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루카렐리

 


'''파르마 칼초 1913 영구결번 '''
'''No. 6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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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칼초 1913'''
'''Parma Calcio 1913 S.r.l.'''
<colbgcolor=#233588> ''' 이름 '''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Alessandro Lucarelli'''
''' 출생 '''
1977년 7월 22일 (46세) /
이탈리아 리보르노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조건 '''
182cm
''' 가족 '''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
''' 포지션 '''
축구선수(센터백 / 은퇴)
''' 소속 '''
<colbgcolor=#233588> ''' 선수 '''
피아젠차 칼초 (1996~2002)
UC 알비노레페 (임대) (1997~1998)
US 팔레르모 (2002~2003)
ACF 피오렌티나 (2003-2004)
AS 리보르노 칼초 (2004~2005)
레지나 칼초 (2005~2007)
AC 시에나 (2007)
제노아 CFC (2007~2008)
'''파르마 칼초 1913 (2008~2018)'''
'''스태프'''
파르마 칼초 (2018~ / 클럽 매니저[1])
'''국가대표'''
없음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4. 스탭 경력


1. 개요


파르마 칼초 1913 소속의 이탈리아 전 축구 선수이자 현 축구 코치. 1996년 피아젠차에서 데뷔한 이래 2017년까지 20여년 간 세리에A에서 활약했다. 특히 파르마에서의 활약은 팀의 레전드라고 칭해질만 하다. 2008년 파르마에 입단한 이래 주장으로서 활약한 그는 2015년 팀이 파산당해 세리에D에서 재창단되었을 때, 기존 1군 선수들이 전부 이적하는 상황에서도 주전 선수로서 유일하게 팀에 남아 파르마를 세리에A로 복귀시킬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19일, 그는 그 약속을 지키고 팀의 전설이 되었다.'''[2]

2. 플레이 스타일


루카렐리는 182cm의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력을 발휘하는 왼발잡이 센터백이다. 그는 공중볼 경합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세트피스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보인다.

3. 클럽 경력



3.1. 피아젠차 칼초


[image]
루카렐리는 1977년 7월 22일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십대 시절에 피아젠차 축구 유스팀에 들어갔고 1995-96 시즌에 1군에 올라왔다. 이후 그는 1997년 세리에C2 클럽인 UC 알비노레페로 임대되어 29경기에 출전했다. 1998년 여름 피아젠차로 복귀한 루카렐리는 1998년 9월 13일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세리에A 데뷔전을 치뤘고 팀은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팀의 주축 센터백으로서 활약했고 2000년 피아젠차가 세리에B로 강등되었을 때도 팀에 남아서 2000-01 시즌에 승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던 2002년 여름, 그는 피아젠차를 떠나 팔레르모로 이적했다. 그는 피아젠차에서 100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3.2. US 팔레르모


2002년 여름 세리에B 소속이던 US 팔레르모로 이적한 루카렐리는 부상 때문에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가 2002년 11월 5일 코센차와의 경기에서 비로소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팔레르모에서 28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한 계단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3.3. ACF 피오렌티나


루카렐리는 2003년 여름 브레시아로 이적했다. 그런데 그는 2003 UEFA 인터토토 컵 대회에서 2경기를 뛴 후 같은 해 8월에 팔레르모와 같이 세리에B에 위치해 있던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그는 2003년 9월 23일 아탈란타와의 홈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고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31경기에 출전했고, 피오렌티나는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페루자를 무찌르고 세리에A 승격을 달성했다.

3.4. AS 리보르노 칼초


2004년 여름, 루카렐리는 AS 리보르노 칼초로 이적했다. 그는 2004년 9월 11일 AC 밀란과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04년 9월 22일, 루카렐리는 레지나와의 경기에서 세리에A 첫번째 골을 기록했고 팀은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리보르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으며 팀은 세리에A 9위를 기록했다.

3.5. 레지나 칼초


2005년 여름, 루카렐리는 레지나로 이적했다. 그는 2005년 9월 11일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레지나에서 2시즌을 치르며 팀이 세리에A 중위권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2006-2007 시즌엔 레지나가 승점 11점이 깍이는 중징계를 받았지만[3], 38경기에 출전해 든든한 센터백으로서 활약한 루카렐리의 활약 덕분에 세리에A 잔류에 성공했다.

