 있다.
다만, 이것은 선수의 이야기이고, 풋워크를 통해 하반신을 많이 쓰지만 직접적인 공격 부위는 아니니 킥을 차다가 햄스트링이나 발목, 정강이가 다치는 등의 경우가 흔한 무에타이와 킥복싱, 관절이나 인대에 근골격계 손상을 입을 걱정을 달고사는 유도와 주짓수, 배울 수단조차 변변찮은데다 기본 훈련 드릴부터 사람잡는 레슬링, 성인이 되면 배울 기회조차 드문데다 공에 가격당할 위험이 큰 구기종목, '''아예 말이 필요없는''' 수영에 비하면 밴디지와 글러브로 공격부위인 주먹을 보호하며, 스파링시에는 머리를 보호하는 헤드기어와 마우스 피스를 착용하니 부상위험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일반인에겐 격투기는 물론이요 스포츠 통틀어서 가장 안전한 축에 속한다.''' 하다못해 축구만 해도 차고 때리고 조르는 종합격투기보다 부상율이 많다.
펀치 드렁크도 일반인이 그걸 겪으려면 생업 때려치고 매일 같이 하루종일 스파링만 해야 걸릴 정도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일반인 수준의 생활체육 수준에선 펀치 드렁크가 발생할 정도의 충격적인 데미지의 펀치를 당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프로선수급의 펀치력을 가진 펀치를 진짜로 생활체육인이 당하게 되면 보통 그 한방에 다운이 돼서 스파링이든 경기든 바로 끝나버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펀치 드렁크는 프로선수 수준의 스파링과 경기를 최소 몇 년간 반복하면서 강한 충격이 쌓이다가 터지는 것이다. 다이어트나 건강 목적으로 배우는 경우는 처음부터 세세한 교정이나 스파링보단 반복 수련과 운동으로 살을 빼는데 집중하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스파링 시 코나 입안, 입술 등을 부상 당해 피가 나는 일은 잦은 편이다. 특히 마우스 피스를 착용하지 않을 시 이가 부러질 수 있으니 마우스 피스는 필히 착용해야 한다.
대부분 관장이나 코치가 항상 주시하고 있고, 안전장비도 모두 착용하고 서로 합의하에 대련을 하는 것이라 일상 스포츠중 가장 안전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축구만 해도 동네축구에서도 태클을 잘못 맞거나 넘어져서 여기저기 부러지는 경우도 많고 다른 구기종목들도 마찬가지. 반면 복싱은 스파링중에 위에 말한 자잘한 부상을 제외하곤 코뼈가 부러진다거나 탈골되는 식의 부상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단, 콘택트 렌즈를 착용한 채 스파링을 하면 실명의 위험이 있으므로 스파링 시작 전에 미리 빼두어야 한다. 치아를 치료 중인 사람(교정 중인 사람)도 스파링은 피하는 게 좋다. 충격에 의해 부착물이 탈락되거나 틀어질 수 있다.
보통의 일반인 대상 권투 체육관에서는 선수 준비생이 아닌 이상 안전문제로 풀 스파링을 시켜주는 건 드물고 보통은 메도 스파링(beginner sparring)[17]을 한다. 시합이 목적이 아니라 기술 수련을 목적으로 관장 지도하에 서로 주고받는 것. 이조차 꽤 격렬해서 마우스 피스는 필수다. 착용하지 않는다면 입이 다 터진다. 실력이 있어서 풀 스파링을 하더라도 반드시 관장, 코치 입회하에 적은 라운드로 진행하며, 많아야 주1회 정도 날을 정해서 한다.
맨손으로 복싱에서 하던 것처럼 힘껏 얼굴을 난타할 경우, 오히려 본인의 손을 다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한다. 사람의 머리는 가장 중요한 부위고, 그에 따라 두개골도 신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다. 손뼈보다 단단하니 조심하라.
일단 격투기인 만큼 다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메도 스파링 위주로 한다지만 격투기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어느 순간 풀 스파링을 뛰고 있기 십상이며 체육관 분위기에 따라 풀 스파링을 지향하는 곳도 꽤 있다. 헤드 기어를 쓰기 때문에 안전상에서 제법 유리하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이 또한 울림통이 커져서 스파링이 끝난 후 머리가 더 욱신거리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복싱인들도 꽤 되는 편이며(일단 시야도 가려지고 머리가 커져서 잘 맞기도 한다) 스파링 5라운드 쯤 뛰고 나면 3일 정도 머리가 아픈 일은 예사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파링시 가드를 어설프게 하면 갈비뼈가 나가는 것은 심상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한 여러 조건이 갖추어질 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여타 '생활체육'보다 적다는 것이지 다치지 않는다는 소리는 아니므로 스파링시 항상 주의하도록 하자. 사실 몇 년간 수련한 사람들 중엔 미약한 뇌 손상 징후를 보이는 사람도 심상치 않게 있다.
다만 일반인에게 안전한 운동이라고 해도 권투선수가 작정하고 남에게 폭행을 저지르면 피투성이가 되는 위험성은 당연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용인시에서 무고한 택배기사를 폭행한 아마추어 권투선수가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위협을 가하다 일방적으로 살해하려 한 사례가 있다(#)[18].
"권투선수가 싸움을 해서 남을 주먹으로 때리면 특수폭행으로 가중처벌을 받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으며, 일반인뿐 아니라 복서나 복싱 관련직에 있는 사람조차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즉 권투선수의 주먹은 형법상 무기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 당연히 그런 법이나 판례는 없다. 단지 판사의 재량으로 "이 사람은 무술을 익혀 사람이나 패고 다니니 죄질이 (더욱) 나쁘다"라고 판단하거나, 훈련된 무술인인 만큼 일반적인 쌍방폭행 사건이(많은 수가 취중에 일어나거나 흥분상태에서 일어나는 만큼) 개싸움으로 흘러가 경중의 차이는 있되 양쪽이 둘 다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프로 선수들은 정신줄 놓고 싸워도 정신 챙겨 보니 상대방만 피떡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불리한 판결(한 짓은 쌍방폭행인데 정작 결과물은 일방적 폭행인)을 받는듯한 경우가 많으며, 이는 당연히 종목이나 상황을 불문하고 대체적으로 공통되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판사가 폭행자의 격투 실력을 "흉기"에 이를 정도로 강하다고 판단하는가 아닌가에 달린 문제이다. 반대로 폭행자가 상대방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도저히 말로는 안되겠으니 이 사람은 가급적 피해가 적게 실력으로 제압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복부에 한방 가격하여 실신시킨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보다 넓게 인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19]

