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1. 개요
'''長男'''
가장 먼저 태어난 아들을 지칭해 일컫는 말. 순우리말로 맏아들이다. 외동아들이나, 고명아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형, 오빠가 된다. 아들 중에서만 고려하기에 꼭 맏이가 아니어도 위로 형이 없으면 여자형제가 있는 둘째, 셋째, 심지어 막내여도 장남이다. 외동아들도 장남이다.[1]
2. 상세
장남 중에서 외동이 아니라 해당 부모로부터 제일 먼저 태어난 데다가 남동생이 존재하는 장남을 '''장형(長兄)'''이라고 부르며 장형이라는 호칭은 외아들[2] 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아들 중에서 장남이라도 위에 누나가 존재하면 장형이 아니다. 장형의 기준은 '''남자로 태어나고 동생이 있어야 하며 자기 위로 아무도 없어야 장형'''인 것이다. 때문에 아들 중에서는 맏이지만 위에 누나가 있는 사람은 장남이지만 장형이 아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대다수 문화에서 고대 사회부터 남성의 지위가 여성에 비하여 높았던데다가, 첫 번째이기 때문에 장남이 가장으로서 집안을 잇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남인 경우 부모가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과거의 왕정사회에서는 왕이 승하하면 장남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사회 관습이 매우 당연했던 것이었을 정도로 그만큼 매우 특별한 위치이기도 하다.[3] 누나가 있는 장남의 경우, 그 누나 때문에 서열이 애매할 수도 있지만 '''장형의 경우는 형제자매들 중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여성의 결혼 기피 대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자의 시부모님 부양이나 제사를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피 대상의 최종 단계는 '''종갓집 큰손'''. 이건 장남인 당사자로서도 썩 좋은 일이 못 된다. 은근히 일이 많은 데다가 장남이라는 위치에 책임감에 다른 분가의 기대까지 포함한 기대가 크게 겹쳐지기 때문에 무척 피곤해진다.
반면, 장남이라서 부모들이 알아서 잘 챙겨주는 경우가 많아서 나름대로 지원은 빵빵하게 받는다. 단지 그 탓에 '관계(도움)를 통해서' 신뢰, 도움을 얻는 스킬은 동생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게 늘 당연히 주어지다시피 하니, 스스로 얻어내려고 노력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성공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은 장남이 다수이기는 했으나, 의외로 왕가의 장남이 왕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양녕대군[4] .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큰아들에게 기대는 것도 원하는 것도 많고, 집안일로도 바라는 것도 매우 많다. 즉, 맏이(특히 장남)들은 어느 집안이든지 부모들에게 집안의 대소성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엄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 매우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덕택에 장남들은 책임이 많은 만큼, 지원은 지원대로 많이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는 큰아들이 결혼을 하길 원하며, 못할 경우 칼부림 사건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안 받았다고 하더라도 책임질 것은 그대로 남는다'''. 당연히 심적인 부담감과 기대치도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당연히 높다. 덕택에 장남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다 지고 가야 할 것도 많다. 반대로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예시로 고아인 상태에서 동생들이 많은 장남의 경우가 있다.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동생들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대학으로 진학해야 할 때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진학을 포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장남은 부모가 없을 경우 사실상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형제가 많거나 동생과 터울이 많이 날 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장남과 그 바로 아래 동생이 20살 이상 차이난다면 동생의 입장에서는 형이나 오빠가 아니라 그냥 부모님이나 다름없고, 이런 경우는 동생들이 깍듯하게 경어를 사용하는 집안도 많다. 결국, 동생들의 뒷바라지만 하다가 자기만 교육의 혜택(고등교육의 기회)을 놓치는 경우인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형제자매들이 장남을 집안의 가장 권위있는 큰어른으로 대하며 그 희생을 늙어서까지 고마워하고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
장남들에게 최악의 조건은 아이러니하게 바로 윗세대에서 부모님이 둘째/막내 자식이었는데 장남[5] 에게 많은 뒷바라지/지원을 몰빵하고 심한 편애와 차별을 몸소 겪으면 본인들은 반대로 장남은 장남이니까 많은 기대와 책임감을 바라는 동시에 형은 서열을 과시한다는 일종의 편견에 사로잡혀서 본인의 어린 시절 때를 투영이 되는 작은 아들/딸들에게 많은 애정을 보이고 형/동생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부모도 있다. 맏아들이 부모에게 은근히 견제받는 상황에서 동생들은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야심까지 갖춘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남이 갈수록 매우 냉혹하게 변해지는 편이다. 바로 삼국지의 조비가 이런 유형의 장남이라고 볼 수 있다.
한자로는 '백(伯)' 또는 '맹(孟)'. 옛날 사람들 중 자(字)에 이 글자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아들이라고 보면 된다. 손책이라든지. 조조라든지. 자字가 아닌 명名, 즉 이름에 들어간 경우는 대표적으로 이맹희가 있다. [6]
그 외에도, 大나 泰[7] 가 들어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장남이다. 차남 이름에 이런 한자가 들어가면 차남이 사실상의 장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장남이 장남 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이 경우는 영락없는 갈모형제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치로(一郞)'나 '타로(太郞)', 혹은 '●+이치로/타로'를 장남 이름으로 많이 쓴다.[8]
장남의 끝판왕은 '''외동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 미국,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장남도 군면제 대상[9] 이 되었다!'''
