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 프로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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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日本プロレスリング
'''A'''ll '''J'''apan '''P'''ro '''W'''restling
1. 개요
2. 역사
2.1. 1970년대-1980년대: 자이언트 바바점보 츠루타
2.2. 1990년대: 전일본 4천왕과 왕도 프로레슬링
2.4. 2000년-2013년: 바바 모토코 체제 암흑기, 무토 체제와 프로레슬링 LOVE, 시라이시 체제 암흑기
2.4.1. 관련 문서
2.5. 2014년~2019년 : 아키야마 체제
2.6. 2019년 ~ 현재 : 후쿠다 체제
3. 게임
3.1. 주요 게임들
3.1.1.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자의 혼
3.1.2.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도계승
3.1.3. 자이언트 그램 시리즈
4. 타이틀
5. 연중 토너먼트 & 리그전
6. 유명 인물
7. 소속 선수


1. 개요


1972년 자이언트 바바가 설립한 프로레슬링 단체.
오늘날 신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와 함께 일본 3대 메이져 프로레슬링 단체로 꼽힌다. 그 상징은 자이언트 바바가 제창한 것으로 유명한 '''왕도 프로레슬링'''.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침을 겪었으나 2017년 무렵을 기준으로 다시 바닥에서부터 반등하며 팬들을 다시금 불러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는 OSB 동양위성TV에서 1970~1980년대 초반까지의 경기들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2. 역사



2.1. 1970년대-1980년대: 자이언트 바바점보 츠루타


1972년자이언트 바바가 설립. 역도산의 두 아들이 합류하고 기존의 여러 챔피언 벨트들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역도산의 단체 일본 프로레슬링(JWA)의 적통을 잇는다고 여겨진다. NWA의 정식 가맹 단체였기 때문에 북미 레슬링계의 탑 레슬러들을 초빙해올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정통 아메리카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외국인 선역인 펑크 형제, 외국인 악역이었던 압둘라 더 부처, 타이거 제트 싱, 스턴 한센, 브로디 브루저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 이는 상대적으로 북미 스타들을 데려오는데 어려움을 겪어 종합격투기 등 다른 방향을 모색한 안토니오 이노키신일본 프로레슬링과 대조되는 부분.
1980년대에 들어 일본인 에이스의 자리는 점보 츠루타로 넘어갔으며, 그 일본인 라이벌로 활약한 텐류 겐이치로 역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1980년대 후반에는 초슈 리키 역시 저팬 프로레슬링 소속으로 전일본 링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1980년대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하이라이트 컴필레이션

2.2. 1990년대: 전일본 4천왕과 왕도 프로레슬링


1990년대에 접어들며 전일본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WWF가 북미 프로레슬링계를 통일함에 따라 NWA 체제는 붕괴했고 전일본 역시 NWA에서 탈퇴한다. 그에 이어 간판 스타였던 텐류 겐이치로를 필두로 한 일련의 레슬러들이 단체를 이탈하고 점보 츠루타 등 노장들 역시 출전이 줄어듦에 따라 로스터가 급격히 주는 위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미사와 미츠하루,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등 젊은 '''전일본 4천왕'''이 활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들이 선보인 '''왕도 프로레슬링'''은 충성심 있는 팬덤을 만들어냈고, 데이브 멜처를 비롯한 북미권 레슬링 매니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역대 최대의 프로레슬링 흥행은 1995년 4월 2일에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오니타 아츠시는 가시철선 야구배트로 라이벌 킹 포고에게 풀 스윙을 날려 전류폭파 가시철선에 날려버리고 핀을 한 뒤, 여느 때처럼 도쿄 돔을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서 갈채가 쏟아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모든 관객들은 그 다음에 벌어질 것을 기대하며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미사와! 미사와! 미사와!"'''

열화와 같은 챈트가 쏟아졌습니다. 전일본 레슬러들의 입장곡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날 최고의 호응이 터져나왔습니다. 관중들이 전일본에 얼마나 열광했던지, 전일본의 심판이 오니타나 타카다 노부히코 같은 레전드들보다도 큰 반응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스탠 핸슨이나 코바시 켄타가 받은 호응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미사와의 호응은 그날 밤 최고였습니다.(...)