9. 실전성


'''복싱만으로는 최강이 될 수 없지만 복싱 없이 최강이 될 수는 없다.'''[20]
종합격투기 4대 필수 종목 중 하나이며 격투기 마니아들 사이에서 흔히 명실상부 주먹계의 최강자[21]로 명성이 높다. 복싱에서는 격투에서 매우 중요한 펀치, 스피드, 파워샷, 거리 감각, 리듬, 수싸움, 카운터 등을 심도있게 배울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정찬성 선수와 같이 많은 엘리트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복싱 기술을 통해 KO를 따내고 훈련에서 복싱 스킬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종합격투기에서 복싱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UFC 해설자인 조 로건과 주짓수 권위자인 에디 브라보분석[22]에 따르면 길거리 싸움에서 복싱레슬링과 더불어 필수라고 평가한다.
얼핏 생각하면 주먹만 써서 발차기잡기에 취약한 무술이 왜 실전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종목이 그러하지만 실제로 다른 종합격투기 필수 종목과의 단일 종목 싸움에서도 복서의 승산은 높지 않은 편이다.[23] 그러나 종합격투기의 모든 필수 종목은 서로 다른 종목에게 약점을 가지기 때문에 복싱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손은 인간이 가장 많이 쓰는 신체부위이고, 싸움에서는 본능적으로 주먹질을 하며 누구나 얼굴 등 급소에 데미지를 입으면 기가 꺾여 주춤하기 마련이다. 사실 이게 가장 크다. 길거리 싸움은 고수 중의 고수만 모이고 또 제한시간, 공간이라는 규칙이 존재하는 링 위와는 전혀 다르다.[24] 막말로 대부분의 분규가 정해진 타이밍에 시작하는 경기처럼 정해진 시공간 내에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발적이고 막상막하의 실력자들의 경기처럼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신랄하게 말해 유효타만 먹이고 내빼는 전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성기 시절 끝발 날리던 브록 레스너최홍만 같은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도 안면 타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제 실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일반인들 싸움은 오죽하겠는가.
즉, 모든 무술 중 가장 직관적이고 빠른 공격 방식을 극한까지 단련한 상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주먹'''이라는, 즉 손이라는 가장 익숙하고 가장 빠른 무기를 쓰기에 다른 무술에 비해 대단히 '''직관적'''이며 가장 원초적인 격투기가 권투이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발차기나 테이크다운은 기나긴 수련을 거쳐야하며 그라운드는 일반인들은 아예 사용할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은?'''[25]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는 다른 격투기들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권투의 '''실전성'''은 가히 뛰어난 수준이다. 인터넷에서도 길거리싸움에서 복서가 상대를, 그것도 여러 명을 가볍게 농락하는 동영상이나 움짤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은 복서의 주먹은커녕 그의 '''몸'''조차 거의 볼 수 없다. 복서의 경쾌하고 빠른 스텝과 동작은 일반인이 절대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 눈앞에 있는 복서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이미 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심지어 내 옆, 등 뒤에 나타나는가 하면, 위빙, 더킹 같은 회피동작은 1초에도 몇 번씩 내 눈에서 복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법이 된다. 그리고 눈꺼풀보다 빠른 속도로, 짐작하기 힘든 다양한 각도로 들어오는 펀치가 한 두 방 걸치면 그걸로 끝이 난다. 극도의 민첩성이라는 이런 특징 때문에, 권투는 맨손격투기 중 '''일대다수'''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권투와 마찬가지로 실전에서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다른 무술과 비교하자면 레슬링유도는 기본적으로 상대를 '''잡아야'''하는 무술이기에 일대다수 상황에서는 한명 상대할 동안 다른 인원에게 뒤치기를 당할 위험이 있고 무에타이킥복싱은 발차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스탭이 복싱에 비해 정교하지는 않고 발차기를 날리다 이쪽이 넘어지거나 부상을 입을 여지 또한 크기 때문에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주짓수 또한 레슬링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잡아야하는 무술이고 또 기본적으로 '''자기도 굴러야'''하는 무술이기에 링 위에서와 달리 실전에서 시전자에게 가해지는 부담감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무술 특성상 '''일대다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그나마 레슬링과 유도가 메치기로 상대를 하나하나 정리할 여지가 있는 것과 달리 주짓수는 꿈도 못꿀 일이고. 결국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무술이든 권투에 비해 약점이 있는 셈이다.[26]당연히 어떤 무술이든 선수가 일반인들 상대할 때는 눈깜짝할 새에 한 명씩 구겨버리거나 내동댕이쳐 버리니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
더불어 격투기를 '''근대화, 과학화'''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무술이 권투이기도 하다.[27] 풋워크, 가드, 거리감각, 체급, 근력 및 근지구력 운동 등 근대 격투기에서 필수적인 개념과 체계들을 처음으로 정립하였다. 물론 전근대 전통무술에서도 유사한 개념[28]이 있었지만 그것을 근대적인 과학, 의학 지식까지 도입하여 구체화한 것은 권투였다. 그렇기 때문에 투기 종목의 역사에서 권투가 남긴 족적은 정말 크다. 현대 종합격투기는 물론이고 최강의 입식타격기라는 무에타이도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펀치 테크닉과 풋워크에서 권투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29] 현대화된 실전 가라테까지도 권투의 개념 및 훈련법을 도입했다. 이소룡도 직접 알리의 풋워크를 연습하며 절권도에 권투식의 풋워크를 일부 도입했다. 많든 적든, 현대의 실전 격투기를 표방하는 모든 무술은 예외없이 권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권투는 다른 어느 무술보다도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 펀치에 대한 두려움이 심하면 권투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30] 때문에 권투에는 펀치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훈련이 필수다. 복서들은 안면에 펀치를 맞을 때도 '''눈 뜨고 맞는다.'''

10. 현황



10.1. 기구


한국에선 뭉뚱그려 세계 챔피언이라고 부르지만, 세계적인 복싱 기구와 단체는 여러 개가 있고, 인지도도 제각기 다르다.
  • WBA(World Boxing Association, 세계권투협회)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지닌 권투 기구. 1921년 NBA(National Boxing Association : 미국권투협회)를 전신으로 하는 단체. 1962년 8월 WBA(World Boxing Association : 세계복싱협회)로 개편을 단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챔피언 외에 잠정 챔피언, 슈퍼 챔피언을 편성하는 등 벨트를 남발하고 운영이 부실해져서 프로모터들과 팬들 사이에서 평판이 제법 떨어졌다. 이후 WBC에게 완전히 추월당한 상태. 검은색 벨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Association 본부가 파나마에 있다고한다. 한국의 첫 WBA 챔피언은 김기수(1966년 주니어미들급)로 한국 최초의 프로권투 챔피언이기도 하며, 홍수환은 국내 첫 WBA 2회 챔피언이었다.
  • WBC(World Boxing Council, 세계권투평의회)
2000년대 들어 규모와 공신력에서 1위인 기구. 1963년에 WBA에 반발해서 중남미가 주축이 되어 발족시킨 기구로 WBA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 둘과 여타 기구와의 격차는 권위에서나 역사성에서나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한편에서 회장인 호세 슐레이만의 장기집권과 내부적 비리를 지적하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현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흥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착각하기 쉽지만, 당연히 동명의 야구 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초록색 벨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Council 본부가 멕시코에 있다고한다. 한국의 첫 WBC 챔피언은 염동균(1976년 슈퍼밴텀급)이고, 문성길이 WBA에 이어 WBC 양대 기구의 챔피언에 오른 첫 한국 선수이다.[31]
  • IBF(International Boxing Federation, 국제권투연맹)
1983년 창설된 역사가 짧은 기구로 초창기에는 2류 기구로 갖은 무시와 괄시를 당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세계 3대 기구로 올라서있다. 80년대 초창기에 한국 선수들이 세계 챔피언이 많았는데 주로 IBF 출신으로 박종팔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때는 수준이 낮았고 벨트를 남발하여 당시 챔피언들은 별 인정을 못 받는다. 한국은 IBF에서 오랫동안 탈퇴해 있었다가 이후 복귀하여 2015년 IBF 총회가 한국에서 유치되었다. 빨간색 벨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Boxing_Federation 본부가 미국에 있다고한다. 한국 첫 IBF 챔피언은 전주도(1983년 주니어밴텀급)가 차지한다.
  • WBO(World Boxing Organization, 세계권투기구)
1990년 출범한 신생기구로, 초기에는 무시당했으나 이제는 세계 4위의 복싱기구이자 WBA나 WBC와 대등한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5체급을 석권했던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도 첫 타이틀이 WBO 쥬니어 라이트급 타이틀이었다.[32] 흥행성 있는 빅매치를 잘 잡아 특히 프로모터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고 이후 와선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구로 성장했다. 갈색 벨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Organization 본부가 푸에르토리코(미국속령)에 있다고한다.
그외 WBU, IBC, WBF, GBA 등등 많은 기구가 있으나 대부분 수준낮은 3류 단체들이다. 한때 케이원 출신으로 권투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단 떡밥으로 유명했던 매트 스켈톤은 WBU 챔피언이었는데 이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연방 기구일 뿐이고 실제 세계 랭킹에선 4 ~ 50위 수준이다. 이후 몇 년간 설립된 기구가 많은데 이 때문에 세계 챔피언이 난립하게 되었단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 랭킹 100위 안에 간신히 드는 복서들조차 타이틀을 딸 수 있을 정도. K-1이나 UFC 등에 세계 챔피언이랍시고 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이런 기구 출신이거나 오래전에 은퇴한 퇴물들이다.
상기의 4대 기구들은 한국에서 온갖 스포츠 협회들이 괄시받는 것처럼 전세계의 복싱팬들에게 썩을대로 썩은 고인 물, 광대, 적폐로 취급받고 있다. 특히 복싱이 훨씬 인기 있고 인프라나 정보망도 발달한 서구권에서는 악덕 프로모터들과 더불어 거의 만악의 근원 취급. 복싱이 여전히 인기 스포츠라고 해도 그 인기가 정체 내지는 하락하고 있는 상태이고 위기론이 없지는 않은데 자기들끼리 사분오열되어서는 벨트 놀음, 돈 놀음이나 하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의 횡령이나 비리 문제도 시도때도없이 터져나오는 것이 일상이다.
이후 '링'지의 P4P 랭킹이 더 영향력이 있어졌다.[33] 축구의 피파처럼 확실한 통합 기구가 없기 때문에 이런 기구들이 난립해도 제재를 가할 수 없어서 점점 기구의 영향력은 떨어지는 추세이다. 올드팬들 사이에선 여전히 메이저 기구를 따지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확실히 업계 자체가 기구보다는 스타 선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을 결집시킬 구심력이 없어 업계의 규모나 자금력에 비해 결속력과 조직력이 매우 떨어지고 소수의 스타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34]

