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S. 슈라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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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S. 슈라노프(Александр Степанович Суранов : 1913~?)'''
1. 기계공이 개발에 참여하다
2. 두 번째 작품
3. 전투기 무장의 혁신


1. 기계공이 개발에 참여하다


22살이 된 1935년부터 항공기용 무장을 개발하는 제16실험설계국(ОКБ-16)에서 기계공으로 근무하게 된 알렉산드르 슈라노프는 곧 설계국장 A. E. 누델만으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1941년 4월에 독자적으로 37mm 중기관포 개발 계획을 떠맡게 되었고, P-11 프로젝트(П-11 проект)라 불린 이 초안은 6월에 당으로부터 개발 승인이 떨어졌다. 1941년 7월 27일에는 이미 사격 테스트에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완성시킨 슈라노프는 같은 해 8월부터 설계국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테스트가 개시되었다. 이 신형 중기관포의 국가 테스트는 1941년 10월부터 이듬해인 1942년 3월까지 열렸다.
시험 결과에 따르면 포구속도와 관통력은 공군이 요구한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었지만 급탄 불량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이에 설계 책임자 슈라노프는 다른 설계안인 Sh-37(Ш-37) 중기관포의 구조를 바탕으로 개량하는 것을 결정했다. 당으로부터 주어진 유예 기간이 얼마 없었던 그는 불철주야 재설계와 개량 작업을 직접 감독하고 도와 겨우 석 달 뒤에는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기에 이른다. 또다시 이뤄진 국가 시험을 통과한 이 무기가 바로 누델만-수라노프 NS-37(НС-37)이라는 이름으로 채택되어 훗날 한국 전쟁에서 UN 공군을 긴장시킨 바로 그 중기관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2. 두 번째 작품


1943년 7월 초에 소비에트 국가방위위원회(ГКО СССР)는 차세대 전투기 무장으로 구경 45mm라는 대구경 항공기관포를 요구하게 되었고, 이에 관한 개발 명령은 제15실험설계국(ОКБ-15)과 슈라노프가 근무하고 있던 OKB-16에 위임되었다. 이에 슈라노프는 자신이 만들어낸 NS-37에 근거하여 구경을 확대시켜 새로운 45 mm 항공기관포를 완성시켰고, 라이벌인 OKB-16에서 내놓은 시제 포는 국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누델만-슈라노프 NS-45(Нудельман-Суранов НС-45)로 이름 붙여진 이 무기는 엄격하게 성능요구사항에 규정된 제작 공차에 대한 허용 기준이 엄격해서 특히 포신을 가공하는 작업이 어려웠다. 구경이 20 mm 기관포의 2배가 넘는 이 중기관포는 놀랍게도 기존의 미쿨린 VK-105(ВК-105), VK-107(ВК-107) 같은 액랭식 엔진에 모터캐논으로 설치되어야만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었던 탓에 엔진 설계의 변경 없이 실린더 사이에 들어가 프로펠러의 표준 슬리브와 스피너에 포구가 통과할 수 있으려면 배럴의 두께는 고작 4mm 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반동을 줄이기 위해 머즐 브레이크까지 부착하라는 어려운 요구사항이 있었다. 훗날, 설계국장 누델만도 이 까다로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슈라노프의 공이 컸다고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무기는 육군에서도 관심이 있었던 탓에 국가 테스트 뿐만 아니라 소련 육군에서도 별도의 시험과 평가를 받아야만 되었다. 그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NS-45 중기관포는 1944년부터 초기 로트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3. 전투기 무장의 혁신


그후, 구경을 키워 무조건 화력을 높이려 했던 소련 공군의 패러다임에는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개스반작용으로 작동하는 대구경 기관포는 필연적으로 연사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다가오는 제트 시대에는 기존의 레시프로 전투기 보다 거의 두 배의 스피드에서 공중전이 치러지므로 위력 뿐만 아니라 분당 발사속도가 더욱 중요하게 된 것이다. 제16설계국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슈라노프가 주도하여 대전차총에 쓰이던 고속탄인 14.5 mm 탄의 디자인을 그대로 키워 새로운 구경 23 mm 탄을 개발해냈고, 그 후에 이 구경은 소련 공군 전투기 무장의 표준 캘리버로 자리잡게 된다.
1944년 5월 4일, 새로운 23 mm 기관포의 공장 자체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6월 7일에는 비행 실험이 치러졌고 국가 테스트는 10월 10일에 통과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무기가 NS-23 기관포였다. 알렉산드르 수라노프는 그 공로로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2회나 수상하였다. 슈라노프에 관해 가장 놀라운 점은 이처럼 소련제 항공기관포에 관해 매우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으면서도 체계적으로 기계공학을 공부한 일이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모스크바 야간 기계제작 연구소(Московский вечерний машиностроительный институт)에서 전공 엔지니어 자격증을 딴 것은 그 모든 업적을 세우고도 몇 년이나 지난 195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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