그 전 4시간 반 동안 나온 그 모든 큰 기술들, 다양한 기믹들, 실제 싸움, 그리고 최고의 스타들과 카리스마틱한 퍼포머들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루 테즈가 스크린으로 역도산과 싸웠던 옛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시울을 붉힌 것, 휠체어를 탄 김일이 생애 마지막으로 링을 떠나며 링포스트에 키스하고 오열한 것조차 말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흥행 초반에 관객들이 너무 열광하게끔 하는건 후반에 쉽게 지치는 지름길이니 하는 얘기는 이미 벌써 앞선 몇 시간 사이에 거듭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탑 스타들은 그저 전세계 그 누구와 비교해도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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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멜처, WON 미사와 미츠하루를 추억하기 (2009/06/22)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기력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보유 레슬러들을 상업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로 인하여 그 흥행 규모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비해 떨어졌다. 좋은 예로 신일본은 자본력으로 도쿄돔에 자주 입성하는 등 대형 이벤트를 많이 벌여왔지만 그에 반해 전일본은 소, 중형구장에서 주로 시합을 가졌다.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단체 규모면에선 신일본에 떨어지게 된 것. 전일본의 전성기를 이끈 4천왕의 수장격인 미사와 미츠하루 조차 선수들의 네임벨류만으로 흥행을 매진시키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당시 신일본에 비해 전일본 레슬러들이 보수가 낮아 불만사항이 많았을거라는 추측이 있고, 자이언트 바바의 카리스마로 어떻게든 단체의 붕괴는 막았지만 결국 사후 레슬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1990년대 "4천왕" 왕도 프로레슬링 컴필레이션

2.3. 미사와 체제와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1999년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이후 미사와 미츠하루가 사장으로 취임해 그 명맥을 이었다. 미사와 미츠하루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경영상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한 개혁을 주장하지만 경영진과의 고질적인 트러블로 인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중심 미사와 미츠하루는 스스로 전일본을 탈단해 단체를 창설한다. 그리고 미사와를 뒤따르는 사대천왕(단 카와다 토시아키는 전일본에 잔류한다) 및 전일본의 추측이 대량 탈단하여 단체를 정립하는데 바로 프로레슬링 NOAH이다. 프로레슬링 NOAH 역시 전일본의 왕도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즉 전일본을 뿌리로 둔 파생(2계) 단체라고 말할수 있다. 다만 프로레슬링 NOAH는 전일본의 일부 문제점들이 보완되어 진보적인 단체성향을 띄우게 된다.[1][2] 프로레슬링 NOAH는 교류에 폐쇄적이던 전일본과 달리 타단체와의 교류등으로 전일본시절의 폐쇄적인 장막을 걷어내기도 했다.
전일본에 남은 일본인 레슬러는 결국 카와다 토시아키와 후치 마사노부 뿐. 후치 마사노부는 급기야 전통적인 라이벌이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링에 등장하여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세그먼트를 남기고 교류전을 펼친다.

오랫 동안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이엔 무척이나 두꺼운 벽이 있었습니다. 오늘 그 벽을 부수러 왔습니다. 전 선언한대로 혼자 여기에 왔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남은 선수는 둘 밖에 없습니다만, 간판의 크기와 프라이드는 신일본에 지지 않습니다!


2.4. 2000년-2013년: 바바 모토코 체제 암흑기, 무토 체제와 프로레슬링 LOVE, 시라이시 체제 암흑기


전일본 교류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악명높은 이노키즘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던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 넌더리를 느끼던 신일본의 에이스 무토 케이지코지마 사토시 등과 함께 전일본으로 전격 이적하여 스트롱 스타일왕도 스타일 모두와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 경영을 시작한다.
"프로레슬링 LOVE"라는 슬로건에 바탕을 둔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과감한 개혁을 통해 전일본은 단체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공하며, 대규모 선수이탈로 무너질듯했던 전일본을 3대 메이저 단체로 유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쿠리야마 류 사건, 소속 레슬러 TARU의 폭력 사건 같은 악재로 인해 무토 케이지는 결국 그 책임을 지고 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2012년 무토 자신과도 친분이 있던 스피드 파트너스의 사장 시라이시 노부오(白石伸夫)에게 전일본이 인수된다.
그런데 난데없이 시라이시 노부오는 부시로드 체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대한 원색적 비난, 이노키즘을 연상케하는 실전 프로레슬링론 제창 등을 통해 무토의 뒤통수를 치고, 결국 제2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을 통해 무토를 비롯한 많은 레슬러들이 전일본을 나가 WRESTLE-1을 설립한다.

