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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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있는 카메라는 RF카메라 최고의 명작이자 브레송이 즐겨 사용한 라이카 M3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계의 톨스토이라 할 수 있다. 인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던 그는 20세기의 증인이었다.

- 르몽드

1. 개요
2. 생애


1. 개요


Henri Cartier Bresson (1908년 8월 22일 ~ 2004년 8월 3일)
프랑스의 사진가. 20세기 세계 사진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으며 로버트 카파와 함께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로 기록된다. 자연스러운 캔디드샷과 길거리 스냅의 고수 등 많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야말로 전설적 포토그래퍼. 또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사람. 사진가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비영리 단체 매그넘 포토스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가톨릭 집안에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지만 후에 불교로 개종하였으며 그의 인생과 삶의 태도, 사진 작업은 불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데 이는 영문 The Decisive Moment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 실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찰나의 순간' 이라는 의미로 말하였으며 이는 위에서 서술한 대로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순간'이라는 개념으로 그의 사진을 대하는 것과 '찰나'의 의미로 사진을 대하는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또 50mm 단렌즈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약 90%정도는 50mm 렌즈만 사용하여 촬영한 것들이지만 35mm나 90mm도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
유명해진 계기도 조금 독특한데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했다가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져 회고전을 준비하였는데 회고전 준비 과정에 살아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주목받게 되었다. 거의 40세가 다 되어서야 사진가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성 때문에 영화 감독인 로베르 브레송과 친인척 관계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
영화 감독 장 르누아르의 조감독으로 일한 적이 있다. 참여한 영화는 시골에서의 하루게임의 규칙이 있다. 게임의 규칙에서는 왜인지 영국인 하인으로 연기도 했다. 장 르누아르에게서 많은 걸 배웠고 친분도 있었는지 공산당 영화를 찍는 걸 도와줬다고 한다.

2.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