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동
1. 개요
식지(검지)가 움직이다. 식욕이나 물욕이 동하여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1]
2. 유래
춘추좌씨전과 열국지에 따르면, 춘추시대 정나라의 공자 송(宋)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식지(검지)가 움직이면 반드시 기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일이 생기는 것이다. 어느날 자송은 공자 귀생(歸生)과 이튿날 아침 일찍 입궐하여 임금인 정영공(鄭靈公)께 문안을 드리자고 약속했는데, 이튿날 아침 귀생을 만나자 공자 송의 식지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귀생이 이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묻자, 공자 송은 귀생에게 식지가 움직이는 까닭을 자랑스레 말했다.
과연 공자 송의 예상대로, 내시가 재부(宰夫; 궁중 요리사)를 불렀다. 공자 송이 내시에게 재부를 부르는 까닭을 묻자, 내시가 대답했다."지난날 내가 사신으로 진(晉)나라에 갔을 때 식지가 이리 움직이더니 그날 처음으로 석화어(石花魚)[2]
라는 것을 먹었소. 그후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도 식지가 이렇게 움직였는데, 그땐 처음으로 천아(天鵝)[3] 고기를 먹었소. 그리고 그후에도 식지가 움직인 일이 있는데, 그땐 합환귤(合歡橘)[4] 을 먹었소. 이렇듯 기이한 음식을 먹는 날마다 식지가 움직이는데, 보아하니 이번에도 별미를 먹을 것 같구려. 과연 무슨 별미일지 궁금하외다."
공자 송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깨닫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영공은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 귀생에게 물었다. 귀생은 공자 송에게 들은 바를 그대로 말하였고, 영공은 장난조로 말했다."오늘 새벽 한강(漢江)에서 한 백성이 200근이 넘는 자라를 잡아 우리 임금께 진상했습니다. 상감께서는 이를 모든 대부와 나누기 위해 그 자라를 잡아 국을 끓이라며 재부를 부르는 것입니다."
과연 점심 때, 다른 대부들에게는 모두 자기 몫의 고깃국이 돌아갔다. 그러나 유독 공자 송의 차례에서 고깃국이 다 떨어졌는데, 이는 영공이 재부에게 일부러 한 그릇이 모자라도록 고깃국을 끓이도록 명한 것이었다. 본디 영공은 좌중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하기 위해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이었지만, 오전 내내 제 식지의 기이함을 자랑하던 공자 송으로서는 크나큰 모욕이자 수치가 되었다. 공자 송은 이 일로 인해 영공에게 반감과 복수심을 품었고, 영공 또한 공자 송의 속이 좁음을 욕했다."그게 정말 맞는지 안 맞는지는 과인의 생각 여하에 달릴 뿐이다."
이렇듯 공자 송과 영공 간의 사이가 악화되자, 급기야 공자 송은 영공을 죽이려 들었다. 공자 송은 귀생을 협박하여 귀생이 자신에게 협력하도록 종용했다. 심성이 약한 귀생은 공자 송의 협박에 굴복했고, 공자 송은 장정들을 여럿 모아 영공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해 가을 영공이 태묘(太廟)에서 제사를 지내고 재실(齋室)에서 잠을 자자, 공자 송은 그날 밤에 장정들을 시켜 무거운 흙가마니로 영공을 내리눌려 죽이게 했다. 영공은 다친 곳 하나 없이 그대로 압사당하고 말았다.
공자는 춘추#s-4에서 귀생이 정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음에도 심성이 약해 공자 송을 막지 못했음에 주목하여, 집권자의 책임이 무거움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논술했다.
물론 임금을 시해한 범인인 공자 송의 말로도 좋지 않아서, 초(楚)나라 군사가 영수 북쪽까지 쳐들어왔을 때 다른 공자 거질(去疾)이 부린 나졸에 잡혀 수차례 찔려 죽었다. 이때 공자 귀생은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대신 귀생의 관을 부수고 시체를 토막내며 그 자손을 모조리 국외로 추방했다. 고깃국 한 그릇이 모자란 것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본 것이다.鄭公子歸生弑其君夷
정공자귀생시기군이
"정나라 공자 귀생이 그 임금 이(夷;영공의 휘)를 죽였도다."
3. 기타
- 고작 고깃국 하나 때문에 원한이 생기고 임금이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디 고기를 나누고 수여하는 일은 고대의 제사장이 주관하는 영역이었다. 이는 제정이 분리된 사회로 넘어가면서 왕을 포함한 고위층의 권한이 되었으며, 고기를 분배함은 곧 아랫사람에게 권리를 수여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정나라 영공의 행동은 다소 경솔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장난이었다고 해도, 영공의 행위는 공자 송의 권리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나 다름없다. 비단 춘추시대 예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인데, 보통 먹을 것도 아니고 귀한 자라 고기를 가지고 줄지 말지 장난을 쳤으니 그 반감이 살인을 획책할 정도로 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