10.2. 인기


'''주춤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지만 여전히 격투기 중에서는 최고의 대중적 인기와 인프라를 자랑한다'''. 다만 한국은 프로 복싱과 아마복싱의 인기와 인프라 차이가 매우 큰편이다. 자세한건 아래 서술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복싱의 인기가 과거 전성기 시절[35]보다는 떨어졌지만[36], 아직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투기 종목 중에서는 압도적이다. 인프라와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고 선수에 대한 보수도 어느 투기 종목보다도 높다보니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계속 유입되어 선수층과 인재풀도 매우 두텁다.[37] UFC를 필두로 한 종합격투기와도 자금력과 흥행력, 규모에서 여전히 비교불가 수준으로 압도한다.
미국에선 인기가 하락하여 인기 스포츠 순위 9위까지 내려앉았지만 의외로 그 외의 국가에선 오히려 인기가 올라간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는 매니 파퀴아오의 등장으로 국가 전체가 복싱 붐[38]이고 종합격투기가 절대적 강세였던 일본에서도 복싱의 시청률이 더 높아졌으며 경기도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39] 인기 챔피언은 경기당 대전료가 2억엔에 달한다.
유럽에서의 인기는 조 칼자게[40]나 클리츠코 형제 등 유럽 복서들의 약진으로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올라갔다. 영국은 여기서도 훌리건들이 판치고 독일은 유럽 최대의 시장으로 인기 선수들의 경기는 시청률이 50%에 육박할 정도이다.슈퍼미들급과 헤비급을 비롯한 몇몇 체급에선 오히려 미국에서 유럽으로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잦다.
사실상 헤비급의 인기는 마이크 타이슨 전성기 시대를 정점으로 내리막길이었으나 현재는 클리츠코 형제 외에도 무패 헤비급 챔피언 디온테이 와일더나 수년만에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로부터 왕좌를 빼앗은 타이슨 퓨리, 앤소니 조슈아 같은 클리츠코 형제 못지않은 혹은 더강한 괴물급 피지컬 소유자들이 등장 하여 인기가 더욱 올라가고 있는 추세이다. 앤소니 조슈아 같은 경우 프로데뷔 후 짧은 경기수에 비해 이례적일 정도로 빠르게 IBF챔피언이 되었고 2017년 4월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와의 방어전에서 클리츠코와 같은 4200만 파운드의 대전료를 받았다.
몇 년간 끼리끼리 헤비급을 나눠먹었던 우크라이나의 클리츠코 형제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데, 경기할 때마다 시청률이 50%를 넘나들며 거대한 축구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수퍼스타들이다. 2011년 7월 2일 개최된 데이비드 헤이와의 통합 타이틀전에서는 시청률 67%, 시청자 수 1550만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전세계 150여개 국에 중계됐다.
중국 역시 아마추어 복싱에서 엄청난 진전을 보이며 프로 복싱 역시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리키 해튼 VS 메이웨더전은 중국 내에서만 5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라이트플라이급 올림픽 2연패를 기록한 쩌우스밍은 매니 파퀴아오를 관리하는 밥 애럼 프로덕션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시진핑이 젊었을 때 복싱을 수련했다고 중국 아마추어 복싱 대표팀 있는데서 자세를 취하기도했었다.
아랍이나 그 외 가난한 나라도 제법 시장성이 있고 선수들의 수급이 이뤄진다. 종교로 막장이던 탈레반조차도 인정하던 정말 얼마 안 되던 스포츠였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을 때 아시안 게임이라든지 국제경기 나가는 선수들에게까지 수염을 밀지 못하도록 해서 국제권투계가 아프간 선수들을 출전하지 못하게 하자 결국 국제경기를 보이콧해버렸다. 201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취재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로 권투였다고 한다. 훈련장과 경기에서만은 그녀들도 히잡을 벗을 자유가 허용된다. 탈레반 시절이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이 나라는 아직도 극렬 보수적 종교 신앙이 가득한 곳임을 생각하면 권투의 인지도를 알 수 있는 대목.
넬슨 만델라도 젊은 시절 권투선수였으며 차별과 탄압에 시달리던 남아공 흑인들에게 권투가 축구와 더불어 현실의 아픔을 잊게 하던 스포츠였다고 한다.
과거 리비아독재자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권투가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국가적으로 금지시켰던 적이 있었다. 과거 아프리카 내에서도 알아주는 권투 강국 중 하나였던 리비아는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가 되자 다시 권투가 활성화가 되기 시작했다. 기사
이디 아민은 숙청을 복싱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런 인기 덕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경기 당 대전료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중량급의 인기 있는 챔피언이라면 순수 대전료만 500만 달러 이상을 받고 오스카 델라 호야 같은 인기 챔피언은 수천만 달러에 이른다.[41] 막대한 돈이 오가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스펙을 가진 선수들이 몰린다.
서양 유머 중 이런 것이 있다. 유명 프로 복서가 강도를 만나 20달러가 든 지갑을 털렸는데, 기자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맞서 싸웠다면 한 방으로 쓰러뜨렸을 텐데 왜 그냥 지갑을 빼앗겼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고작 20달러 대진료를 받고 싸우란 말이오?" 실제로 실력 좋고 흥행성 좋은 프로 복서들은 내지르는 주먹 한방마다 1만불은 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진료가 상상을 초월한다. 도리어 전성기의 호야같은 최고의 인기 복서는 아마 펀치당 1만불로도 부족할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 타이슨 VS 마이클 스핑크스와의 경기서 타이슨의 주먹 한방의 가격은 73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억 2천만원이 넘는 펀치였다. 환율과 그때의 가치까지 같이 고려하여 계산한다면 한방당 15억이 넘어가는 펀치라는 말이 된다.
프로 선수만 해도 (몇몇 비인기 체급을 제외하곤) 체급 당 만 단위에 이르며 아마추어까지 가면 선수층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또 아마추어에서 활약하는 복서들의 전적을 보면 전적이 200전이 넘어가는 선수들이 허다하다. 어지간한 전적으로는 월드랭킹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고 그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선 지역 챔피언만 해도 수입이 상당하다.[42]
일본의 경우는 여전히 복싱이 큰 인기를 끌고 있고,(시청률에서도 2009년도부터 다시 종합격투기를 역전했다.) 인기 상위 랭커들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만큼 다른 양상도 있고 한국이든 일본이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드라마 등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경량급에선 여전히 세계 랭커들이 여럿 포진돼 있고, 간간이 세계 타이틀전도 갖고 있다.
이런 큰 시장 규모에도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더이상 이렇다할 큰 인기를 끌고 있지는 못하지만, 뭐가 되었던 '''세계에서 가장 인기와 영향력, 시장 규모가 큰''' 격투기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주요 기구들의 챔피언 대해서는 '''영어 위키백과''' 참고.
미국뿐만 아니라 중남미 , 유럽 , 중앙아시아 출신들도 많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Association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Boxing_Federation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Organization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Boxing_Council

