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희(독립운동가)

 


성명
신준희(申晙熙)
본관
평산 신씨
생몰
1889년 2월 15일 ~ 1943년 8월 15일
출생지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1]
사망지
전라남도 목포부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준희는 1889년 2월 15일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5일 전남 완도군 완도면 읍내에서 김경천, 송내호, 정남국, 최형천(崔亨天), 강정태 등과 함께 수백명의 군중을 동원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1924년 8월 강정태, 최형천, 송내호 등과 함께 완도군내의 각종 청년단체와 노동단체를 통합하여 완도청년연합회(莞島靑年聯合會)와 완도노동연합회(莞島勞動聯合會)를 조직하고 간부가 되어 노동운동을 지도하였다.
1925년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의 간부로서 회원에 대하여 일제 경찰들에게 불언동맹을 실행할 것을 지도하며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25년 5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명예훼손 및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 6월 15일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에 있는 서당에서 동지 10여명과 함께 소작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을 목적으로 ‘살자회’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피체되었다.
1930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며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미결 120일 산입)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목포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3년 8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신준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평산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만희가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