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카츠

 


'''足利 義勝(あしかが よしかつ'''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무로마치 막부의 제7대 쇼군. 제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 義教)의 장남이다.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어린 나이에 쇼군에 등극했다. 하지만 요절해버리면서 빛이 바랜 케이스. 아명은 센야차마루(千也茶丸).

2. 생애


태어나자마자 만도코로(政所) 집사(執事)인 이세 사다쿠니(伊勢貞国)의 저택에서 양육되었다.
1441년(카키츠 嘉吉 원년)에 카키츠의 난(嘉吉の乱)이 일어나서 아버지 요시노리가 아카마츠 미츠스케(赤松満祐)에게 암살되었다. 이 때문에 거처를 무로마치전(室町殿)으로 옮겼다. 다음 해인 1442년(카키츠 2년), 칸레이(管領) 호소카와 모치유키(細川持之) 등에게 추대되어 9세로 쇼군직에 올라, 제7대 쇼군이 되었다. 요시카츠는 어려서 정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치유키가 실권을 장악했다. 모치유키 사후는 하타케야마 모치쿠니(畠山持国)·야마나 모치토요(山名持豊)와 생모인 히노 시게코(日野重子) 등이 실권을 쥐었고, 카키츠의 난을 일으킨 미츠스케의 토벌과 카키츠 덕정 잇키(嘉吉の徳政一揆) 등을 평정했다.
1443년(카키츠 3년) 6월 19일에는, 요시노리에의 조의(弔意)를 전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와 회견했다(『야스토미키(康富記)』). 같은 해 7월 21일에 죽었다. 향년 10세(만 9세). 재임은 불과 8개월이었다. 사인은 낙마나 암살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이질에 의한 병사가 유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후임 쇼군에는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동생으로 8살인 미토라(三寅,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義政)의 아명)가 선출되었다.
요시카츠에 이어 요시마사라는 어린 쇼군이 이어지자, 조정과 유력 슈고 다이묘(守護大名)의 막정에의 관여가 계속되고, 쇼군의 권위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3. 여담


  • 묘소는 안코쿠지(安国寺) 케이운인(慶雲院)에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소실되어 현존하지는 않고 유골 등도 소재 불명이다. 목상은 토지인(等持院)에 현존하고 있다.
  • 켄닌지(建仁寺)의 탑두 레이겐인(霊源院)에는 요시카츠가 그렸다고 하는 「달마도」가 현존하고 있다. 그림 위에 있는 코제이 류하(江西龍派)의 제문에 의하면, 요시카츠가 10살 때 가신 센슈 모치스에(千秋持季)에게 주기 위해 그렸는데, 요시카츠는 얼마 뒤 낙마 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모치스에는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추모의 정을 참지 못하고, 코세이에게 제문을 써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