10.3. 여자 복싱


복싱, 넓게 보면 격투기란 스포츠 자체가 다른 종목들보다도 굉장히 남성적인 속성이 강하다보니 여성 선수의 입지는 매우 좁다. 일단 일반인의 취미 활동선에서는 활발하지만, 프로의 단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여성 복서의 숫자부터가 남성 복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성층에 비해 일종의 틈새 시장의 규모로 존재하고 있다. 역사 자체도 수백 년은 된 남자 복싱에 비해 이제 막 자리를 잡는 단계. 이런 판에 상술한 여러 공신력없는 단체들의 벨트 난무가 여기서도 벌어지고 있어 문제다.
남자 복싱이야 시장이 크고 여러 영향력 있는 슈퍼 스타들을 중심으로 이런 문제에 자정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여자 복싱은 비주류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더 심한 편이다.[43] WBA와 WBC에서 각 산하에 WBAF와 WBCF라는 별도의 단체를 두고 여자 챔피언 및 세계 랭킹을 매기고 있는 게 그나마 공신력 있는 정도.
여성 프로 복싱의 경우 남성 프로 복싱과 달리 각 라운드를 2분으로 잡고 있으며, 상의에 탑을 걸친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상술한 것처럼 선수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남자 프로 복싱과 달리 한 명의 복서가 자신의 체급을 몇 번이나 바꿔 2~3체급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드물지 않고, 특정 체급의 챔피언이 그 타이틀을 보관 유지한 채로 다른 체급의 챔피언에 도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상대 선수가 어느 단체에 속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요소들을 일일이 따져가면 상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타 종목을 겸한 선수나 타종목 출신의 인재들에 의지해서 성립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이런 여자 프로 복싱이 가장 성공하고 있는 나라로서는 독일이 있으며, 아르헨티나, 멕시코도 활기가 있고 한때의 기세는 잃었다고는 해도 미국도 여자 복싱이 뿌리 내리고 있는 국가이다.[44] 일본의 경우 1999년부터 JWBC(일본여자복싱협회)라는 단체가 발족되어 여성들만의 첫 단독 대회를 개최한 이래 2007년 11월 여성 복싱을 정식으로 인가하였다.[45]
하지만 이런 국가들 역시 어디까지나 일종의 부가 옵션 정도의 위치이지, 전 세계적인 흥행 아이템으로 띄워줄 만한 입지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한국의 경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런 여성 복싱을 메인으로 띄우면서 공신력없는 단체들이 벨트를 남발하고 프로모터들이 수준 낮은 외국 여자 복서들을 불러오며 각종 편파 판정을 일삼아 저질 경기들만 이어진 덕분에 한국 복싱팬들에게 여자 프로 복싱은 저주의 대상으로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는 한국 내의 기형적인 복싱 운영이 낳은 결과이지 전 세계 여자 프로 복싱이 이런 양상이 아니라는 걸 염두해둬야 한다. 하지만 밑의 한국 복싱의 처절한 현실을 감안할 때, 외국의 그런 수준 높은 여성 복서들이 초청되어 한국 복싱 팬들의 기대에 부합될 만한 시합이 연출될 가능성은 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4.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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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6일 한국 타이틀전 포스터. 1981년이 아니다. 포스터만 봐도 한국 권투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이 대회 관련 정보가 궁금하다면 참고. 포스터는 허접하지만 그래도 나름 규모 있고 즐겁게 치러진 대회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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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이 지난 '''2014년''' 8월 30일 KBA 주최 경기 포스터. 3년 동안 진보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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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클리츠코 vs 데이비드 헤이 전의 권투 포스터.
한국에선 70년대~80년대 수많은 챔피언을 배출하면서 국민 스포츠로 떠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무하마드 알리 방한 당시엔 나라가 들썩거렸고 TV에서 생중계를 했었을 정도.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 역시 알리의 팬이라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후임 전두환도 복싱을 좋아했다고한다.[46] 경량급에선 세계 챔피언도 자주 배출했었고 중량급도 슈퍼미들급까지는 박종팔 등이 세계 챔피언을 여러 번 해먹었다. 지금은 믿겨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90년대 초반만 해도 복싱 타이틀전은 온 가족을 TV 앞으로 몰려들게 만드는 흥행 프로그램이었다. 리즈 시절에 인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는데, 80년대 복싱 슈퍼스타 장정구[47]의 1년 수입이 당시에 '''2억 4천1백만원'''이나 됐다. 참고로 이 시절은 강남의 압구정동 아파트 가격이 1채당 1억원이 안되던 시절이다.
참고로 당시 프로야구 선수는 장명부, 김일융 같은 거액의 돈으로 온 재일교포 선수들이 8000만원대였고, 최동원이 7천만원으로 국내선수 연봉 1위였다. 축구는 그 당시 가장 잘나갔던 허정무, 조광래가 3천만 원이 조금 안되는 연봉이었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도 양궁, 레슬링, 펜싱과 함께 한국의 메달을 책임지는 주요 종목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으나, 올림픽에서는 1988년 김광선, 박시헌 이후 금메달이 없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함상명 단 한 명만 출전하였다. 지난 2009년에는 장정구 선수가 권투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2013년에는 유명우 선수가 뒤이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
하지만 현재는 처참하게 인기가 낮아져 많이 몰락한 상황이다. 60년대부터 불어온 복싱 붐은 수많은 세계챔피언들을 배출하여 한국을 복싱강국으로 만들었지만,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지나 사회의 빈곤이 점차 줄어들자 복싱은 축구야구 같은 타 종목들에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위험하고 고단한 스포츠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절에는 두 주먹으로 싸워 투혼을 불사르는 것이 매력적이었지만, 먹고 사는 것이 나아지자 복싱은 무척이나 고달프게 보였기에 인기가 저조해졌다. 마지막 세계 챔피언은 김지훈 선수로 2009년 IBO 슈퍼페더급 타이틀을 획득하여 2010년 1월에 메이저 기구 진출을 위해 반납하였다. 그나마 IBO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마이너 기구였기에 국내 유일의 세계 챔프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진짜 메이저 기구의 마지막 챔피언은 지인진이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에서의 효자 종목으로 불리는 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다. 게다가 현직 챔피언이었던 선수가 생활고를 이유로 킥복싱으로 진출했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한국권투위와 프로모터들이 얼마나 개막장인지 알 수 있다. 기존 권투위 상황이 개막장[48]이라 국내에서도 안 그래도 약한 기반에 기구들이 갈라지는 중이다. 기존의 한국권투위원회(KBC#)에 더해 한국권투연맹(KBF#), 한국프로복싱연맹(KPBF#), 한국권투협회(KBA#) 등 4개 기구가 활동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 코어 팬층은 존재하는 편임과 동시에 무엇보다 생활체육 기반이 두터운 편이라는 거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총 성적도 예전에 차곡차곡 쌓아둔 게 많아서 금메달 58개, 은메달 25개, 동메달 30개로 2위인 태국과(금 20개, 은 22개, 동 26개) 아직은 차이가 크다. 1962년 대회부터 1990년 대회까지 거의 독식 수준으로 메달을 가져간 덕분이다. 특히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전 체급 금메달 12개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기록이다. 물론 홈팀에 유리한 판정도 있었다.
여성들에게도 권투가 개방되면서 한국 여성 챔피언들도 많이 등장하고, 지금 한국 권투계에선 권투위든 프로모터든 여자 권투계를 상당히 밀어 주고 있다. 하지만 선수가 여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남성 경기에 비해 재미가 떨어져서 협회에서 챔피언을 만들기 위해 태국이나 미국에서 4, 6라운드를 뛰던 듣보잡 선수를 데려와 세계 타이틀전에 세우거나, 김주희 선수가 세계 5대기구를 석권했다 하나, 해외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49]
이런 문제를 제외하고도 계속해서 비리 사건이나 편파판정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는 한국권투위나 관계자들이 문제의 핵심이며, 올드 팬들의 텃세 역시 팬덤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많다.
한 마디로 현재의 한국 권투는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완전 망했다'''. 한국에서 종합격투기가 권투의 인기를 추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권투 자체를 아무도 안 하고(특히 프로 선수로), 아무도 안 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허영만은 <식객> 11권(도시의 수도승)에서 시장통에서 권투를 해도 사람들이 안 볼 정도라고 안타까워 했을 정도다. 70년대에 권투만화이던 <무당거미>를 비롯한 작품을 연재할 당시 권투선수들을 찾아가 자문을 얻던 추억을 경험한 그로선 더더욱 느낄 듯. <식객>을 연재하면서 다시 찾아간 예전 그 선수들에게 '그 때와 너무나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한탄을 듣었다고 한다. 정말로 어떻게든 프로복싱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가까운 일본이라도 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지경이다.
국내 경기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외국 경기들도 방송 중계도 거의 안 한다.
심지어 이런 소식도 있다. 요약하자면 일본 챔피언인 가메다 고키에게 국내 복서인 손정오가 떡밥 격으로 던져졌는데, 시합장소가 국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과 업무를 협력할 만한 파트너가 없어서 일본측이 시합 개최의 모든 과정을 주도한다는 이야기. 홈 어드밴티지조차 빼앗길 정도로 몰락해버렸다는 말인데, 야구로 치면 한국 땅에서 WBC 결승전이 한일전으로 열리는데 KBO같은 조직이 전혀 없어서 대회 준비도, 심판도 다들 일본에서 도맡아 경기하는 꼴이다.[50] 게다가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복싱인기가 식어가는 바람에 안그래도 침체되고있는 한국의 복싱은 더욱더 침체되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팬픽 만화인 짱구는 못말림에서도 이러한 국내 권투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몇몇 있다.
안 그래도 척박한 권투계에서, 그것도 새터민 출신 여성 복서의 대전료를 주지 않았다가 피해자 복서가 고소하는 사건도 있다. #
아이러니한 건 프로 복싱은 잡초도 못 자라날 정도로 심하게 멸망했는데, '''아마추어 복싱'''[51] 환경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낫다는 것. 국내 아마추어 복싱은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세계대회에서 실적을 냈을 경우엔 억대 연봉까지 가능하다. [취재파일] 복싱 신종훈 '태극마크 포기', 누구의 책임인가? 위 기사에 실린 신종훈의 경우, 인천시청 소속으로 받는 연봉이 8천만 원이고, 여기에 우수선수 지원금과 각종 수당을 합치면 연수입 1억원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의 경력에서 눈에 띄는 실적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복싱 금메달 정도인데, 이 정도 실적으로 대전료 1억 원은 미국 프로복싱계에서도 절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도 1년에 몇 번 없을 슈퍼매치의 언더카드급(즉 방송중계가 되는) 경기의 대전료가 5천~2억 내외이다.
이렇게 아마 복싱의 보상이 그나마 후하다 보니 아마 복싱이 전업 프로복서가 되기 전 입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을 전업 아마 복서로 붙잡아놓고 있다. 3라운드 짜리 아마 복싱과 10/12라운드짜리 프로복싱은 다른 경기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선수들이 아마복싱에 남기를 선호하는 한 프로복싱계의 경쟁력 개선은 요원하다.
시스템 측면에서도 이미 실패한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계속 운영하는 게 문제다. 복싱선수의 경우 한 지도자에게 꾸준히 지도받아야 하는데[52] 우리나라는 태릉에 입소하여 훈련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가르치는 국가대표 감독의 전문적인 선수 지도 역량이나 열의도 의심받고 있다. 한번 금메달 따기도 힘들다는 전국체전을 9년 연속으로 우승한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전까지 1등을 차지하는데도 참관하지 않는 등.
참고로 한반도 권투 선수 중 처음으로 링에서 사망한 선수는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김득구가 아니라 '''김정원'''(金正源, 1910~1930)이다. 코바야시 노부오(小林信夫)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53] 김정원은 1930년 9월 1일 고시엔 테니스 코트의 특설 링에서 필리핀의 보비 윌스에게 9회 KO패 당한 후 사망하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 일본에서는 자국(일본통치기니까) 권투 최초의 사망사고 사례로 오히려 우리보다 더 크게 다루고 있으니 참 비운의 선수다.
역대 올림픽 복싱 성적은 이렇다. https://en.wikipedia.org/wiki/Boxing_at_the_Summer_Olympics 한국은 금메달 순으로는 19위 , '''토탈 합계순'''으로 보면 14위 정도 된다.
한국 홈에서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박시헌로이 존스 주니어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편파 판정 논란이 있다.
'''옛날에 워낙 잘 해 둬서''' 역대 아시안 게임 권투 성적은 아직도 '''1위'''다. https://en.wikipedia.org/wiki/Boxing_at_the_Asian_Games
하지만 저렇게 좋던 옛 영광은 뒤로 하고 2016 리우 올림픽,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부 '''노 메달'''이라는 심히 민망한 기록이 나와 버렸다. 대한민국/스포츠 참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 연예인 김종국 , 장혁, 조진웅도 복싱 팬이라고한다.

