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운

 


悪運
1. 사전적 정의
2. 클리셰의 일종


1. 사전적 정의


일본에서 쓰이는 말로, 빈번하게 위기를 맞이하지만 어떻게든 잘 헤쳐나오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힘든 전투를 연달아 치르면서도 계속 살아남는 사람들을 악운이 좋다고 표현한 데에서 유래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에서는 이런 표현을 찾기가 힘들다. 우리말 뜻으로 비슷하게는 '운수가 사납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위기를 계속해서 극복한다는 뜻까지 포함하는지는 애매하다.[1] 영어에서 말하는 hard luck, bad luck, ill luck등의 표현은 그냥 재수가 없다는 뜻이다. 여러모로 번역자 머리아프게 하는 일본 특유의 표현.
여담으로, 강운이라는 표현도 있다. 무슨 사건이 닥쳐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뉘앙스를 비교하면 악운은 그냥저냥 본전치기, 강운은 본전 이상으로 이득을 봤을 경우라고 생각하면 적당하다.

2. 클리셰의 일종


진지함이란 개념이 1g이라도 들어 있는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이 플래그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장르가 로맨스같은 장르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로맨스에도 이 클리셰가 활용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굳이 주인공에 한정되지 않고 주연, 조연 가릴 거 없이 이 클리셰에 걸려들 수 있다. 이런 애들이나 이런 애들 역시 이 클리셰에 해당된다. 그저 주인공이 더 많이 구를 뿐이다. 대신 주인공 보정을 받는다.
사실 등장인물들 입장에서 보자면 '''작품이 시작되는 것부터가 이 플래그가 켜진 것과 같다'''.
작게 보면 철천지 웬수와 만나거나 민폐 히로인과 엮이는 것에서부터 심하면 주변인물들이 죄다 몰살당한다거나 본인까지 끔살 당하는 등 안 좋은 일이라면 모두 겪게 된다. 특히 주인공이 강하거나 파워 인플레가 심한 작품에서는 더욱 더 호되게 구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런 온갖 재수 없는 일이 닥쳐도 꿋꿋히 살아남는, 소위 주인공 보정 역시 악운에 포함된다. 다만 후자의 효과는 못 받고 끔살 당하는 놈들도 간혹 있다.
그리고 주인공 보정을 받는 주인공들과 달리 다른 인물들은 이 클리셰로 인생 종칠 확률이 더욱 높다. 조연이나 엑스트라들에겐 준 사형선고다.
사실 클리셰라고 부르기도 뭐한데, 소설이나 영화등 각종 창작물의 전개 방식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근본적인 이유는 창작물의 스토리에서 '''갈등'''을 빼놓을수 없기 때문. 아무일도 없는 평이한 내용은 써봤자 아무런 메세지도 전달하지 못하며, 재미도 없다. [2] 즉,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을 빼놓을수 없는데, 이 갈등을 전개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무언가 위기가 일어나거나 문제가 일어나는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아슬아슬하기 극복이 가능하지만, 극복이 힘들어야지만 그 고난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빛나는 만큼 그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주인공은, 그 능력에 비해서 극복하기가 힘들어보이는 상황을 극복해야하니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결국 악운에 강할수밖에 없는것이다. 소위 말하는 주인공 보정은 이러한 과정에서 오는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나마 로맨스 같은 경우엔 히로인과 사람간의 감정적인 갈등이 주를 차지하다보니, 별것 아닌 소소한 건을 가지고도 내적묘사를 통해서 주인공이나 히로인에게 있어서는 큰 문제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전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연애의 고난을 겪고 극복하는 것도 악운이고.... 이러한 애매한 악운 이외에도 클라이막스 쯤 오게된다면 물리적인 위험으로 번지게 되는 전개도 많다보니 이쪽에서도 악운은 많이 쓰인다. 다만 그나마 비교적 적은편.
즉, 이게 클리셰이므로 진부하다고 쓰지 말라고 말하는것은 일반적인 전개를 아예 쓰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어진다. 소설같은 창작물의 구성을 가르칠때부터 갈등은 들어가는게 당연한 구조라고 말하는데 갈등의 대표주자인 문제나 위기등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소설 쓰는데 있어서 상당히 심대한 제약이 된다.
반드시 갈등이 큰 위기나 눈에 보이는 문제만을 지칭하는것은 아니고, 등장인물간의 내적갈등 역시 충분히 갈등이므로 이러한 문제나 위기가 스토리 적으로 절대 필수 불가결한것은 아니지만, 이러나 저러나 할지라도 위기나 문제를 빼버리면 일반적으로 창작물에서의 갈등은 다 사라져버린다.
일반적인 창작물의 근본적인 전개방식과 구조 상 필연적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클리셰라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기성품처럼 찍어나오는 진부한 전개를 비판하는 뉘앙스가 들어있는 단어가 클리셰인데, 이런 부분까지 진부하다고 비판할려는 자세가 오히려 좀 이상할정도다.
[1] 위기를 극복한 다음 '운수가 사나웠다'고 말한다면 비슷한 뜻이 되겠지만, 운수가 사납다는 표현을 그런 식으로만 쓰지는 않기 때문.[2] 일상물에는 보통 개그나 모에등을 넣어서 커버한다. 진지한 작품이더라도 안티테제에 가까운 메세지를 전달하거나, 고의적으로 그러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 예외사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