2.4.1. 관련 문서




2.5. 2014년~2019년 : 아키야마 체제


전일본 운영을 잡게 된 것은 프로레슬링 NOAH를 탈단하여 'BURNING'의 일원으로 전일본에 출전하고 있던 전 오강 출신 아키야마 준. 하지만 2015년 가뜩이나 정식 소속 선수의 인원도 적은 상황에 BURNING 출신의 시오자키 고, 스즈키 코타로, 카네마루 요시노부가 전일본을 탈퇴, 이후 아케보노 타로도 단체를 탈퇴하면서 경기력이 퇴보, 그리고 사장 아키야마 준에 대한 안좋은 소리까지 나와서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Wrestle-1, 카이엔타이 도장 등 다른 독립 단체를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고, 프리랜서로 참전했던 미야하라 켄토, 제우스 등을 정식 소속으로 영입하고, 신인들을 육성하고 단체의 흥행에 프리랜서 선수와 외부 단체 선수들을 참전시키면서, 신일본 급의 흥행력은 아니지만 일본 현지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다. 2017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신인 선수들을 위한 프로젝트 흥행인 라이온스 게이트에 소속 선수인 아오야기 유마를 출전 시키고, 2017년 8월 이후의 흥행에 신일본 소속 선수인 코지마 사토시, 타이치를 초청하여 참전시키며, 시라이시 노부오 체제 시절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아키야마 준이 사장이 되면서 특히 사사키 켄스케의 제자 중 한명인 미야하라 켄토를 중심으로 다양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생각보다 상황이 좋아진 편이다. 특히 미야하라 켄토와 이시카와 슈지의 라이벌전이 인기를 모으면서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팬들도 호의를 보내고 있고 상황도 꽤나 호전되고 있는 편이다.[3] 최근들어는 한국계 일본인 레슬러인 사이 료지선수의 도움이나 개인능력으로 한국이 레슬러들이 간혹 얼굴을 비치는 일본 메이저 단체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3일 이벤트에서는 한국인 선수인 김남석선수와 닥터 몬즈 JR 선수가 아시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기도 했다. 2019년 1월에는 프리신분으로 정기참전하던 이시카와 슈지가 정식입단하였고 단체는 일정하게 유지를 하고 있다.
전일본프로레슬링도 월 900엔에 경기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 '''무려 한국어를 지원한다!''' 다만 사이트의 텍스트를 번역기에 돌린 수준이다.

2.6. 2019년 ~ 현재 : 후쿠다 체제


2019년 7월 아키야마 준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GM이라는 직책으로 부임했고 후쿠다 츠요키가 사장에 부임하였다. 2020년 1월 프리랜서 신분으로 레귤러 참전하던 요시타츠가 정식입단하였다. 2020년 7월 아키야마 준이 DDT 프로레슬링으로 렌탈 이적하였고 이후 헤비급 선수인 스와마가 후쿠다 사장을 위시한 경영진과 탈 아키야마를 슬로건으로 내놓으며 탈바꿈시키는중이다. 2021년 1월 프리랜서로 참전중인 TAJIRI와 혼다 류지가 정식입단하였다.

3. 게임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수많은 게임으로 발매 되기도 하였다.NCS에서 개발한 2D 시절의 게임은 그저 그런 평가 였으나 3D게임으로 재현된 전일본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3.1. 주요 게임들



3.1.1.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자의 혼


PS1으로 개발된 게임으로 지금은 도산한 HUMAN사에서 개발하였다.스태미너가 너무 줄어들어 짜증나는 점이 있긴하지만 게임성은 우수하다는 평가 이 게임의 시스템은 "킹오브 콜로세움" 으로 이어진다.