2019년 5월 3일, 체대 입시를 위한 승부조작이 만연하다는 사실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며 그나마 옹호받던 아마추어 복싱 기반조차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며 한국 복싱은 그 자체로 망해가는걸 여과없이 보여주고 말았다.
사실 생활체육으로는 활발하다는데 다른 격투기들에 비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54] '''복싱 인기가 죽은게 IMF 외환위기 이후라고보면 벌써 20년이 넘은지라''' MMA에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복싱 자체를 즐겨보는 인구는 많지 않다.

10.5. MMA에서의 복싱


복싱은 MMA에서 쓰이는 모든 무술을 통틀어 기본 중에 기본이다. 복싱을 배우지 않고 MMA에 출전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경기를 그래플링 하나만으로 운영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타격에서 킥보다는 펀치가 배우기도 쉽고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무술이 그러하듯 당연히 복싱 하나로만 MMA에서 다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클린치테이크다운 연계로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 MMA에서 복싱을 잘 쓰는 선수로는 홀리 홈[55] 도미닉 크루즈[56], 네이트 디아즈, 최두호, 코너 맥그리거, 코디 가브란트[57] , 페트르 얀 등이 있다.

11. 유명 선수



11.1. 국내


"현역" 표시가 없는 선수는 은퇴 선수이다.
  • 김광선:1988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김기수: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 챔피언.
  • 김득구: 레이 맨시니와 시합 중 혼절하여 뇌사 후 사망한 비운의 복서.
  • 김민욱: 전 OPBF(동양) 수퍼 라이트급 챔피언. 미국 원정도 활발하게 다니며 활동했지만 2016년 이후에는 경기가 없어 사실상 은퇴 상태.
  • 김봉준: 전 WBA 미니멈급 챔피언. 5차 방어까지 성공했으나 최희용과의 대결에서 패해 타이틀을 내줬고 이후 재대결에서도 패했다.
  • 김성준: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소매치기 출신 복서로 유명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1989년 2월 3일 투신자살했다.
  • 김주희: 전 WBA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WBA이외에도 IFBA, WIBA, WIBF, WIBA, GBU, UBO 등 온갖 단체의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을 휩쓰고 다닌 간판 여자 복서였다.
  • 김지훈: 은퇴 후 종교에 귀의한것으로 추정되는데, 하필이면 그 종교라는게 개신교계 이단중 하나라는 사이비 종교 은혜로교회다.
  • 김철호: 전 WBC 수퍼 플라이급 챔피언.
  • 문성길: 전 WBA 밴텀급, WBC 수퍼 플라이급 챔피언.
  • 박시헌:1988 서울 올림픽 금 -메달리스트.
  • 박종팔: 전 IBF, WBA 수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과 함께 중량급 세계무대에서 가장 존재감이 있었던 선수.
  • 박찬희: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 박현성: 국가대표, 프로복서, 조직폭력배, 복싱 지도자, 종합격투기 진출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선수.
  • 백인철: 전 WBA 수퍼 미들급 챔피언. 박종팔은 물론 그의 천적이었던 풀헨시오 오벨메이야스까지 꺾으며 중량급에서 메이저 수준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다.
  • 변정일: 전 WBC 밴텀급 챔피언.
  • 신준섭: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염동균: 전 WBC 수퍼 밴텀급 챔피언. 로열 고바야시(일본)를 상대로 타이틀을 획득해 푸에르토 리코 원정에서 윌프레도 고메즈[58]에게 패하기까지 화려한 1970년대를 보냈다.
  • 유명우: 장정구와 쌍벽을 이루는 경량급 레전드.
  • 유제두: 전 WBA 수퍼 웰터급 챔피언. 1970년대 간판 스타였다.
  • 이시영: 배우를 겸업하면서도 아마추어 무대에서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복싱 겸업 배우라는 점에서 한국의 미키 루크로 비유되기도 한다.
  • 이인영: 국내 첫 여성 챔피언
  • 이흑산: 카메룬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난민 출신 복서.
  • 장정구: WBC 선정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이자 한국인 최초 WBC 명예의 전당 입성자.
  • 정두홍: 무술 감독으로 30대 후반에 프로복싱 경기를 가져서 화제가 되었다.
  • 지인진: 대한민국의 마지막 메이저기구 남성 프로복싱 챔피언.
  • 최요삼: 시합중 사망한 또다른 비운의 복서.
  • 최용수: 전 WBA 수퍼 페더급 챔피언. 동체급에서 WBC 타이틀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40대 중반의 나이에 복귀해 두 게임을 TKO로 이겼지만 다시 은퇴.
  • 최현미(현역): 현역 유일의 2체급 석권 세계 챔피언. 장정구의 제자이기도 하다.
  • 홍서연: 1987년생, 전 WBO 미니멈급, 전 WIBA/WBO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한때 최현미와 함께 한국 여자 복싱의 간판이었다. 지인진이 길러낸 인재 중 하나다.
  • 홍수환: 이른바 '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11.2. 국외



