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상
1. 惡喪
젊은이나 어린이가 어른보다 먼저 죽는 일. 요새는 자식에게 후손이 있고, 부모와 자식 모두 만수무강하다가 자식이 부모에게 참척을 안기는 경우라면 악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1]
유의어로는 참척이 있다.
2. 樂詳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문재(文載).
건안 초에 악상은 남양에서 허현으로 가는 도중에 사해에게 춘추좌씨전에 대한 의문이나 난해한 점에 대해 질문했으며, 사해 곁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두기가 하동태수를 지냈고 학문을 좋아했는데, 악상은 문학제주에 임명되어 젊은이들을 교육해 하동에서는 학문이 매우 활발해졌다. 황초 연간에 중앙으로 가서 박사가 되었다.
태학이 재정비되어 10여 명의 박사가 있었지만 그들은 학문이 편중되고 좁은 것이 많았으며,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어 단지 관직에 있을 뿐인 상태였다. 그러나 악상은 오경을 모두 가르칠 수 있었으며, 그 정중한 지도는 자는 것과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그의 이름은 홀로 널리 퍼졌다.
별의 운행에 밝아 조칙을 받아 태사와 함께 음률이나 달력을 제정했으며, 태화 연간에는 기도위를 지냈고 끝내 군수는 지내지 못했다. 정시 연간에는 노령으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하동의 가문에서는 그를 따르는 문하생이 수 천 명이었다.
257년에 90여 세에 글을 올려 두기가 남긴 공적을 기려 조정에서 감동했으며, 이로 인해 두기의 손자인 두예를 풍락정후로 봉하고 식읍 1백 호를 주었다.
저서로는 좌씨문칠십이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