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갑수

 


성명
신갑수(申甲壽)
생몰
1897년 6월 22일~1958년 10월 5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갑수는 1897년 6월 22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군중과 함께 창수경찰주재소를 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괴한 후 객사 및 주임순사 고목이삼랑(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하였다.
또한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의류·식기까지도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1일 대구(大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상해·건조물 손괴·기물 손괴·공문서 훼기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한 그는 1925년 미쓰야 협정으로 인해 이강훈과 함께 봉천 군벌에게 체포되었다가 박찬익이 봉천 군벌과 협상한 덕분에 석방될 수 있었다. 8.15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했으며, 1958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신갑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