12. 그 외 주요 선수들


  • 데이비드 헤이 : 크루저급에서 활동하다 헤비급으로 전향한 뒤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에게 당한 만장일치 판정패와 과거 어이없는 TKO패 한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경기를 이긴 헤비급의 강타자 중 한 명이다. 비록 클리츠코에게 패하긴 했지만 헤비급 타이틀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강타자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나, 같은 영국 출신의 데릭 치소라를 꺾고 WBO 챔피언에 오른 뒤 3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졌다. 의사가 은퇴를 권고하는 등 부상이 많아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꾸준히 재활에 전념했고, 이후 복귀전을 KO승으로 장식하며 헤비급 전선에 복귀했다.
  • 래리 홈즈 : 알리와 같은 체육관에 알리의 스파링 파트너 출신으로 알리 이후 타이슨의 등장 전까지 헤비급을 주름잡았던 강자. WBC 헤비급 타이틀을 16차 방어까지 성공했지만 기량과는 별개로 알리 이후 헤비급 선수들의 스타성이 예전같지 않을 때라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는 선수다. 헤비급이면서 잽을 정말 아름답게, 또 잘 던졌었다. 커리어 후반에 타이슨과 대결해 4라운드 KO패를 당하기도 했다.
  • 레이 맨시니 : 김득구와 1982년 WBA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 복서. 그 경기 중 김득구가 사망하고, 이는 라운드가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어드는 계기가 된다. 다만 김득구와의 경기 후에 기량이 쇠퇴하긴 했지만 바로 퇴물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 리카르도 로페즈 : 최경량급의 최강자. 1990년 WBC 미니멈급 타이틀을 획득한 뒤 2001년 9월까지 타이틀을 지키며 51승 1무 38KO KO율 73%로 은퇴했다. 더 파이팅리카르도 마르티네스의 모델.
  • 리키 해튼 : 45승 3패 32KO를 기록한 영국 출신의 2000년대 후반 주니어웰터급의 강자. 강력한 펀치력을 자랑하는 강타자였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스챠 추를 TKO로 꺾을 정도의 강자였으나, 웰터급으로 상향한 뒤 플로이드 메이웨더에게 10라운드 TKO로 패했으며, 다시 주니어웰터급으로 내려갔지만 매니 파퀴아오에게 2라운드 KO로 패했다. 평상시에는 똥배 나온 아저씨 체형으로 활동하다가 경기 앞두고 감량하는 타입이라 별명이 리키 패튼(Ricky Fatton)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아오에게 패한 이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우크라이나의 강타자인 비야체슬라프 센쳰코에게 또 다시 KO패를 당한 뒤 은퇴했다. 은퇴 이후 우울증 치료에 전념했고,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 문성길 :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벤텀급 금메달,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벤텀급 금메달, 1986년 리노 세계복싱선수권 벤텀급 금메달. WBA 벤텀급/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등 2체급을 제패했다.[61] 보통은 나이먹고 한 체급을 올리는 데 오히려 한 체급을 내려서 세계를 제패한 것이 특이한 점. 미국에 이 선수의 이름을 딴 인디밴드가 있으며, 이 밴드는 미국 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김득구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른 바 있다.
  • 미구엘 코토 : 슈퍼 라이트급 - 미들급 전선에서 활약한 푸에르토리코의 강자. 전적은 40승 5패로 검은별이 꽤 많지만, 그 때마다 심기일전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2008년 7월의 안토니오 마가리토와의 경기는 마가리토가 석고 밴디지를 했음이 나중에 들통났다. 사실상 흉기로 타작당한 셈. 2009년 11월에는 매니 파퀴아오에게 12라운드 동안 또다시 매타작을 당하며 12라운드 TKO로 패했다. 2012년 5월에 메이웨더에게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은퇴가 유력했지만 2014년 6월 미들급 챔피언 세르히오 마르티네즈를 10라운드 레퍼리 스탑으로 꺾고 커리어 말년에 챔피언 벨트를 하나 더 수집했다. 미들급 리니얼 챔피언 게나디 골로프킨과의 대결을 피하고 2015년 11월 사울 알바레스와 대결해 12라운드 판정패로 타이틀을 상실. 은퇴하나 싶더니 2017년 8월 26일 WBO 슈퍼웰터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일본의 가메가이 요시히로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며 12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 또다시 세계챔프에 등극했다. 상대의 고간을 치는 반칙을 종종하여 사자의 심장을 가진 부랄왕 김코토라는 별명이 디씨 복갤 한정으로 존재한다.
  • 미키 워드 : 전적 38승 13패. IBF 슈퍼라이트급 타이틀전에 한 번 도전했었지만 3라운드 TKO로 패한 평범한 복서. 하지만 아르투로 가티와의 트릴로지가 정말, 정말 유명하다. 그 중 1차전#은 복싱 문외한도 한 번 보면 빠져들 정도의 혈투. 전적에서 앞서는 가티의 초반 공세를 견뎌내고 8~9라운드 가티에게 치명적인 레프트 바디샷을 먹이는 장면, 그리고 10라운드 마지막 혈전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경기이다. '더 파이터'가 미키 워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인데 애석하게도 가티와의 경기는 다루지 않았다.
  • 버나드 홉킨스 : 미들급/슈퍼미들급/라이트헤비급을 제패한 복서. 미들급을 지배하며 펠릭스 트리니다드, 오스카 델 라 호야를 KO로 눕힌 전성기적 경력도 경력이지만, 라이트헤비급으로 증량 후 40대 후반에 라이트헤비급을 정복했다. 켈리 파블릭, 장 파스칼 등 젋은 복서들을 노련한 기술로 요리했고, 채드 도슨에게 바디슬램을 당하고도 패하기도.[62] 2014년 11월 동유럽의 돌주먹 세르게이 코발레프에게 12라운드 판정패를 당하고 라이트헤비급 리니얼 챔프 자리를 내줬다.2016년 12월 51세의 나이로 조 스미스 주니어를 상대로 한 고별전에서 커리어 첫 KO 패배를 당하면서 은퇴.
  • 살바도르 산체스 : WBC 페더급 챔피언. 70년대 후반 강자들이 명멸했던 경량급에서 페더급 10차 방어에 성공했다. 전적 44승 1무 1패, 그리고 페더급의 전설 중 한 명인 아주마 넬슨과 슈퍼밴텀급의 최강자였던 윌프레도 고메즈를 KO로 눕혔다. 그러나 만 23세에 교통사고로 요절해 복싱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선수.
  • 세르히오 마르티네즈 : 복싱이 그리 인기있는 국가가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들급 복서. 97년에 데뷔했지만 2006년까지는 라티노 챔프전 정도를 뛰는 비인기 복서였는데, 삼십대 후반 커리어 말년에 빛을 본 선수다. 2010년 켈리 파블릭을 잡고 WBC 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매튜 매클린, 마틴 머레이 등의 강자를 잡아냈으며, 2014년 6월 미구엘 코토에게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넘겨준다.
  • 쉐인 모슬리 : 슈거 레이 로빈슨, 슈거 레이 레너드에 이어 '슈거'라는 별명을 이어받은 '슈거' 셰인 모슬리. 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에서 활동하며 굵직굵직한 경기를 여럿 만들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웨더를 상대로 경기 초반 굵직한 펀치를 꽂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는 등 스피드에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였고, 오스카 델 라 호야와의 2연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훗날 모슬리가 델라호야 프로모션 소속이 되자 모슬리와 호야가 자신들의 2연전을 이야깃거리 삼아 개드립을 주고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 전 부인이 한국계였던걸로도 유명했다.
  • 아르투로 가티 : IBF 슈퍼페더급 챔피언, WBC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을 역임한 복서. 펀치를 많이 내뿜는데다가 컷이 잘 나서 유혈이 낭자한 경기를 만드는, 팬들과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라서 링매거진 선정 Fight of the Year에 세 번이나 선정됐다. 그 중 두 번은 미키 워드와의 1, 3차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라이트웰터급 챔피언전을 가져 패하기도 했다. 은퇴 후 2009년에 브라질의 한 호텔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는데 와이프에게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 알렉시스 아르게요 : 1970년대 페더급/슈퍼페더급/라이트급 3체급을 제패한 니카라과 출신 경량급 챔프. 4체급 제패에 도전했지만 실패 후 은퇴했다. 기량만큼이나 멋진 외모를 가진 선수로,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별명은 '링 위의 신사'로 복싱 만화에서 콧수염 기른 신사 기믹 캐릭터들의 조상 격이다. 고국인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과 시장을 역임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가티와 마찬가지로 정치 싸움에 휘말려 타살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 윌프레도 베니테즈 : 17세에 WBA 슈퍼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한 천재 복서. 자기 관리에 실패해 롱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F4 바로 아래 정도로 평가되는 강자다. 로베르토 두란을 15회 판정으로 잡아내기도 했고. 헌즈와 레너드에게는 각각 1패를 기록. 말년에 심각한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 잭 존슨 : 1900년대 후반부터 191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헤비급 챔피언으로 최초의 흑인 헤비급 챔피언이다.(이 사람 이전의 흑인은 'Colored Heavy weight Champion'이라는 인종차별적 개념을 따로 두고 세계 챔프는 백인만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무척 불우하게 살았고 교통사고로 1946년에 68살로 세상을 떠났다.
  • 제임스 J. 제프리 : 잭 존슨과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인 백인 복서. 둘의 대결은 당시, '세기의 대결'로 불리었다고 한다.
  • 조 루이스 : 1937년부터 1949년까지 헤비급 타이틀을 보유한 '갈색 폭격기'. 독일의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막스 슈멜링과의 대결이 유명하다. 결과는 1승 1패. 1936년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1차전은 12라운드 KO로 패했는데, 1936년 링매거진 올해의 경기에 꼽혔다고 한다. 1950년 록키 마르시아노에게 패하고 은퇴. 흔히들 타이슨의 명언으로 알려진 "두들겨 맞기 전 까지는 모두들 그럴 듯한 계획이 있다."("Everyone's got a plan until they get hit.")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조 칼자게 : 슈퍼미들급에서만 활동하며 46승 무패로 은퇴한 영국의 복서. 세계기구가 늘어나며 다체급 제패가 쉬워진 현 복싱계 상황 상, 그리고 뭔가 없어보이는 싸대기 펀치 때문에 저평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로이 존스 주니어나 버나드 홉킨스, 미켈 케슬러 등 슈퍼미들급의 역대급 선수들과 대결하면서도 46전승을 거둔 굉장한 선수다.
  • : 이유는 항목 참조
  • 카를로스 몬존 : 마빈 해글러 등장 이전 미들급을 평정했던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복서. 1970년 11월 니노 벤베누티와의 대전에서 승리해 타이틀을 획득한 후 14차 방어까지 성공했으나 돌연 은퇴했다. 그 후 아내를 살해하여 복역하다 특별감호로 잠시 교도소를 나왔지만 가족을 만나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카오사이 갤럭시 : 낙무아이 출신 레전드 복서. 1980년대 슈퍼플라이급의 지배자로서 타이틀을 19회 연속 방어한 후 은퇴했다. 전적은 49승(43KO) 1패. 1999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이는 1995년 헌액된 일본의 파이팅 하라다에 이어 동양인 복서로는 두 번째이다.
  • 플로이드 패터슨 : 커스 다마토가 길러낸 전설적인 복서 중 한 명으로 스웨덴의 잉그마르 요한슨과의 라이벌리는 꽤 유명하다 (패터슨 2승 1패 우위). 그러나 헤비급 치고는 무게가 적게 나가 중량급 선수들에 비해 불리했고 결국 다마토의 조언을 뿌리치고 소니 리스튼과 2차례 시합해 2번 다 진 뒤 쓸쓸히 퇴장했다.
  • 황충재
  • 호세 피피노 쿠에바스 : 턱 분쇄기. 이 쪽도 13살에 데뷔해 만 17세에 웰터급 챔피언에 등극한 멕시칸 천재복서다. 강렬한 레프트훅으로 도전자 두 명의 턱을 날려버린 후 Jawbreaker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었다. 11차 방어까지 성공했지만, 토마스 헌즈에게 2라운드 KO로 패한 뒤 하락세에 빠져 반타작 복서가 돼 버린 뒤 은퇴. 헌즈와의 경기#는 헌즈의 사기성을 잘 보여주는 경기다.
  • 이시영 : 배우이나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 원랜 배역 때문에 취미로 시작했으나 실제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한 적도 몇 번 있는데다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런던 올림픽 도전까지 고민했을 정도니 취미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선수 은퇴하고 다시 취미로 즐기는 중

13. 관련 용어



14. 관련 작품


전통적으로 인기도 있었고 인식도 나은 편이기 때문에 한일 가리지 않고 만화 등의 소재로 잘 쓰이는 편. 한/일 양국 모두 복싱이 인기를 끌던 때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기 때문인지, 헝그리한 스포츠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소재로도 잘 쓰인다.
만화의 경우 여러 무술이 경합을 이루는 경우에는 발기술이 없다는 핸디캡이 반드시라고 해도 될만큼 부각이 되고, 그 것을 극복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하체기술 부재가 발목을 잡아 파훼되는 편이다. 하지만 기공이나 가상의 무술이 등장하지 않는 리얼한 격투작품에서는 주먹을 쓰는 무술 중에서는 최강의 위치를 거의 점유하고 있고, 주인공이 권투의 기술을 구사하거나 배우는 일이 잦다. 이는 권투만으로 최강이 될 수는 없지만 최강이 되려면 반드시 권투를 배워야 하는 실제 종합격투기의 풍조와 동일하다. 또한 마이크 타이슨이나 무하마드 알리를 오마쥬한 캐릭터가 높은 확률로 등장하는데, 타이슨의 오마쥬는 보통 단순무식 거만한 악역[63]이고 무하마드 알리의 오마쥬는 복싱의 구도자 컨셉의 레전드 선역으로 등장하는 게 대부분이다.
초창기 격투 게임에서는, 특히 SNK 게임을 중심으로 키가 큰 미국 국적의 흑인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백인이나 동양인은 물론 여자 캐릭터까지 추가되는 등, 점차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고 있다. 다만, 이것은 복서에 대한 스테레오 이미지가 바뀌었다기 보다는, 기존 캐릭터들과 차별을 두려다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대부분의 복서 캐릭터의 경우, 하단 공방이 비교적 부실하고, 리치가 짧은 대신, 화려한 콤보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플레이어의 컨트롤에 성능이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KOF 98헤비 D!처럼 태생이 약캐릭터인 경우도 있다.