3.6. 제노아 CFC


2007년 7월, 그는 시에나로 이적했다. 그러나 그는 데뷔전도 치르지 못하고 같은해 8월 22일에 제노아로 190만 유로의 이적료로 팔렸다. 2007년 8월 26일, 그는 AC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08년 3월 2일에 칼리아리와의 원정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그는 29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3.7. 파르마 칼초 1913


[image]
2008년 7월 25일, 루카렐리는 세리에B 소속 축구 클럽인 파르마로 이적했다. 이때 그의 형이자 리보르노와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에서 공격수로서 명성을 떨친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도 이 시기에 파르마에서 활동했다. 2008년 8월 29일, 루카렐리는 리미니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39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했고 팀은 세리에A로 승격했다.
이후 그의 형 크리스티아노는 리보르노로 이적했지만, 그는 계속 파르마에 남아 매 시즌 34~35경기에 출전해 든든한 센터백으로서 파르마가 세리에A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그는 2011년에 파르마의 부주장이 되었고 2012년에 스테파노 마노네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던 2013-14 시즌, 파르마는 후반기에 인테르, AC 밀란 등 강팀들을 연이어 격파하며 17경기 연속 무패를 질주해 유로파 진출을 달성했다. 그런데 재정 문제로 인해 UEFA 자격증을 확보하지 못해 유로파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토마소 기라르디 구단주는 사임을 발표하고 러시아의 부호인 잠피에로 마네티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새 구단주로 부임한 잠피에로 마넨티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마약, 폭력 조직 후원 등으로 확보한 불법 자금을 돈세탁할 목적으로 파르마를 인수했을 뿐 파르마를 견실하게 운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결국 파르마 선수 및 스탭 전원은 2014년 7월부터 8개월 간 급료를 받지 못했고 훈련 시설에 전기가 끊겨 유소년 팀 선수들이 찬물로 샤워를 하며 훈련 때 먹을 물도 못 사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루카렐리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제는 유니폼 세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들은 각자 유니폼을 집으로 가져가 빨아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에서도 주장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구단의 재정문제로 인해 홈경기가 연기되고 버스마저 파는 지경에 처하자, 그는 이탈리아 라디오 매체인 '안키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올 시즌 구단주만 4명을 모시면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지켜봤다. 경기하지 못했을 때 정말 기분이 나빴다. 오늘 우리는 제노아 원정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기할 준비가 돼 있지만 보호받기도 원한다. 챔피언뿐 아니라 파르마에도 존경심을 갖춰줬으면 좋겠다. 7년간 이 셔츠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고 구단이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늘 경기에 뛰었다. 구단에서 버스를 대주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5~6대의 차를 준비해 타고 갈 생각이다. 원정 경기 비용도 우리 스스로 마련할 게획이다."

그러나 파르마는 승점 삭감과 연이은 파행으로 인해 세리에A 최하위를 면치 못했고 새 구단주를 찾지 못해 결국 파산당하고 말았다. 이후 팀은 해체되었고 선수 전원이 FA로 풀렸다. 이때 파르마 1군 소속이던 선수들은 모두 타팀으로 이적했고 루카렐리 본인도 여러 오퍼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파르마를 떠나기를 거부하고 새롭게 창단된 파르마 칼초 1913에 소속되는 걸 선택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르마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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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사상 최초로 아마추어 리그인 세리에D에서 활동하게 된[4] 루카렐리는 팀의 구심점으로서 선수단을 훌륭하게 통솔해 28승 10무 무패로 세리에C 승격을 달성했다. 이후 파르마는 세리에C B조에 소속되어 2016-17 시즌을 치뤘고, 루카렐리는 종합 42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을 위해 헌신했다. 그 결과 파르마는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피아첸차, 루체세, 포르데노네를 차례로 격파해 결승전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알레산드리아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면서 세리에B 승격을 확정했다.
그후 중국의 디스포츠(Desports)기업 회장 장리장(蔣立章)이 파르마의 지분 60%를 매입하면서 새 구단주로 부임했다. 이후 장리장이 노장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이탈리아의 재능있는 유망주들을 데려오려 한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파르마 지역지에 따르면 루카렐리 등 노장 선수들이 직접 구단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고 장리장은 그들의 열정에 감동해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루카렐리는 2017년 11월 4일 파르마에서 311번째 경기에 출전하면서 Ermes Polli를 제치고 파르마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등재되었다. 그는 시즌 초반엔 교체 멤버로 활동했다가 중반부터 주전 선수로 뛰면서 31경기에 출전해 베테랑으로서 노련한 지휘를 선보여, 파르마가 세리에B에서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2018년 4월 22일, 루카렐리는 카르피와의 리그 37번째 경기를 치뤄 3:0 완승에 기여했지만, 경기 도중 상대 선수의 거친 몸싸움으로 인해 부상당해 경기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그후 검진 결과, 루카렐리는 내측 반월상 연골이 파열되었으며 수술을 받고 약 30일 동안 재활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승격을 눈앞에 둔 파르마로서는 핵심 센터백이자 리더의 이탈이라는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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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루카렐리는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선수단과 팬들을 독려했다.