장남의 장남은 장손이라고 한다. 장남과 유사한 맥락에서 집안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장손이 사촌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능력이 뛰어난 경우 대놓고 편애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장손은 집안의 나이 순으로 첫째가 아닌 경우도 흔한데, 위로 누나들만 줄줄이 태어날 수도 있고 차남 이하의 아들이 먼저 아들을 낳는 경우도 많기 때문. 2대 이상의 독자도 당연히 장손이다. 장증손도 마찬가지인데, 보통 장남의 장손이 장증손이되는 경우가 많지만 장손이 요절하면 차손이, 차손도 요절하면 삼손이 장남을 얻으면 된다. 예를 들자면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며, 세종과 소헌왕후의 '''장손'''이며, 태종과 원경왕후의 '''장증손'''이다. 또한 조선의 기반을 완성한 성종은 세조의 '''차손'''이다.
흔히 왕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장남이 왕위계승권자이지만 해괴하게 장남이 즉위하는 경우는 예상 외로 드물다. 일례로 조선 왕조의 경우만 해도 개국왕인 이성계부터가 장남이 아닌거야 그렇다 쳐도 이성계의 장남 이방우부터 잘된 장남이 거의 없다. 장남이 제위에 오르는 경우가 27명의 임금 중 고작 9명에 불과했다. 저 이름도 유명한 세종대왕 역시 3남이며 세종대왕의 형제들 중 장남이 바로 그 양녕대군이다. 이후로도 문종부터 시작해서 단종, 인종, 경종 등이 대표적 사례. 심지어 단종은 태어났을때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의 뒤를 잇는 완벽한 정통성을 자랑했지만 유년 시절 부모와 조부모를 모두 잃고 청소년이 됐을 때는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계유정난(반란)으로 찬탈 당하기까지 이르렀다. 이 지독한 징크스를 깬 왕은 숙종(이쪽은 외아들) 정도 밖에 없다. 이에 관해 한가지 재밌는 기록이 있는데 세종의 묏자리를 알아볼 때 정인지 등이 정한 자리를 그동안 허조 등에 의해 허황된 의견을 낸다고 탄핵당한 전력이 있는 풍수가 최양선이 '''絶嗣孫長子 절사손장자''' 즉 이 자리를 쓰면 장자들이 단명하고 후손이 끊길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자리를 정한 정인지는 근거가 어딨어?라고 크게 반발했고 최양선은 "마음의 눈으로 깨우친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온 조정이 근거 없이 불온한 말을 한 최양선을 벌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지만 세종은 의견을 말한 것을 벌할 수는 없고 대신 국가의 일에 다신 그를 쓰지 않겠다고 중재했다. 근데 문종을 시작으로 단종이 다 요절하고 심지어 세조의 장자 의경세자(덕종)와 의경세자의 장자인 월산대군에 예종의 장자 인성대군까지 죄다 요절(이건 세조의 형수, 즉 문종의 아내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로 거의 요절했다는 설이 있다. 해당 문서 참고)한다. 예종은 최양선의 말이 걸렸는지 세종의 묘를 이장하지만 예종 본인마저 스무 살의 나이로 요절하는 등 장자 수난은 끊이지 않았다. 철종 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선대 임금과 촌수가 어마무지하게 이격된 임금이 즉위했고, 그나마 그 후임 고종은 인평대군[10] 의 후손인 이하응[11] 의 차남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장남이 만약 자식을 남겼을 경우 자식들이 일찍 죽거나 못볼꼴을 봤다거나 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는 당연한 것이, 차남 이후가 왕이 되었을 경우 적장남의 후손들은 차후에 반란으로 왕위를 노리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주변반란에 휘말려 죽거나 왕의 견제에 몰락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 제국의 류리크 왕조에서 조차 이반 뇌제의 후임 차르로 언급된 게 바실리 황태자가 아니라 그의 막내동생인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일 정도. 문제는 3명의 가짜 놈팽이들이 이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를 사칭해서 차르가 되려고 시도했고 첫번째 가짜놈은 기어이 차르가 되었지만 재위기간은 고작 9개월에 불과했다.