14.1. 소설



14.2. 만화, 애니메이션


  • 1파운드의 복음
  • 권투암흑전 세스타스
  • 그린보이
  • 내일의 죠
  • 너클걸
  • 더 복서(웹툰)
  • 더 파이팅
  • 듀크
  • 라라팔루저 - 예전 스투닷컴에서 연재하던 여자 복싱만화. 안됐지만 이제 게재가 종료되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 링에 걸어라
  • 무당거미
  • 무용전
  • 빵야빵야
  • 사마귀
  • 신의 아들
  • 아웃복서
  • 일곱 개의 숟가락
  • 지옥의 링
  • 타로
  • 폭풍의 15라운드
  • 홀리랜드
  • 쎈놈
  • BLACK-BOX
  • KATSU!
  • 복서들
  • 리쿠도
  • 파이팅! 모나코와 소라 - 더 파이팅의 잇포와는 다르게 주인공이 인파이터가 아닌데다가 크롱크 스타일이라는 다소 생소한 운영방식을 사용한다. 복싱계 관련자나 이쪽 분야 매니아가 아니면 잘 모를 법한 운영방식인데, 쉽게 말하면 양팔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운영방식이다. 자신이 주로 쓰는 손(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은 거대한 망치역할을 하여 카운터를 먹이는 용도이고, 반대쪽 손은 채찍과 같은 역할로 빠른 프리커잽을 통해 상대에게 카운터를 먹일 빈틈을 만들거나 진을 빼놓는 운영방식이다. 이 방식을 사용시, 망치역할의 손은 가드를 올리듯이 얼굴옆에 붙여들고 프리커잽을 날릴 반대쪽 팔은 아래로 내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다.

14.3. 영화



14.4. 게임



14.5. 픽션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4.6. 대전액션게임에서 권투가 유파인 캐릭터