여러분이 저에게 보내준 애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게 있습니다. 반월판은 저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냐, 지금 당장은 아냐: 그건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Arzignano에서 출발했습니다. 그후 3년이 지났지만 마치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목표를 보고 있고, 결국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멈추라고 요구할 수 없으며, 아무도 우리가 그것을 끝까지 시도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습니다.

주장의 밴드는 모든 이들, 제 팀동료들과 팬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는 왼쪽 소매를 들어올리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함께 착용하고 자존심을 품고 등반을 계속합니다.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패배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싸움입니다.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에 살고 있으며 후회는 추호도 없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단계에서, 비록 반월판이 없을 지라도, 저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결판내고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 영광을 여러분께 드릴 것입니다.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당한 부상이었기에, 세간에서는 루카렐리가 시즌 아웃되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고 출전 의지가 강렬했기에, 그는 스페지아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다. 당시 파르마는 2위인 프로시노네와 승점 2점이 뒤진 3위에 위치해서 자신들이 스페지아를 격파하고 프로시노네가 포지아에게 패하거나 무승부를 거두기를 희망했다. 파르마는 선발 복귀한 루카렐리를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해 2:0 승리를 거뒀지만 프로시노네가 89분까지 포지아를 상대로 2:1로 앞서가고 있어서 이대로 자동 승격은 실패하고 승격 플레이오프를 치루는 듯 했다.
'''그런데 89분경, 포지아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프로시노네가 무재배를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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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파르마는 '''2015년 세리에D로 강등된 이래 단 3년 만에 세리에A 복귀'''를 달성했다. 루카렐리는 스카이 스포츠 이탈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약속했다. 나는 파르마를 세리에A로 다시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비록 나의 이루고 싶은 꿈이었지만, 아무도 이런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축하를 해줬고, 우리는 스탠드에서 대단한 응원을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 놀라운 팬들 앞에서 3년간 여정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순간이 있었고 항상 우리의 발로 돌아왔다.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주장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만둘 수 있다. 나는 아직 내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지금 즐길 뿐이다."

이렇듯 아마추어리그까지 추락했던 팀을 세리에A까지 극적으로 복귀시키는 데 성공한 루카렐리는 파르마에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시즌 동안 348경기 21골을 기록했다. 참고로 세리에D에서 세리에A까지 논스톱으로 승격에 성공한 팀은 파르마가 '''유일'''하다고 한다.
2018년 5월 27일, 루카렐리는 은퇴를 선언했다. 파르마 칼치오 1913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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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지아전은 축구선수로서의 제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팀, 이 직장, 이 팬들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파르마의 일부가 될 것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볼 것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저는 엄청난 환희와 제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이야기의 일부분으로서 이 위대한 팀의 주장이었던 것, 그리고 이 아름다운 셔츠를 입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레산드로 루카렐리로서 충실히 살아온 것에 만족합니다.

여러분들의 한 사람으로서,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4. 스탭 경력



4.1. 파르마 칼초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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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루카렐리는 UEFA A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후 그는 2017-18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파르마 축구팀의 코치진에 합류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리고 2018년 8월 2일, 그는 클럽 매니저로 부임했다.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스태프라고 한다.

[1]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심판에게 교체 선수를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 스태프[2]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세리에 D부터 논스톱으로 승격했다.[3] 그 유명한 칼치오폴리 사건[4] 덧붙여 유일한 잔류 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