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화개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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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개요
小苑花開帖. 조선 전기 세종대왕의 삼남 안평대군(1418∼1453)이 15세기 초에 남긴 친필 글씨첩. 국보 제238호로 지정되었지만 2001년에 도난당해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2. 내용
조선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친필 글씨 56자가 수록된 서첩이다. 15세기 초에 제작되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지은 한시를 쓴 것으로, 안평대군이 직접 종이에 글을 쓴 후 서명과 도장까지 남긴 확실한 진본이다. 당시 명필로 유명했던 안평대군의 글씨 원본을 자세히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안평대군의 친필 글씨는 일본 텐리대학(天理大學)에 소장된 몽유도원도 발문과 소원화개첩뿐이다.
3. 도난
2001년 3월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소장자의 집에서 다른 문화재 수십 점과 함께 훔쳐가서 이후로는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다. 소원화개첩이 사라진 것을 필두로 고작 몇 년 사이에 한국의 주요 문화재 '''2만 8260여 점'''이 도난당해 사라져버렸다.뉴시스
2010년에 경찰은 소원화개첩을 포함한 국보급 중요문화재 29점이 사실상 국내를 떠나 해외로 유출되었다고 파악하고 인터폴에 국제 수배하였으나 현재까지 되찾은 문화재는 없다. 문화재 도굴범의 일인자인 서모씨란 사람은 소원화개첩이 이미 일본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장소와 소장자, 유출과정의 중간 브로커까지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신빙성이 의심되지만 일단 소원화개첩이 국내를 떠나 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익안대군 초상화의 환수 사례처럼 하루빨리 진범이 잡혀야 행방이 수소문이 가능한데, 이미 세월이 많이 지나 범인을 잡기가 힘들다.
만일 소원화개첩의 행방을 알고 있거나 범인을 잡을 단서를 알고 있다면 문화재청으로 제보를 하도록 하자.
4. 바깥고리
5. 국보 제238호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로, 말아서 둘 수 있게 만든 형태이다.
안평대군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글씨, 그림을 모두 잘했는데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당시 복잡한 정권 다툼에 말려들어 젊은 나이에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죽은 뒤에는 그의 글씨가 불태워져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문이나 글씨교본 그리고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소원화개첩> 뿐이다.
『소원화개첩』은 가로 16.5㎝, 세로 26.5㎝로 비단 위에 행서체로 쓰여진 것으로 모두 56자가 들어 있다. 글 끝에 낙관과 도장이 구비되어 있다. 원래의 시는 당나라 시인인 이상은이 지은 것인데 원문과 다른 곳이 몇 군데 있다. 비록 소품이기는 하지만 그의 행서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조맹부체의 영향을 받았으나 조맹부 보다도 더 웅장하고 활달한 기품이 잘 나타나 있다. 전형적인 그의 서풍을 잘 접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낙관과 도장이 찍혀있어 안평대군의 진본임이 확실한,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그의 유일한 작품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
〈소원화개첩〉은 2001년에 도난되었다.
6. 같이 보기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도난사건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