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1. 개요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의 산수화로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세종 29년인 1447년에 그렸다.
2. 구성 및 형식
몽유도원도에는 안견의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와 발문, 그리고 1450년(세종 32)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당대 문사들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찬문이 곁들여져 있다. 글과 그림이 어울려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이와 같은 서화합벽(書畵合璧)은 세종대에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안평대군과 더불어 찬문을 남긴 인물은 신숙주, 박연, 김종서 등으로 모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안견의 그림과 이들의 시문은 현재 2개의 두루마리로 나누어져 표구되어 있다.
첫 번째 두루마리에 박연의 시문까지, 두 번째 두루마리에 김종서의 찬시부터 최수의 찬시까지 실려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순서는 일본에서 다시 표구할 때 변형된 결과로 여겨진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신숙주의 찬문이 맨 앞에 배치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본래는 고득종의 찬문이 제일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3. 특징
특이한점은 그림의 줄거리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례와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찌 알수 있냐면, 안견의 싸인이 오른쪽에 있다. 짐작하겠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맨 끝쪽에 싸인을 남기게 되는 습성에 따라 싸인이 있는 쪽이 회화의 흐름의 끝이다.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부감법을 구사하였다.
안평대군의 발문을 보면, 안견은 이 그림을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또 시문은 각 인물의 친필로 쓴 것이어서 그 내용의 문학적 특징은 물론 서풍까지 파악할 수 있어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 그림은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후의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안견의 유일한 진작(작가가 명확히 확인된 작품)이다. 전칭작(명확하지 않으나 작가가 추정되는 작품)은 이것 말고도 약간 더 있지만 진작은 몽유도원도뿐.
4. 일본으로의 반출
일본 나라현의 덴리 대학 중앙 도서관이 소장 중이며, 현재 중요문화재 회화 제1152호로 지정되어 있다.
1893년 이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정되고 있으며, 1955년경부터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정확히 불법 반출이라고 볼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직지심체요절처럼 일본인이 합법적으로 그림을 구입해서 반출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 번 전시한 적이 있다.#
1986년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초기서화전과 1996년 겨울 호암미술관의 조선전기국보전에 귀국해 잠시 공개됐다.
해외 소장 중인 대표적인 문화재이며 거의 모든 국민들이 몽유도원도가 어떤 것이며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2009년 전시는 진품 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는 매우 어려운 기회이다 보니 1분으로 관람시간을 제한할 정도였다고 한다. 위에 서술했던 것처럼 거의 모든 한국인이 다른 건 몰라도 몽유도원도만은 가치를 알고 있기에 반환 혹은 인도 요청을 할까 봐 덴리 대학은 몽유도원도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1950년에 한국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를 구입할 만한 한국인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호사가들 사이에선 이때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전형필이 구입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유는 불분명하나 전형필은 몽유도원도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1930년에 전형필이 몽유도원도를 구입할 기회가 있었으나, 하필 이때 전형필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느라 함부로 많은 돈을 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놓쳤다는 일화가 퍼져 있는데, 이는 전형필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인 간송 전형필에서 나온 창작이다.
지금도 살 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언제나 예산에 쪼들리기에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1] 꿈 속에서 놀았던 도원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