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구

 


성명
신학구(申學求)

성시(聖時)
본관
고령 신씨[1]
생몰
1877년[2] 7월 3일 ~ 1968년 2월 28일
출생지
충청도 청주목 산내이상면 귀래리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3]
사망지
충청북도 청원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신성휴는 그의 5촌 조카이다.

2. 생애


신학구는 1877년 7월 3일 충청도 청주목 산내이상면 귀래리(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에서 아버지 신지모(申支模)와 어머니 진주 정씨 정준(鄭浚)의 딸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미원장터에서 서정열(徐正烈), 신정식(申鼎植)과 함께 지팡이와 몽둥이를 손에 들고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장꾼들에게 정의의 독립만세운동 대열에 참가할 것을 설득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청주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청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2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신학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영성군파 22세 구(求) 항렬.[2] 고령 신씨 대동보에는 1882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고령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채호의 원적지가 이곳이며, 독립유공자 신성휴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