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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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설창수(薛昌洙)

파성(巴城)
생몰
1916년 1월 16일 ~ 1998년 6월 26일
출생지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읍 북동
(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동)
학력
진주공립농업학교 (現 경상국립대학교)
사망지
경상남도 진주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시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설창수는 1916년 1월 16일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읍(현 창원시 의창구) 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7년 진주공립농업학교(경상국립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해 일본 도쿄의 니혼대학 법문학부 예과에 재학했다. 그러던 중 고학생들을 상대로 항일민족 의식을 고양시켰다. 또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창원에서 야학을 설치해 빈곤 아동을 대상으로 계몽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일이 발각되면서 1941년 12월 29일 경남경찰국 형사대에 체포되어 대학으로부터 퇴학 조치 당하고 국내로 이송되었고, 1942년 6월 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3월에 출옥했다.
이후 1946년 3월 <경남일보>를 창간해 기자로 입사했고 9월에 주필을 맡았으며, 문교부 예술과장을 몇년간 맡다가 1951년 다시 경남일보사 주필을 맡았고 1952년에 경남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또한 그는 1947년에 한국 최초의 문단인 영남문학회를 창설해 경남일보에 매일 시와 수필을 실었다. 그리고 1949년 11월 22일 제1회 영남예술제를 개최했으며, 1951년 이후 전국을 돌며 223회의 시화전을 개최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총선에 출마해 6년 임기의 초대 참의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이듬해에 발발한 5.16 군사정변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사퇴했다. 이후 군사 정권과 영합하지 않고 경남일보에서 사설과 기사를 통해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풍자를 드러냈다. 한편 그는 700여 편의 시와 100여 편의 수필, 8편의 희곡을 남기는 등 문학인으로서 탁월한 기량을 보였다. 그의 작품관은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탈주지(脫主知)주의적 정신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드러난다는 평을 받는다.
1998년 6월 향년 83세를 일기로 진주시에서 병사했으며, 199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제1회 눌원 문화상을 비롯해 진주시 문화상, 은관문화훈장, 예총 예술대상, 향토문화대상 등을 수여받았으며,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