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녹스
1. 개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유학생 살인사건으로 법정에 선 인물이자 세기의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인물.
2. 사건
아만다 녹스는 미국 시애틀 태생으로 워싱턴 대학교 재학생으로서 2007년 11월2일 이탈리아 페루자 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 중, 아파트에 같이 거주하던 영국인 여자 룸메이트 메레디스 커쳐를 집단섹스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았으며 또 다른 용의자로 아만다의 전 남자친구 라파엘 솔레시토, 후에 빈집털이범이었던 루디 게데가 지명되었다. 녹스는 수사 초기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선술집의 주인인 패트릭 루뭄바를 용의자로 지목했었지만 그는 범행 당일 알리바이를 입증하여 일주일 만에 풀려났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만다 녹스를 언론이 처음 주목하게 된 계기는 아만다 녹스에 대해 알아보던 기자들 때문이었다. 기자들에게 발견된 아만다 녹스의 사진은 기관총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남자친구인 라파엘의 사진은 미라 복장을 하고 식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만다 녹스는 이탈리아인들의 눈에는 미국 금발 미녀였기 때문에 사건과 결부하여 성적으로 주무르기 쉬운 대상이었다. 불여우 아만다, 마약과 섹스, 섹스에 미친 살인 사건 등이 당시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었다.
그녀는 아파트 내에 있던 피해자 메리디스 커쳐의 브래지어 끈과 메레디스가 살해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인 한 식칼 손잡이에서 아만다 녹스의 DNA가 발견돼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그리고 이탈리아 경찰은 해당 식칼의 칼날 부분에 살해당한 메레디스의 DNA가 검출됐음을 발표했다. 해당 DNA를 증거로 사건 발생 2년 후 2009년 1심 재판에서 징역 26년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하지만 1년 뒤 항소를 제기, 미국의 자국민 보호법을 활용하여 이탈리아가 아닌 미국에서 파견한 법의학 전문의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미국의 법의학 전문의는 이탈리아 경찰이 발표한 DNA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 해당 증거물을 상세히 검사해본 결과 칼 손잡이 부분의 DNA는 아만다 녹스의 것이 맞지만, 칼날 끝에 묻어 있는 메레디스의 DNA의 경우 아주 소량이었으며 오히려 칼날 끝에는 신원 불명의 남자 DNA 2명 분의 것도 묻어 있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연구소 실험실이 통제되지 않은 상황이라 다른 증거물과 같이 검사하는 사이에 DNA가 옮겨 붙는 '''증거 오염'''이 일어났을 확률이 높았다. 이탈리아 경찰이 의도적으로 타인의 DNA는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미량의 메레디스의 DNA를 검출한 것을 토대로 메레디스와 녹스의 것만 발표하며 범인으로 몰기 시작했던 것. 미국 법의학 전문의는 DNA의 경우 장시간이 지나면 굳이 해당 물건을 잡지 않더라도 옮겨 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1년도 2심에서 DNA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당시 검출됐다고 하던 증거물들에는 다른 사람의 DNA도 같이 검출됐음에도 유력 용의자로 지목돼 온 아만다 녹스의 DNA만을 유리한 방향으로 증거로 제기했던 이탈리아 경찰의 수사 과정의 문제점이 지적됐기 때문. 이때 아만다 녹스는 1심과는 달리 항소심에서 울먹거리며 증언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 당시 미국 국민들의 관심을 받게 됐으며 미국 언론인, 정치인 등이 아만다 녹스를 구출해야 한다는 식으로의 여론 형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3년 3월26일 아만다 녹스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이탈리아 검찰의 상고로 이탈리아 피렌체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 법원은 녹스에게 1심보다 더 큰 28년 6개월형을 라파엘은 25년을, 게데에게는 16년형을 선고한다. 집단 성관계 및 살인사건이 모두 녹스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고 사건 발생 초기에 가짜 증언으로 수사 혼선을 빚은 점, 이후 전 세계 언론을 이용한 동정심을 유발 등을 빌미로 미국인 보호법을 악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재판관은 그녀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2015년 이탈리아 피렌체 대법원에서 열린 최종심 마지막 공판에서 대법원은 피렌체 고등법원의 유죄판결을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깬 무죄판결을 선고해 아만다 녹스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다.''' 라고 판결물을 낭독하면서 아만다 녹스는 무죄를 선고 받고 징역살이를 피하게 됐다. 수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DNA가 묻어 있었지만 아만다 녹스의 것만 부각하여 증거로 제출한 점 등이 결정적으로 증거 불충분 사유가 돼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루디 게데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내려지며 사건은 종결되었다.
2011년 무죄석방 이후 귀국하였다. 그 이후에는 계속 미국에서 생활했다. 시애틀로 돌아온 이후 새 남자친구와 약혼하고 자신의 누명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쓴 자서전을 출판해 활동 중이다. 그리고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결론적으로 아만다 녹스와 라파엘 솔리시토가 어떤 방식으로든 사건에 관여한 것이 유력하나,[1] 정황적 증거만 있을 뿐 물질적 증거가 없어 무죄로 종결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진실과는 별개로 DNA 증거가 오염되도록 방치하고 물질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이탈리아 경찰의 무능과, 온갖 성적 메시지를 담아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이탈리아 언론 기관의 흑역사가 되었다.
2016년 9월 30일 미국 넷플릭스에서 이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1] 아만다 녹스의 휴대폰과 라파엘 솔리시토의 휴대폰이 사건 당일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꺼져 있었던 점, 피해자의 상처를 봤을 때 루디 게데 단일인의 소행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점, 다음 날 아침 아만다 녹스가 청소도구를 산 점, 아만다 녹스와 함께 밤 동안 컴퓨터로 영화를 봤다는 라파엘 솔리시토의 증언과는 달리 그의 컴퓨터가 그날 밤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 증언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