15. 둘러보기







[1]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2] 글러브를 끼지 않고 하는 베어너클 복싱이라는 것도 있다.[3]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4] πυγμή(주먹)와 μάχη(싸움)의 합성어로서, 문자 그대로 권투라는 뜻이다.[5] 이는 귀족들의 특권이 사라져 가면서 노상에서 하층민들에게 두들겨 맞고 체면 구겨서는 안 된다는 필요성과, 이른바 기사도를 비롯한 귀족들의 상무전통이 스포츠화돼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복싱은 의외로 귀족들이 선호했던, 그리고 지금도 선호하는 스포츠다.[6] 여성부에만 있는 라이트 미니멈급까지 합하면 18체급[7] 기구에 따라 체급명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계체중은 모두 동일하다[8] 여자부에만 있다.[9]김득구선수가 레이 맨시니 선수와 시합하게 되었는데 14R에서 TKO당하고 그대로 사망했다. 이 사건 때문에 프로권투의 룰은 기존 15R에서 12R로 변경되었다.[10] 아마추어에서는 주심 중단 경기(Referee stop contest, RSC)라 한다.[11] 아마추어에서는 한 라운드 내 3번 다운되면 즉시 선언한다.[12] 머리 보호구, 머리 뒷부분과 턱에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는 벨크로나 끈이 있다. 실제 스파링을 할 때는 이 턱끈과 머리 조임끈을 확실하게 매서 딱 붙여줘야 세게 맞아도 헤드기어가 휙휙 안 돌아간다. 심하게 헐렁하면 돌아가면서 뺨이나 광대 눈을 쓸려 다칠 수도 있으니 잘 조절하자.[13] 실리콘으로 되어있는데 주로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자기 이빨에 넣은 뒤 꽉 깨물어서 자신의 이빨 형태에 맞게 성형해서 사용한다. 스파링할 때 빼곤 필요없다. 스파링할 때 이거 안하면 하면 입 다터지는건 다반사고, 입 벌리고 있다가 턱을 맞으면 자기 이로 자기 입술을 찢어먹게 된다. 혀를 깨물 수도 있다. 꼭 하는게 건강에 이롭다.[14] 여성은 무필요. 대신에 여성은 압박감이 있는 흉부 보호대를 착용한다. [15] 레슬링화와 비슷하며 밑창이 거의 없는수준으로 얇고 재질도 대부분 가볍고 통기성이 좋은 재질이라 접지력, 통기성, 가벼움이 극에 달해있는 신발이다. 복싱화 대신 조깅화나 풋살화로 대체해서 신을 수도 있는데 로마첸코 선수는 나이키 풋살화를 신고 경기에 임한다. 복싱화는 발목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는데, 파이팅 스타일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마추어 선수들은 가벼운 운동화를 시합 할 때도 많이 쓴다.[16] 비단 근현대 복싱만의 현상이 아니고,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도 '팡크라티온을 하는 꿈을 꾸는 것은 다칠 조짐이지만, 권투를 하는 꿈을 꾸는 것은 크게 다칠 조짐이다.'라는 해몽이 있었다고 한다.[17] Method sparring의 일본식 표현. 영어로는 비기너 스파링(beginner sparring)이라고 한다.[18] 하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시점이라 가해자가 피해자가 잠시 택배 일 때문에 힘들어 마스크를 벗은 것으로 시비를 걸어 폭행사태로 확산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마스크 착용여부에 민감한 시기라고는 해도 바이러스 확산 이전에도 만만해 보이는 택배기사한테 협박을 일삼아 동정할 가치가 없는 폭행범이다. 게다가 웃긴 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 폭행 당시 폭행범은 마스크를 안 쓴 채 적반하장으로 마스크 쓴 피해자를 탓했다.[19] 실제로 종합격투기 선수 중 한 명은 술에 취한 상대방과 시비가 붙자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걸어 실신시킨 적이 있다.[20] 사실 이는 모든 단일 종목 무술에 해당하는 말이다. 최강이 되기에는 무술들이 각자 한계가 있으므로 다양한 무술을 골고루 다 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21]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흔히 회자되곤 하는 이 주먹계의 최강자라는 문구가 내포하는 의미를 복서가 모든 무술 고수 중에서 주먹질이 가장 강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조금 곤란하다. 레슬링이나 보디빌딩 등 고강도 종목을 하다 종합으로 이적한 선수가 외려 갈고닦은 체력으로 타격가들보다 강력한 펀치를 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권투가 주먹계의 최강이라는 말은 단순히 펀치력이 좋다 나쁘다 이전에 주먹질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는 것에 특화가 되어 있다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22] 물론 주짓수 역시 굉장히 실전적이고 강력한 무술임을 의심할 수 없으며, 복싱 역시도 굉장히 실전적인 격투기임을 알려주는 문장이다.[23] 레슬링은 타격 방어가 안되어 있더라도 하단 태클이 가능하기에 복서 측에서 제대로 선빵을 날리지 않는 이상 도저히 복서가 이기기 힘든 싸움이고 무에타이는 낙무아이 역시 타격 공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기에 실력이 동등하다면 사실상 상위호환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상대할 경우 상대가 타격 경험이 없어 그라운드로 끌고가는데 실패하면 승산은 있지만 이쪽도 상대가 하단 태클이나 이노키 알리 포지션을 시전하면 답이 없다.[24] 이 역시 오해하면 안 되는게 이말은 '길거리 싸움꾼들이 안전과 시공간이 보장되는 링 위에서 경기나 뛰는 선수들보다 잘 싸운다'라는 케케묵은 통념 같은 개념이 아니다. 다만 실전은 다소 시공간이 정형화되는 경기와는 달리 변수가 좀더 많고 우발적인 부분이 강하다는 뜻일 뿐이다.[25] 태권도가 널리 보급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실 발차기는 굉장히 고난도의 숙련도와 체력을 요구하며, 그 마저도 주먹에 비하면 효율성이 낮다. 괜히 절권도를 창시하던 시절에 이소룡이 '''"내 아들이 운동을 배우고 싶다면 복싱이나 펜싱, 레슬링 정도는 가르치겠지만, 발차기는 되도록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한 게 아니다.[26] 전술한 실전 무술들은 모두 단일종목으로는 권투에게 상성상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종목들이다. 윗문단에서 서술했듯 주먹만 사용하다보니 잡기와 발차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격은 격투에 있어 기본 중 기본이라 현대 종합격투기에서 그래플링 계열 무술을 베이스로 삼는 선수들도 빠짐없이 타격을 수련한다.[27] 권투 외에도 일찍이 기술체계와 훈련체계를 과학화, 고도화시킨 근대 격투기의 또다른 첨병으로는 레슬링이 있다.[28] 하다못해 중국무술에서도 간합 조절에 대한 개념 자체는 잡혀 있는 편이다.[29] 물론 종목이 다르니만큼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크다.[30] 강한 공격을 당해 심한 통증을 느낀 경우 타격 공포증이 생기기 쉽다. 타격 공포증이 있는 경우 경기 내내 몸이 떨리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기량이 떨어지며 심하면 경기 직전이나 경기 중에 겁에 질려 경기 중단을 외치거나 링 밖으로 도망치는 경우도 있다.[31] 이후, 김용강과 이열우가 WBC 및 WBA 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32] 그런데 이 때문에 호야의 6체급 석권이 제대로 인정을 못 받기도 한다.[33] 현세대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매니 파퀴아오는 P4P 1위를 2회 차지한 바가 있고, 미국 복싱계 최고의 스타인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P4P의 단골 1등이다.[34] 복싱보다 인기, 규모, 자금력이 훨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UFC가 상당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나름의 입지를 유지하는 것은 이런 조직력과 결속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UFC 독점적 지위는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35] 60, 70년대 알리가 활약하던 시절, 80년대 F4의 시대, 90년대 마이크 타이슨으로 대표되던 헤비급 복싱의 황혼기까지.[36] 과거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복싱의 화제성이 제법 사그라들었다. 특히 최대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인기가 하락한 영향이 크다.[37] 단, 어디까지나 '격투가', 즉, 투기 종목 안에서 최상의 인재 수급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당장 미국에서도 정말로 최고의 피지컬을 가진 인재들은 복싱이 아니라 농구, 미식축구 등으로 몰리는 것이 현실. 과거에 비하면 인기 스포츠에 인재를 많이 빼앗기는 중이다.[38] 필리핀은 아시아 최초의 권투 세계 챔피언이 나온 나라로 프란치스코 구일레도(Francisco Guilledo)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 식민지배 시절인 1920년대 당시 판쵸 빌라(Pancho Villa)로 나온 프란치스코 선수는. 1923년 6월 18일 월드 플라이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고 이후 2년이나 타이틀을 유지했지만 안타깝게도 24살인 한창 나이에 병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다.[39] 일본의 종합격투기가 망한 탓도 있다.[40] 영국 웨일즈 출신의 무패복서. 모션을 최소화한 짧은 펀치를 빠르게 수십대씩 뻗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성기가 조금 지났으나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상대였던 로이 존스 주니어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며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고, 압도적인 유효타 횟수를 앞세워 다운을 한차례 빼앗겼음에도 버나드 홉킨스를 상대로 2:1 판정승을 거둔 뒤 무패로 은퇴했다. 다만 몇차례의 TKO승을 거둔 경기에서 칼 프로치를 비롯한 영국 복서들이 늘 휘말리는 광속 레프리스탑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으며, 현재 슈퍼미들급과 라이트헤비급을 호령하는 안드레 워드세르게이 코발레프에 비해서는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41] 종합격투기에서 최정상급 선수들의 대전료가 PPV 수당을 제외하면 최대 60만 달러, 포함해도 최대 600만달러(양쪽 모두 앤더슨 실바의 기록)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42] 여기서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다른 격투기로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권투 팬들은 각 종목에서 톱레벨의 선수가 나온다면 권투가 최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타 격투기 선수 VS 복서 떡밥은 격투기 커뮤니티에서는 한창 떡밥이었다.[43] 그리고 이것이 밑에 서술할 한국 여자 복싱에서 흥행용 세계 챔피언을 마구 남발할 수 있게 되는 토대로 작용한다.[44] 이런 국가들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시합을 나누지 않고 같은 프로모션으로 시합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45] 헌데 이 쪽은 정식으로 인가하면서 적용한 여러 룰 덕분에 되려 선수층이 줄어버렸다고 한다.[46]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이 박정희와 같이 권투중계를 보면서 해설을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47] WBC 명예의 전당까지 들었다.[48] 선수들의 대전료에서 떼어가던 의료보험금이나 장려보험금까지 여기 간부들이 마음껏 떼먹어서 최요삼 선수 사망 때 장례비조차 없었다. 이에 전현직 선수들 분노하며 집단소송까지 제기했을 지경이다.[49] 한국 여자 권투의 실태를 알 수 있는 글. 읽어볼 만 하다.[50] 위 경기에서 가메다 고키에게 떡밥 격으로 던져진 손정오 선수는, 2013년 11월 19일 제주에서 열린 경기에서 챔피언에게 다운을 뽑아내는 등 선전 끝에 2:1 스플릿 디시전으로 아쉽게 판정패했다. 홈필드 어드밴티지가 있었다면 이변도 충분히 가능했던 경기였다.[51] 국가대표 , 올림픽 , 아시안 게임 , 전국체전[52] 물론 예외도 있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는 트레이너 밑에서 꾸준히 수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프로 레벨에서도 트레이너 잘 만나서 커리어가 확 핀 선수들도 수없이 많다. 마이크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 매니 파퀴아오와 프레디 로치처럼 명선수 옆에 명트레이너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53] 일본어 위키백과의 小林信夫 항목에는 출신지가 함경남도라고만 나오고 본명과 조선인이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1982년 5월 11일 보도 내용과 비교해보면 둘이 같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54] 당장 레슬링 씨름은 체육관도 거의 없다. 태권도는 거의 유치원이 되었고.[55] 종합격투기 무대로 넘어오기 전 프로 복서로 WBC, WBA 여성부 통합 챔피언이었으며 3체급을 석권, 타이틀 16차 방어에 성공한 전적이 있다.[56] 복싱과 레슬링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복슬러''' 유형에 대표적인 선수중 하나다.[57] 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접한 스포츠가 복싱이었다.[58] 푸에르토리코의 영웅이자 3체급을 석권한 복싱 레전드이다.[59] 전 체급을 통틀어 역대 최강의 복싱선수이다.[60] 로베르토 듀란, 마빈 해글러, 토마스 헌즈와 함께 1980년대를 풍미한 'fabulous 4'의 일원으로 넷 중 상대 전적이 가장 좋다. [61] 참고로 태릉선수촌 입단 후 실시하는 불암산 달리기에서 역대 1위의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62] 복싱스타일 때문에 판정에 손해를 많이 본 선수인데, 이 당시 판정도 그런 케이스.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는 이유로 심판이 패배를 선언했다.[63] 대표적인 예외는 더 파이팅의 일보[64] 이 녀석의 경우 합기도팔극권도 취득하고 있다.[65] 현제는 복서지만 이전에는 낙무아이였기에 무에타이도 쓸 줄 안다. 어디까지나 복싱이 메인이지만 규칙이 없는 권원시합에서는 필요할 때에는 무에타이를 사용하는 식으로 전술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66] 이 쪽도 복싱이 전부가 아니라 발 기술이 필요할 때에는 복싱 이외에도 카포에라를 사용한다. 가오란과 다른 점은 가오란이 무에타이는 펀치를 경시해서 복싱을 익혔다면 메델은 처음부터 복서였지만 자신의 몸집이 작아 리치가 짧기 때문에 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카포에라를 배운 것. 순서가 다르다.[67] 아버지가 프로복서 였다고 한다[68] 단 이들은 발기술도 쓰는등 100% 권투로만 싸우진 않으며 이중엔 검술이 특기거나 전투에서 그래플링을 쓸정도의 괴력인 경우도 있다.[69] 단순 복서 출신치곤 발 기술과 잡아던지기등 권투 이외의 기술들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70] 김두한과의 킥복싱매치에서 발차기를 두번 사용했으나 그 두번빼면 전부 복싱기술만 썼으며 본래 복싱으로 하려했던게 김두한이 자긴 발도 쓰겠다고 하자 이를 받아들여 킥복싱 매치로 바뀐데다 마이클 상사 자체가 군인인지라 복싱밖에 할줄 모를리는 없다.[71] 권투를 배웠다는 묘사는 없으나 싸움스타일은 작중 가장 복서에 가깝다. 발차기나 던지기등 복싱이외의 기술들도 쓰지만 비중이 낮으며 복서출신이면서 발차기나 던지기등 복싱이외의 기술들 비중이 굉장히 높은 문영철과는 상반된다.[72] 필요에 따라 발차기도 사용한다.[73] 설정상 인파이터가 사용하는 스킬은 신격원이라는 교단에서 사사하는 근접격투술로 직접적으로 복싱을 유파로 하지는 않으나, 더킹 스웨이와 같은 스탭을 기본으로 파생되는 파이팅 스타일은 아웃복서의 격투 스타일에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가져왔으며, 스킬 명과 여러 스킬 모션들도 복싱 및 복싱을 직접적인 모티브로 사용한 캐릭터들에게서 가져왔다. [74] 블러디 로어 2에서 설정이 프로복서이다.[75] 파이널 파이트 시절에는 오프닝에서도 복싱 체육관에서 등장하며, 파이팅 스타일도 권투였으나, 스트리트 파이터 시절에는 폭력사범으로 체포되면서 인생 막장 테크에 접어든 영향인지 막싸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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