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 랄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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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파나요티스 알렉산더"알렉시" 랄라스
(Panayotis Alexander "Alexi" Lalas)
생년월일
1970년 6월 1일(53세)
국적
[image] 미국
출생지
미시간버밍엄
신체 조건
191cm
포지션
센터백
대학교
럿거스 대학교(1988~1991)
소속팀
칼초 파도바(1994~1995)
칼초 파도바(1995~1996)(임대)
뉴잉글랜드 레볼루션(1996~1997)
에멜렉(1997)(임대)
메트로스타즈(1998)
캔자스시티 위저즈(1999)
'''LA 갤럭시'''(2001~2003)
국가대표
96경기 9골
별명
예수[1]
1. 소개
2. 프로 입단 이전
3. 클럽
3.1. 이탈리아 무대
3.2. MLS
4. 국가대표팀
5. 은퇴 이후
6. 여담


1. 소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미국 국적의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한 바 있으며 장발과 염소 수염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선수였다. 큰 신장을 이용한 공중전에 능했다.

2. 프로 입단 이전


11세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운동에 상당히 재능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재학 당시 졸업반에서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하키팀 주장까지 맡아 팀을 주대회 우승까지 이끌었었다. 이를 발판으로 하키 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뽑히지 못했고 럿거스 대학교의 축구부에 입단했다.[2]
첫 두시즌 랄라스는 각각 팀의 NCAA[3] 4강과 결승전 진출을 이끌었고 이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XI 3군에 선정되었다. 1991년 그는 수비수임에도 헤르만 트로피[4]를 거머쥐었고 대회 베스트 팀[5]에 선정되었다. 1991년부터 랄라스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휴학을 했다.
1992년 올림픽 이후 랄라스는 아스널 FC에서 트라이얼을 받았으나 정식 계약을 제의받지는 못했고 주로 리저브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 자국에서 열릴 월드컵을 대비해 대표팀을 지휘하던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3. 클럽



3.1. 이탈리아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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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를 이탈리아로 불러들였고 파도바 칼초와 계약을 맺으며 정식적으로 프로 선수로 활동하게 되었다. 랄라스의 능력은 어디가지 않아서 파도바의 수비의 중핵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랄라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파도바는 강등을 간신히 면했고 그 사이 미국에서는 월드컵의 바람을 업고 MLS가 새로 출범하고자 하는 상태였다.
랄라스는 MLS와 계약을 맺고 산하팀 중 1개의 팀에 입단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본래 MLS는 1995년 출범하는 것으로 예정되어있었으나 차질이 생겨 1996년 출범하는 것으로 연기되었고 랄라스는 파도바로 임대 형식으로 리그 오픈 전까지 뛰었다.

3.2. M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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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라치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랄라스는 미국으로 복귀했고 MLS 사무국은 그를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에 배정했다. 새로운 리그, 그리고 새로운 팀에서 랄라스는 최후방을 지휘했고 2년간 주전 센터백으로 맹활약했다. 1997년에는 비시즌 기간을 이용해 에콰도르의 에멜렉으로 1개월 간 임대되어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에멜렉에서의 짧은 임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랄라스를 기다리고 있었던건 뉴잉글랜드의 동료들이 아닌 메트로스타즈로의 트레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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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스타즈에서 1시즌을 소화한 랄라스는 팀 동료인 골키퍼 토니 메올라와 함께 캔자스시티 위저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캔자스시티에서 1시즌을 뛴 랄라스는 30대도 안된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2001년 랄라스는 현역 복귀를 선언했고 LA 갤럭시에 입단했다. 랄라스는 3시즌간 활약한 뒤 2004년 2번째로 은퇴를 선언했다.

4. 국가대표팀


1991년부터 1998년까지 96경기에 나서 9골을 기록했다. 1991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졌고 4일 뒤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2번째 출전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선배인 클라비조의 그늘에 가려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한 해가 더 지난 1993년이 돼서야 그를 밀어내고 국가대표팀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자국에서 개최된 1994년 월드컵에서 랄라스는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했으며 대회 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던 콜롬비아를 조 최하위로 밀어내면서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이 대회의 활약으로 랄라스는 이탈리아 무대에 진출했으며 1995년 미국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1998년 월드컵에도 참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하지는 않았다.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 해설자로 변신했다. 2013년에는 22년만에 대학교로 복학해 온라인 강좌로 학점을 따 2014년 입학한지 26년만에 대학 졸업장을 땄다.(...) 참고로 영문학 전공에 음악 부전공이다.

6. 여담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아버지가 그리스인이고 어머니가 미국인. 덕분에 영어와 그리스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다고. 거기에 더불어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까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음반까지 낸 가수이다. 대학 시절부터 '집시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고. 이후 솔로곡도 3번씩이나 냈다.
피파 16, 피파 온라인 3에 전설의 선수로, 피파 온라인 4의 ICON선수로 추가되었다.
[1] 긴 수염과 긴 머리 등이 일반적인 예수의 모습과 닮았다고.[2] 대학에 들어가서도 하키를 병행했다고 한다.[3] 미국의 대학 축구 리그[4] 시즌별 대학 리그 최고의 선수들에게 수여되는 상[5] 이 베스트팀 출신의 유명 선수로는 미국의 전설적인 선수들인 제프 아구스, 클라우디오 레이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