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

 

1.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2. 삼국시대 원술 휘하 관료


1.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徐韶/徐劭/徐紹
(? ~ 265)
제갈탄의 난 때 겨울 10월에 당자, 손만, 손미 등과 함께 부대를 이끌고 투항했으며, 위나라에서 표창을 하고 작위를 더하면서 굶주리고 병든 사람을 구제했다. 264년에 위나라에서 상국참군을 지내다가 반환의 형식으로 오나라에 돌려보내도록 하면서 손옥과 함께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위나라가 촉나라를 평정한 일을 알리고 말, 비단 등을 보내 오나라에게 신종할 것을 전했다.
265년 3월에 손욱, 기척, 홍구와 함께 위나라의 신종 요구에 대한 답변을 보내는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어떤 자가 손호에게 서소는 위나라를 칭찬했다고 보고하면서 서소는 유수까지 갔다가 부름을 받아 오로 돌아갔다가 살해당했으며, 그의 가족은 건안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다.

2. 삼국시대 원술 휘하 관료


舒邵
생몰년도 미상.
자는 중응(仲膺, 仲應). 연주 진류군 출신.
[1]의 친구가 살해당하자 서소가 대신 복수한적이 있었는데, 이후 형제는 서로가 사형을 받겠다며 다투었고 그 의로움이 전국에 알려졌으며, 원술 밑에서 부릉현장, 패국상을 지냈다.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장강과 회수 사이에 먹을 것이 없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라 굶주리던 백성들을 보다못해 원술이 군량미로 쓰려고 비축해둔 쌀 10만 섬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러자 원술이 격노해 군사들을 시켜 서소를 붙잡고 참수하라는 명을 내렸으며, 서소는 원술에게 한 사람의 명을 바쳐 수많은 백성을 도탄에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이에 원술이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고 어찌 아름다운 이름을 혼자서만 남기려 하면서 자신과 함께 누릴 수 없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훗날 그의 아들인 서섭은 오나라에서 관리를 지내다가 죄를 지으면서 감옥에 갇혔는데, 이 때 주위 사람들이 다들 서섭을 변호했으나 일전에 서섭에게 피해를 본적이 있던 반준은 법대로 처리하려 했는데 손린이 만류하며 말한다.

서백응 형제가 서로 죽기를 다투자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의롭게 여겨 미담으로 상기했습니다. 중응 또한 지난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뜻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그들의 자제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만일 천하가 통일되어 황상께서 북방을 순시하게 되면 중원의 사인들은 반드시 중응의 후사를 이었는가에 대해 묻게 될 터인즉 그들이 대답해 반승명[2]

이 서섭을 죽였다고 한다면 일은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옳게 여긴 반준은 서섭을 사면했고 그 정도로 서소의 명성은 세간에 드높았다.

[1] 자는 백응으로 이름은 전해져 있지 않다.[2] 승명은 반준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