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밀루티노비치

 

'''보라 밀루티노비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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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의 축구감독 '''
''' 이름 '''
'''보라 밀루티노비치'''
'''Bora Milutinović'''
''' 본명 '''
벨리보르 밀루티노비치
Велибор Милутиновић
''' 출생 '''
1944년 9월 7일(79세) /
유고슬라비아왕국 즐라티보르구역 바지나바스타
''' 국적 '''
세르비아
''' 신체 '''
177cm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파르티잔 베오그라드(1956~1958 / 유스)
OFK 베오그라드(1958~1960)
파르티잔(1960~1966)
OFK 베오그라드(1965~ 1966 / 임대)
FC 빈터투어(1966~1967)
AS 모나코(1967~1969)
OGC 니스(1969~1971)
FC 루앙(1971~1972)
UNAM(1972~1976)
''' 감독 '''
UNAM(1977~1983)
멕시코 대표팀(1983~1986)
CA 산 로렌소(1987)
우디네세 칼초(1987)
베라크루스(1988)
테코스 UAG(1988~1989)
코스타리카 대표팀(1990)
미국 대표팀(1991~1995)
멕시코 대표팀(1995~1997)
나이지리아 대표팀(1997~1998)
뉴욕 메트로스타스(1998~1999)
중국 대표팀(2000~2002)
온두라스 대표팀(2003~2004)
알 사드 SC(2004~2005)
자메이카 대표팀(2006~2007)
이라크 대표팀(2009)
''' 국가대표 '''
없음
1. 개요
2. 선수 생활
3. 지도자 생활
3.1. 클럽 경력
3.2. 국가대표 경력
3.2.1. 멕시코와 1986년 월드컵
3.2.2. 코스타리카와 1990년 월드컵
3.2.4. 나이지리아와 1998년 월드컵
3.2.6. 기타 국가대표 경력
4. 감독 은퇴 이후


1. 개요


세르비아(舊 유고슬라비아 SFR)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9년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6강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월드컵에서 여러차례 성과를 낸 감독이었다.

2. 선수 생활


1958년에 OFK 베오그라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평범한 선수 생활을 보낸 뒤에 UNAM에서 1976년은퇴하였다.

3. 지도자 생활



3.1. 클럽 경력


자신이 마지막으로 뛰었던 UNAM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6 FIFA 월드컵 이후에는 우디네세 칼초, 베라크루스, 테코스 UAG를 지휘했다. 이후 3번의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클럽 감독직을 하지 않았다. 1998 FIFA 월드컵이 끝난 뒤 뉴욕 메트로스타스의 감독을 지냈다. 그러다가 중국과 온두라스에 있다가 알 사드를 2년간 지휘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3.2.1. 멕시코와 1986년 월드컵


1983년에 부임했다. B조 첫번째 자리에 배정되어 파라과이, 벨기에, 이라크와 한 조가 되었다. 본선에서는 벨기에를 2:1로 이기고 파라과이와는 1:1로 비겼다. 마지막 이라크전은 1:0으로 이겨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 상대인 불가리아를 2:0으로 완파하고 8강에 진출하여 서독에 0:0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승부차기에서 4:1로 무릎을 꿇었다.

3.2.2. 코스타리카와 1990년 월드컵


C조에서 스코틀랜드를 1:0으로 깨고 브라질한테는 1:0으로 졌다. 그리고 스웨덴전은 2:1로 이겨 16강 진출해 성공했다. 16강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만나 4:1로 패배했다.

3.2.3. 미국과 1994년 월드컵


A조에 콜롬비아, 스위스, 루마니아와 한 조가 되었다. 스위스전은 1:1로 비기고 콜롬비아전은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까지 합해 2:1로 승리했다. 마지막 루마니아전은 0:1로 패했고 최종 결과 3위가 되었는데, 각 조 3위팀간 순위 경쟁에서 앞선 국가 중 하나가 되면서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1:0으로 패배했다.

3.2.4. 나이지리아와 1998년 월드컵


D조에 배정되어 스페인, 파라과이, 불가리아와 한 조가 되었다. 본선에서 스페인을 3:2로 잡는 이변을 일으켰으며 불가리아를 1:0으로 잡고 파라과이에 1:3으로 졌지만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에서는 덴마크를 만나 1:4로 패배했다.

3.2.5. 중국과 한일 월드컵


2000년에 부임했다. 대한민국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했기도 하였고, 최종 예선에서 이란사우디아라비아를 피하는 행운[1]까지 겹쳐서 지역예선은 쉽게 뚫었다. 어쨌든 이 덕택에 한 동안 인민영웅 취급을 받았고, 광고 모델로도 인기가 많아서 출연료를 많이 벌었다. 본선에서는 C조에 미리 배정 받는 것으로 사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2]
문제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중국이 C조에서 만난 팀들이 '''너무 강한 상대'''들이라는 것.[3] 코스타리카, 브라질, 터키를 만나 각각 0:2, 0:4, 0:3으로 쳐발리면서 '''"3전 전패 0득 9실"'''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겨 전체 순위로 뒤에서 2등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팀 자체가 밀루티노비치가 그동안 지휘했던 팀들보다 전력이 많이 약했다. 게다가 C조의 순위도 "'''중국을 상대로 골을 넣은 갯수"'''대로 줄서기가 되면서 중국에 2골밖에 넣지 못 한 코스타리카는 조 3위로 탈락했다.
그 전에 맡았던 팀들은 비주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16강 이상 올려놓으면서 중국 또한 기대를 했지만 감독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중국만 16강을 가보지 못했고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던 중국의 전력을 감안하면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월드컵 가기전 아시안컵때 넘사벽인 탈아시아 경기력과 절정의 기술축구를 가진 일본하고 오랫동안 다시보지 못할 준결승에서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으며 월드컵 본선에 올린것만으로도 한국 4강진출 이상수준인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3.2.6. 기타 국가대표 경력


2003년 ~ 2004년에는 온두라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지냈다. 2006년에는 자메이카 축구 국가대표팀과 4년 계약을 맺었으나 그 다음해에 경질당했다. 2009년에는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그 해 컨페드컵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이라크를 끝으로 감독직에서는 사실상 은퇴하였다.

4. 감독 은퇴 이후


2009년 12월에 세르비아 축구협회 정보분석관을 지냈다.
2018년 1월 12일중국축구협회의 고문으로 영입되어 청소년 경기력 향상을 전담하게 된다.

[1] 중동에서는 FIFA가 중국 돈줄을 노리고 조편성을 조작했다고 믿고 있다.[2] 그 이유는 중국이 일본에서 경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해서...[3] 브라질만 빼면 네임드가 떨어진다 싶겠지만, 저때 코스타리카는 파울로 완초페 - 고메즈 - 폰세카라는 레전드급 3인방이 자리 잡고 있는 북중미의 강호였고, 터키는 1999-2000 유로파 리그와 2000 유로파 슈퍼컵을 제패한 갈라타사라이 소속 선수들 중심으로 그 이전 대회인 유로 2000에서 8강에 올랐을 정도로 역대급 전력을 자랑했다. 중국도 하오하이둥이나 판쯔이, 순지하이, 리웨이펑을 비롯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뛴 양첸 등 지금보다 더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다른 C조에 비빌 수준은 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