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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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를 연출한 스페인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2009년 영화. 레이첼 와이즈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아메나바르 감독의 초기작들을 보면 스릴러가 여러편 있고, 그나마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린게 바로 전작인 <씨 인사이드>였기 때문에 그가 시대극을 찍었단 사실을 의외로 받아들인 팬들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아고라의 궤적은 최근작 리그레션으로 이어지고 반종교 내지 종교비평적 주제에 대한 감독의 일관된 호감을 보여준 셈.
시대적으로는 서로마 말기, 지리적으로는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사극. 당대의 걸출한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유대교, 이교 등이 뒤얽힌 종교적 광기를 에둘러 까는 내용[1] 인지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페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영미권 배우들을 대거등용하여 영어영화로 만들었건만 종교비판적인 내용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배급사를 찾는데 고생했다. 미국에서는 우여곡절끝에 배급사를 겨우 찾았으나 소규모 한정상영에 그쳤으며 블루레이 조차 출시되지 못했다. 한국 역시 2009년작인 영화가 2011년은 되어야 겨우 개봉이 논의될 수 있었고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 적은 있었지만... 결국 아예 개봉이 불발되어 버렸다. 실제로 몇몇 배우들은 민감한 주제로 인한 부담으로 캐스팅을 고사했다는 설.
덕분에 인지도가 안습함에도 불구 아메나바르 감독 및 레이첼 와이즈의 팬덤이 제법 두텁다 보니, 어둠의 경로를 통해 관람한 사람들이 많고 영화 자체의 평가도 상당히 좋다. 헬레니즘에 근간을 둔 고대 문명과 헤브라이즘에 근간을 둔 중세 문명의 교차를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로 잘 그려냈다는 평.
‘중세 = 기독교로 인해 문명이 퇴보한 암흑시대’라는 스테레오타입에 입각했다는 비판이 있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나온 기독교인들의 폭동은 히파티아가 밑에 들어갔던 알렉산드리아 총독[2] 의 기독교 탄압이 원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영화 내용과 달리 키레네의 주교 시네시우스는 히파티아를 배신한 적이 없고, 실제 역사에서는 히파티아 사망 이전에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3]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이교 숭배에 무관심했고 종교적 분쟁이나 논쟁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히파티아와 그의 제자들이 당시 세라페움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히파티아의 죽음을 그리스-로마 문명의 종말처럼 그리고 있는데 히파티아가 죽음으로써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유행하였고 이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계속해서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하였다. 반대로 중세 기독교 철학자들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1. 개요
떼시스, 오픈 유어 아이즈, 디 아더스를 연출한 스페인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2009년 영화. 레이첼 와이즈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아메나바르 감독의 초기작들을 보면 스릴러가 여러편 있고, 그나마 다른 장르에 눈을 돌린게 바로 전작인 <씨 인사이드>였기 때문에 그가 시대극을 찍었단 사실을 의외로 받아들인 팬들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 아고라의 궤적은 최근작 리그레션으로 이어지고 반종교 내지 종교비평적 주제에 대한 감독의 일관된 호감을 보여준 셈.
시대적으로는 서로마 말기, 지리적으로는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사극. 당대의 걸출한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의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유대교, 이교 등이 뒤얽힌 종교적 광기를 에둘러 까는 내용[1] 인지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스페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영미권 배우들을 대거등용하여 영어영화로 만들었건만 종교비판적인 내용으로 인해 많은 국가에서 배급사를 찾는데 고생했다. 미국에서는 우여곡절끝에 배급사를 겨우 찾았으나 소규모 한정상영에 그쳤으며 블루레이 조차 출시되지 못했다. 한국 역시 2009년작인 영화가 2011년은 되어야 겨우 개봉이 논의될 수 있었고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 적은 있었지만... 결국 아예 개봉이 불발되어 버렸다. 실제로 몇몇 배우들은 민감한 주제로 인한 부담으로 캐스팅을 고사했다는 설.
덕분에 인지도가 안습함에도 불구 아메나바르 감독 및 레이첼 와이즈의 팬덤이 제법 두텁다 보니, 어둠의 경로를 통해 관람한 사람들이 많고 영화 자체의 평가도 상당히 좋다. 헬레니즘에 근간을 둔 고대 문명과 헤브라이즘에 근간을 둔 중세 문명의 교차를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로 잘 그려냈다는 평.
2. 비판
‘중세 = 기독교로 인해 문명이 퇴보한 암흑시대’라는 스테레오타입에 입각했다는 비판이 있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나온 기독교인들의 폭동은 히파티아가 밑에 들어갔던 알렉산드리아 총독[2] 의 기독교 탄압이 원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영화 내용과 달리 키레네의 주교 시네시우스는 히파티아를 배신한 적이 없고, 실제 역사에서는 히파티아 사망 이전에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3]
히파티아는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이었으며 이교 숭배에 무관심했고 종교적 분쟁이나 논쟁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히파티아와 그의 제자들이 당시 세라페움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히파티아의 죽음을 그리스-로마 문명의 종말처럼 그리고 있는데 히파티아가 죽음으로써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유행하였고 이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가기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계속해서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을 연구하였다. 반대로 중세 기독교 철학자들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1] 수정주의 기독교도들은 히파티아가 과연 그러한 '종교적 광기'의 피해자였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히파티아 항목 참조.[2] 그런데 기독교인이란 주장이 있다 [3] 히파티아의 강의에는 지배계층과 부유한 자제들이 많았으며 적잖은 기독교 신자들 역시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 지배계층의 존경을 받았고 제국과 도시의 고관들과 부유하고 좋은 혈통, 세력있는 학생들에 둘러 싸여있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문화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