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형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재헌은 1882년 6월 28일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조한휘(趙漢輝)·한종순·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1] ·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가 함암읍에서 발발했다. 이때 그는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참가했고 오후 2시에 경찰주재소로 행진했다. 이때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출동한 마산(馬山) 경찰서장 북촌(北村)과 현지 경찰들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도끼·몽둥이·돌을 들고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했다. 또한 경찰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주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이 응하지 않자 구타했다.
이어 군중은 폐쇄해 놓은 군청 문을 부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며 구타했다. 이후 군중은 등기소·우편소·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시위행진하며 그곳들을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했다. 그러나 오후 5시 40분경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도착해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주동자를 검거하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때 안재형도 체포되었고, 1919년 8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함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5년 6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재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