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마치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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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을 통치했던 막부. 아시카가 막부라고도 불린다.
가마쿠라 막부나 에도 막부가 막부가 위치했던 도시에서 이름을 딴 데 비해,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내에 막부가 위치했던 한 지역명 무로마치(室町)에서 유래했다.
2. 상세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킨 고다이고 덴노에 반발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덴노의 혈통 중에 한 사람을 고묘 덴노로 옹립하여 덴노 집안이 남조와 북조로 나뉘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남북조 시대) 고다이고 덴노는 저항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가의 지지를 얻은 아시카가 가문이 옹립한 북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여기서 다카우지는 덴노를 갈아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카우지는 새로 덴노로 옹립한 고묘 덴노로부터 최고위의 관직인 대납언과 정이대장군의 직위를 받고 막부를 개창했다.
다카우지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부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에서 쫒겨날 때까지 총 15대의 쇼군이 배출되었다.
일단 무로마치 막부 자체는 1336년부터 1573년까지 237년간 존속했지만 1336년부터 1392년까지는 남북조 시대#s-2로 막부 이외에도 요시노의 남조#s-1.4 덴노 정권이 무로마치 막부에 대항해 정통성을 주장하며 병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무로마치 막부가 권위를 확립하고 일본 전국을 제대로 통치하게 된 것은 남조#s-1.4가 항복한 1392년[2] 이후이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 1467년의 오닌의 난과 1493년의 메이오 정변을 거치면서 아시카가 쇼군가의 실권과 권위는 상실되고 사실상 전국시대로 들어섰다. 전국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무로마치 막부는 명목상으로는 제후들에게 상전 대우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본거지 이외의 지역에는 통치력이 전무한 춘추전국시대의 동주나 후삼국시대의 신라와 같은 꼴이 되어 지방의 강대한 다이묘들보다 세력이 못한 일개 지역세력으로 전락한다. 물론 그 이전의 가마쿠라 막부도 조큐의 난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는 간토지방 이외에는 세력이 닿지 못했고 이후의 에도 막부 시대에도 각 지역에는 다이묘와 번이 있었지만 전국시대의 무로마치 막부는 이들에 비교하는게 실례일 정도로 안습한 수준이었다.
즉 무로마치 막부가 일본 전국에 제대로 실권을 행사한 기간은 남북조시대가 끝난 1392년부터 오닌의 난이 일어난 1467년 전까지 75년간으로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인 셈. 그나마 전성기는 남북조 이후 요시미츠의 시대인 1392~1408의 16년 정도.
3. 역사
무로마치 시대 참조.
4. 역대 정이대장군
[1] 현재의 교토의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위치한 곳에 있었다.[2] 한반도에서 조선이 건국된 연도와 동일하다.[3] 일본에서는 당시 연호를 따서 '오에이의 외구(応永の外寇)'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