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선(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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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일선(愼一先)[1]
이명
신일선(愼壹善)·신용국(愼鏞國)
자 / 호
일선(一善) / 월택(月澤)
본관
거창 신씨[2]
생몰
1903년 6월 6일 ~ 1992년 2월 1일[3]
출생지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송내리
(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마을)[4]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교보생명그룹 초대 회장 신용호의 맏형이다.

2. 생애


신일선은 1903년 6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 북일시면 송내리(현 덕진면 노송리 송내마을)에서 아버지 신예범(愼禮範)과 어머니 문화 류씨 유매순(柳梅順) 사이의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고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그는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에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 등의 주도로 기획된 소작권 이전 반대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5월 1일 당일은 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하므로 실제 시위운동은 음력 5월 1일인 6월 4일에 진행하기로 계획되었으며,이들은 6월 4일 당일 영보정(永保亭) 뒷산 형제봉(兄第峰)에서 덕진면 내 영보리·운암리·노송리·장암리 등의 영암농민조합 청년회원 약 70명과 함께 운암리·백계리 방면의 소작권 이전 방지를 위해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선두에 적기(赤旗)를 세우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고 노동가(勞動歌)를 부르며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도중에 차례로 신소작인의 집으로 몰려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질타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영암농민 데모사건'으로 인해 1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33년 6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 예심이 종결되어 광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같은 해 9월 29일 불구속 피고 상태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형사부 재판을 받았다. 이때 소위 가택침입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미결 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에 산입)을 언도받고# 출감 지휘를 받았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해방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에 진력하다가 1992년 2월 1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호적명이라고 한다.[2] 통례공파 32세손 용(鏞) 항렬. 족보명은 신용대(愼鏞垈).[3] 거창신씨족보에는 1982년 3월 30일에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4]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원범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옆 동네인 노노동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