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코

 




[image]
제50대 아나스타시오 2세

'''제51대 성 심마코'''

제52대 성 호르미스다
  • 생몰년: ? ~ 514년 7월 19일
  • 재위기간: 498년 11월 22일 ~ 514년 7월 19일
사르데냐 섬 출신이고 이교에서 개종했으며 교황 선출 당시 부제였다. 그는 아카키우스 분열(482~519)로 인해 분열된 동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유화정책을 편 아나스타시오 2세의 정책에 불만을 지닌 성직자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었다.
심마코의 재임기간은 재임 내내 대립교황 라우렌시오와의 다툼으로 얼룩졌다. 498년 11월 22일 심마코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같은날 동로마의 지원을 받은 수석사제 라우렌시오가 대립교황으로 선출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 테오도리크 대왕이 나섰고, 더 많은 지지자를 얻은 심마코가 교황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낸다. 하지만 라우렌시오 측에서 심마코가 표를 얻기 위해 금품을 살포했으므로 선출 자체가 무효라 주장하면서 다시 문제는 시궁창으로 빠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499년 3월 1일 심마코는 로마 시노드 소집을 선언해서 주교들의 지지를 확인했다. 또한 라우렌시오를 캄파니아 지방 누체리아의 주교로 임명하여 회유했고, 라우렌시오도 교황직을 심마코에게 양보했다. 이렇게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2년 뒤인 501년, 라우렌시오의 지지자들이 심마코를 부활절 미사 날짜를 지키지 않은 점과, 그 외에 각종 비리 혐의로 탄원했으며, 이 소식을 접한 테오도리크 대왕은 심마코에게 아르미니움에 나오도록 했다. 하지만 심마코는 두려워하여 야반도주한다. 얼씨구나 좋구나 하고, 라우렌시오와 그 지지자들이 들고 일어났고, 라우렌시오는 기세등등하게 로마에 입성한다.
야반도주한 심마코는 이미 도둑이 제발 저린 꼴을 보여버려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며, 테오도리크 대왕은 로마에서 이에 대한 재판을 열기로 했다. 심마코도 별 수 없이 이에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게 시노드는 교황이 주최해야 하는데, 심마코가 죄인이면 교황이 없으므로 시노드 자체가 성립할 수 없고, 또한 교황을 신이 아닌 사람이 정죄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펼쳐진다. 결국 로마에서 시노드를 반대하는 소요사태가 일어나면서 대혼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에 지친 주교들은 테오도리크 대왕에게 이만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며 시노드 해산을 요청했으나 테오도리크 대왕은 어떻게든 합의를 보라고 압박했다. 결국 72명의 주교들은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사람이 치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서명하게 된다.
심마코가 어렵사리 교황의 지위를 유지하였지만 소요사태는 이어졌으며, 이후 4년 동안 라우렌시오는 교황 행세를 하고 다녔다. 심마코도 나름대로 버티기 위해 과거 교회 심판 기록들을 조작하기까지 했고, 지리한 싸움은 길어져 갔다. 결국 506년이 돼서야 정치적 이유로 테오도리크 대왕이 라우렌시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심마코의 지위가 확고해지게 된다.
지위가 확고해진 심마코는 정통 교리를 옹호하고, 반달족에 핍박받는 아프리카의 신자들을 위로하는 활동에 매진한다.
514년 7월 19일 선종하였으며, 사후 시성되었다. 축일은 7월 19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