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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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한 일본 프로레스 사상 최강의 용병 중의 한 명
고등 학생 시절부터 만능 스포츠인으로 여러 스포츠 분양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윌리엄스는 스포츠 명문 대학인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입학해 아마추어 레슬링을 통해 2회의 올 아메리칸에 뽑히는 대활약을 한다. NCAA에도 참가하지만 이미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1982년 미드 사우스 레슬링에 데뷔한 윌리엄스는 태그팀 선수로 활약했고, UWF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이후 테리 고디와 마이크 로툰다[2] 를 파트너로 삼아 NWA와 WCW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의 태그팀에 등극하는데 성공한다.
NWA와 WCW에서 활약을 하면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장 가서 용병으로 활약을 하는데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다져진 훌륭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90년대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하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독보적인 외국인 용병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용병 생활 기간 중에 미사와 미츠하루를 이기며 삼관 챔피언에도 오르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때 잠시 ECW에 나와 레이븐과 ECW 월드 챔피언 전을 치르기도 했다.
1998년 WWF와 계약하면서 활동하게 되지만 당시 열린 실제 권투 시합인 브롤 포 올에 나갔다가 부상당해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방출당하게 되고, 1년 뒤인 1999년 WCW에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2년 전일본으로 복귀한다.
2004년 인후암이 발견되면서 결국 프로레슬러로서 잠정 은퇴를 선언한다. 인후암은 그 다음 해 치료에 성공 했고, 이후 WWE와 트레이너 계약을 맺은 뒤 OVW에 배치받아 후진을 양성에 힘을 쓴다. 이 때 동문 후배인 제이크 해거를 여러모로 도와주었으며 동시에 인디 단체 흥행에도 간간이 참가한다. 2009년 오랜 동료였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 중 사망하게 되면서 완전은퇴를 결심하고, 그해 10월 도쿄에서 마지막 흥행을 통해 선수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하지만 인후암의 재발로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고, 2009년 12월 12일 열린 K&S 레슬페스트 레슬링 컨벤션에 출연을 마지막으로 12월 29일 해를 넘기지 못한 채 향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5성 경기 3회(vs 코바시 켄타, 1993),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코바시 켄타, 1995),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아키야마 준, 1996)
1996년 올해의 경기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82년 올해의 루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헌액(2011년)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PWI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1. 프로필
2. 소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한 일본 프로레스 사상 최강의 용병 중의 한 명
3. 일대기
3.1. 입문 이전
고등 학생 시절부터 만능 스포츠인으로 여러 스포츠 분양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윌리엄스는 스포츠 명문 대학인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입학해 아마추어 레슬링을 통해 2회의 올 아메리칸에 뽑히는 대활약을 한다. NCAA에도 참가하지만 이미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3.2. 미국 시절
1982년 미드 사우스 레슬링에 데뷔한 윌리엄스는 태그팀 선수로 활약했고, UWF에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준수한 활약을 보인다. 이후 테리 고디와 마이크 로툰다[2] 를 파트너로 삼아 NWA와 WCW에서 활약하며 여러 차례의 태그팀에 등극하는데 성공한다.
NWA와 WCW에서 활약을 하면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출장 가서 용병으로 활약을 하는데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다져진 훌륭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90년대 최고의 경기력을 자랑하던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독보적인 외국인 용병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용병 생활 기간 중에 미사와 미츠하루를 이기며 삼관 챔피언에도 오르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때 잠시 ECW에 나와 레이븐과 ECW 월드 챔피언 전을 치르기도 했다.
3.3. WWE
1998년 WWF와 계약하면서 활동하게 되지만 당시 열린 실제 권투 시합인 브롤 포 올에 나갔다가 부상당해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방출당하게 되고, 1년 뒤인 1999년 WCW에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역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2년 전일본으로 복귀한다.
3.4. 은퇴와 사망
2004년 인후암이 발견되면서 결국 프로레슬러로서 잠정 은퇴를 선언한다. 인후암은 그 다음 해 치료에 성공 했고, 이후 WWE와 트레이너 계약을 맺은 뒤 OVW에 배치받아 후진을 양성에 힘을 쓴다. 이 때 동문 후배인 제이크 해거를 여러모로 도와주었으며 동시에 인디 단체 흥행에도 간간이 참가한다. 2009년 오랜 동료였던 미사와 미츠하루가 경기 중 사망하게 되면서 완전은퇴를 결심하고, 그해 10월 도쿄에서 마지막 흥행을 통해 선수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하지만 인후암의 재발로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었고, 2009년 12월 12일 열린 K&S 레슬페스트 레슬링 컨벤션에 출연을 마지막으로 12월 29일 해를 넘기지 못한 채 향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 업적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5성 경기 3회(vs 코바시 켄타, 1993),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코바시 켄타, 1995), (&쟈니 에이스 vs 미사와 미츠하루&아키야마 준, 1996)
1996년 올해의 경기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82년 올해의 루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헌액(2011년)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PWI
1985년 가장 성장한 레슬러
1992년 올해의 태그팀(&테리 고디)
5. 여담
- WCW 활동 시절 한 후배와 이름이 동일했는데 결국 그 후배는 이름을 개명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다름 아닌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 2004년 K-1에서 알렉시 이그나쇼프와 대결했으나 패배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