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몰년: 450년 ~ 523년 7월 19일
- 재위기간: 514년 7월 20일 ~ 523년 7월 19일
호르미스다가 선출되었을 때는
단성론으로 기울어진 동방 교회와 이를 배척하는 서방 교회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때였다.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누스 1세는 호르미스다에게 신앙 정식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칼케돈 공의회를 열어 신앙 정식을 채택함으로써 갈등은 봉합된다. 이는 세속 권력과는 별개로 교회 내의 권리에서는 교황이 갖는 권위가 절대적이고, 동방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주게 된 사건이었다. 한편 교회가
동로마 제국 편으로 급격히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테오도리크 대왕은 이를 경계하게 되었고, 후대의 교회에 영향을 주게 된다.
호르미스다는 출가하기 전 이미 세속에서 결혼하여 아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의 아들(
성 실베리오)도 교황이 된다. 호르미스다는 523년 7월 19일 사망하였으며, 사후 시성되었다. 축일은 8월 6일이다.
이탈리아 프로시노네 출신이지만 그게 전혀 믿기지 않게 이름은 페르시아식 이름이다. 그리고 '''호르미즈드'''라는 이름의
사산 왕조 페르시아 황제가 5명이나 있다.
[1] 호르미즈드 1세, 호르미즈드 2세, 호르미즈드 3세, 호르미즈드 4세, 호르미즈드 6세. 5세는 참칭 황제가 어쩌다 넘버링을 먹어서 결번 취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