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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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원범(愼元範)
본관
거창 신씨[1]
생몰
1908년 2월 6일 ~ 1970년 8월 5일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노노리
(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2]
추서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원범은 1908년 2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노노리(현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6월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 최판옥(崔判玉) 등의 지도하에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김판권은 일찍이 도쿄에 있으면서 1920년대 초부터 신사상에 심취하였고, 1931년 7월 고향인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로 돌아온 뒤로는 최판옥, 곽명수 등과 교유하면서 신사상의 연구와 운동방침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 기념일에 경계가 엄중하여 이를 기념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겨 음력 5월 1일에 해당하는 같은 해 6월 4일에 시위운동을 하고 농민층을 규합할 것을 계획하였다.
신원범은 이에 동조하여 운암리와 백계리 방면에서 소작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규탄하며 큰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크게 외치며 대오를 지어 산을 내려와 운암리 방면을 향해 시위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신원범은 체포되어 영암경찰서에 구류되었으며, 1933년 6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예심이 종결되어 광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다.# 그해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형사부 소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형 50원[3]을 언도받아# 이에 공소하였으나 1934년 3월 7일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벌금형 50원[4]을 그대로 언도받았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70년 8월 5일 별세하였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 통례공파 31세손 범(範) 항렬.[2]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신승남 전 검찰총장도 이 마을 출신이며, 독립유공자 신일선교보생명그룹 초대 회장 신용호 형제는 옆 동네인 송내마을 출신이다.[3] 납부치 않을 시 50일간 노역장에 유치함.[4] 완납치 않을 시 1원당 1일씩 노역장 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