3.1.2.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도계승


N64로 개발된 게임으로 WWE 노머시를 만든 AKI사가 개발했다 버추어프로레슬링2 엔진을 개량하여 만들었으며 하이브리드 레슬링개념을 도입하여 MMA VS 프로레슬링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WWE NOMERCY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위로 올라타는 마운트가 가능한 MMA 스타일 프로레슬링 스타일 두가지 재미를 느낄수 있다

3.1.3. 자이언트 그램 시리즈


SEGA 사에서 전일본을 베이스로 만든 프로레슬링 게임 아케이드,드림캐스트로 출시되었다 원조는 STV로 발매된 전일본 프로레슬링 : 피처링 버추어 빠른 전개와 버튼 타이밍에 의한 연계기 밎 심리전으로 왕도 스타일에 가장가까운 재현율을 보이고 있다. 게이지가 차오르면 단발성으로 봉인기등을 사용할수 있고 조건에 의한 숨겨진 기술살인기등이 존재한다.
팬서비스를 위해 버추어 파이터 캐릭터인 울프,제프리,카게.등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타이틀로 한 게임은 발매되지는 않고 있다

4. 타이틀


  • 삼관 헤비웨이트 챔피언 : 스와마 (63대) ★★★★★
    • 차기 도전자 : 사토 코헤이
  • 세계 태그팀 챔피언 : 미야하라 켄토 & 아오야기 유마 (88대)
    • 차기 도전자 팀 : 세키모토 다이스케 & 압둘라 코바야시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 CIMA (54대)
    • 차기 도전자 : TBD
  •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 : 제우스 & 이자나기 (110대) ★★
    • 차기 도전자 팀 : 이리에 시게히로 & UTAMARO
  • GAORA TV 챔피언: 카사이 준 (18대) ★
    • 차기 도전자 : 이시카와 슈지
  • 전일본 TV 6인 태그팀 챔피언 : 오오모리 타카오 & 블랙 멘소레 & 카벨 이토 (초대)
    • 차기 도전자 팀 : TBD

5. 연중 토너먼트 & 리그전


  • 챔피언 카니발[4]
    • 2020년 우승자 : 제우스
  •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5]
    • 2020년 우승자 팀 : 미야하라 켄토 & 아오야기 유마
  • 왕도 토너먼트[6]
    • 2019년 우승자:
  • 주니어 BATTLE OF GLORY[7]
    • 2019년 우승자: 이와모토 코지
  • 주니어 태그 BATTLE OF GLORY[8]
    • 2019년 우승자 팀:

6. 유명 인물



7. 소속 선수




[1] 캐릭터성 일부 도입, 기술의 강도 완화, 교류 강화, 젊은 선수들 육성, 화려한 등장씬 등.[2] 물론 단체 운영시스템과 경기 외적인 홍보나 제도 등은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지만, 경기 내용 자체는 오히려 왕도의 원류를 추구하는, 즉 접수를 극한까지 감내해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3] 2017년 기준으로 2015 - 16 2년동안 신일본의 악역 스테이블인 스즈키군의 노아 침공으로 이슈와 흥행력을 키웠던 프로레슬링 NOAH는 모기업이 바뀌고 스즈키군과의 대항전 종료이후 팬들의 반응도 냉랭하고 단체흥행의 관중동원율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전일본은 아키야마 준 사장이 프리선수와 타단체 선수의 문호를 개방하고, 전일본 선수와 타단체, 프리 선수와의 경기력 조화가 잘어울려지다보니 좋은 경기를 양산하고 있고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불과 1년전과 다르게 전일본과 NOAH의 입지가 바뀌게 되었다.[4] 신일본의 G1 클라이맥스와 비슷하게 리그 경기이다. 레슬링 리그 경기는 여기가 원조이다. G1은 의외로 좀 늦게 1991년에 생겼다.[5] 1977년부터 시작된 태그팀 리그로 초기에는 NWA,AWA 용병들이 다수 참전하고 일본선수는 자이언트 바바, 점보 츠루타,텐류 겐이치로+1명 정도만 참가해서 사실상 NWA AWA올스타전 성격이 강했는데 90년대 부터 사천왕이 성장하면서 전일본 소속선수들의 참전이 늘어 나게 되었다.[6] 2013년에 탄생한 체급에 상관없이 진행되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무차별급 토너먼트전. 단체, 체급에 상관없이 시합은 시간무제한 1판 승부로 진행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 '가을의 제전'[7] 2014년 2월 익사이트 시리즈 에서 새롭게 탄생한,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선수들의 싱글 리그전.[8] 2014년 10월 부활! 자이언트 시리즈 에서 새롭게 탄생한, 주니어 헤비웨이트급 선수들의 태그 리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