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구니오

 

鈴木邦男
1943년 8월 2일 ~

1. 소개


일본우익운동가, 정치단체 '일수회(一水会)'의 최고 고문이자 레슬링 평론가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태생으로 청소년시기 도쿄 찌르기 사건에 충격을 받아 사건의 주범인 야마구치 오토야의 은사인 대일본 애국당(大日本愛国党) 총재 아카오 빈과 대면했다. 고등학교 시기 선생이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빼앗아 태워버린 것에 분노, 교사를 폭행한 죄로 퇴학당하고만다.
생각을 바로잡고 참회하여 이듬해에 와세다대학에 진학. 대학 시절에는 '생장의 집 학생회 전국총련(生長の家学生会全国総連合)' 의 서기장으로 활동하면서 우익운동에 입문. '전국 학생 자치단체 연락 협의회(全国学生自治体連絡協議会)'의 초대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미시마 사건 당시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자결했던 모리타 마사카쯔(森田必勝)와는 막역한 교우관계로, 자살한 친구의 뜻을 이어가고자 우익단체 '일수회'를 창립. 2015년까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실질적으로 은퇴하여 '최고고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복복시계와 승냥이(1975)'라는 저서를 통해 무장투쟁을 벌이던 신좌익의 활동에 심정적인 공감을 표했고, 이는 매스컴에서 신우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계기가 된다.
20대에는 조총련에도 드나들고 있었고, 북한에 방문해 요도호 사건의 당사자들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반체제 좌익에게 개방적인 성격 때문에 좌익으로 부터도 '말이 통하는 우익'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
재특회등이 벌이는 외국인 배척운동에 대해서도 강경한 반대를 표하고 있는 인물로 '증오연설과 레이시즘을 극복하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ヘイトスピーチとレイシズムを乗り越える国際ネットワー)' 의 공동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몇년 전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 당시 그가 한 강연 전문이 '왜 나는 혐한시위를 싫어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