현대사회도 다르지 않아서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이제는 주체사상의 절대왕정인 북한만 해도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김정은은 한술 더 떠서 아버지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암살했다.[12] 그야말로 왕조 국가의 테크를 제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귀족사회에서는 '''장남이 가문의 모든 재산을 상속하고, 차남 이하로는 한푼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초창기에는 균등 상속이였으나 프랑크 왕국의 분할등을 겪으며 점차적으로 장자 몰빵으로 나아갔고, 차남 이하로는 기사, 성직자 등이 되어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도 보통은 기사, 성직자 등이 되는데 필요한 훈련이나 교육, 장비 정도는 지원해줬다고. 물론 형제간의 우애가 깊으면 장남이 가문을 전부 세습하는 대신 차남 이하를 그 장남의 휘하 장군이나 휘하 대신으로 등용해서 그들의 잘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는 해줬다. 그러니까 형제조정이 된 상태에서 장남이 임금, 차남이 대장군, 3남이 승상 이런 식이었다.[13] 그런데 이런 귀족가 출신 성직자들이 가문의 지원을 받건, 가문과 커넥션을 유지하건 해서 교회 타락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3. 장점
장남이기 때문에 '''모든 게 우선순위'''가 된다. 특히 황제나 왕의 가문에서는 제위를 세습받을 확률이 절반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물론 임해군같이 평소에 행동을 똑바로 못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그 제위를 세습받지 못하지만 이런 특이한 경우가 아닌 한 어지간하면 제위를 물려받는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지간하면 장남에게 세습된다.
또한 형제가 많은 집 한정으로 형제들 중 서열이 높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부모님 다음가는 3인자로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14]
4. 단점
장남은 너무 일찍 태어나다 보니 그것 때문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친척들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문제라는 게 바로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숙부님, 숙모님''' 같은 친척의 존재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할아버지의 아들, 또는 딸이며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동생이니 본인보다 어쨋든 촌수는 높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나 어머니의 동생인데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것이다. 만화 짬보람보에 이게 아주 잘 나와있는데 람보는 계속 장남으로 태어난 탓에 짬보가 자신의 아들뻘 수준으로 어린데도 불구하고 그런 짬보한테 '''조카'''라는 이유로 나이를 무시하고 반말로 호칭된다.
형제가 많으면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배런 트럼프의 경우도 형보다 그 형의 자녀들인 조카들과 나이가 더 비슷할 정도이다.[15]
삼국지에서도 순욱(163년 ~ 212년)은 순유(157년 ~ 214년)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순욱이 순유의 숙부가 된다.
장점 문단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나와있지만 일반적인 현실은 전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선 장남으로서 가질 수 있는 권력보단 제약이나 기대, 의무 같은 것이 더 많다. 동생이나 가정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런 의무에 따른 제약이 많다보니 오히려 결혼 상대자가 형제가 많은 장남일 경우 (자연스럽게 마누라도 같이 희생해야하기 때문에)혼인을 기피하는 풍조도 있을 정도이다.
[1] 그러나 한국에서 실제로 이러한 원칙적 용법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첫자식이 딸이면 그 다음 태어난 아들을 장남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둘째라고 하거나 성별을 붙여 '둘째 아들' 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맥이나 앞뒤 정황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2] 외아들이라는 말은 원래 딸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아들이 오직 한 명일 때 쓰는 표현이었다. 지금은 딸이 있을 경우엔 이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3] 물론 '''적자''' 중에서 장자여야 한다.[4] 조선시대에서 유일하게 방탕(비구니 여종을 궁궐에 들여 간통하거나 자식이 있는 유부녀를 강제로 납치해 강간하는 등 조선의 왕족으로서 본분을 지키지 않아서)하게 산다는 이유로 폐세자된 사람이다.[5] 즉 큰아버지다.[6] 전근대 한자문화권에서 보통 아들들의 자를 지을 때, 백중숙계(伯仲叔季) 순으로 해서 장남, 차남, 삼남, 막내임을 표시했다. 맹중계(孟仲季)의 경우도 마찬가지. 백伯은 적자 중 큰아들인 '적장자'를 의미하고 맹孟은 서자 중 큰아들인 '서장자'를 의미한다. 넷째 아들에게 '끝 계季'를 자로 주었는데 다섯번째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는 보통 유幼를 자로 주었다. 전근대까지는 질병이나 전란 등으로 성년이 되기 전에 죽는 경우가 많아 아들 여섯이 자字를 받는 일이 상당히 드물어 유幼 다음으로 정해진 글자는 딱히 없다. 어차피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칙이 아니라 그냥 관습적인 유행인지라 백중숙계까지만 따르고 그 뒤는 자율적으로 짓는 경우도 있었다.[7] 단, 이러한 글자들이 항렬에 있는 경우도 있다.[8] 여담이지만 한국인들이 이치로 하면 떠올리는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장남이 아니라 차남이다.[9]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군대에 갔다가 죽으면 대가 끊어지는 불행의 경우가 혹여 있기 때문이다.[10] 인조의 3남이다.[11] 족보상으로는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이기는 하다.[12] 차남 김정철은 게임 중독과 유약한 성품 때문에 김정일이 후계자로 고려조차 안 했다.[13] 삼국지에서 위나라가 진짜 이렇게 했다. 조조가 왕이 된 후 동생 조인을 대사마, 친척 동생 하후돈을 대장군 등에 임명하여 진짜 형제 조정을 이루었다.[14] 본인의 성격이 딱히 권력을 휘두르는 타입이 아니어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거나 좋은 직업을 찾아 경제력이 생긴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자로 대우를 받는다[15] 큰형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3세와 세 살 차이이다. 배런이 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