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1세(아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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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영어 : King Henry 1st of Haiti (킹 헨리 퍼스트 오브 하이티)
- 스페인어 : Enrique I de Haití (엔리크 드 아이티)
- 프랑스어 : Henri I (앙리 1세)
2. 생애
본명은 '앙리 크리스토프'이며, 조상은 서아프리카에서 왔다. 노예였으나 이후 아이티 혁명에 혁명군으로 참가한 장군 출신이다. 아이티가 독립하고 초대 국가원수가 된 장 자크 데살린이 칭제했다가 암살당한 뒤, 앙리 크리스토프는 1807년 북부에서 독자 정권을 세운 뒤 아이티국(State of Haiti)의 대통령이자 대원수가 되어 남부를 근거지로 했던 알렉상드르 페시옹과 아이티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놓고 다퉜다.
2.1. 아이티 왕국 국왕으로
1810년 페시옹과 평화 조약을 맺어 일단 아이티를 반분하는 데 합의한 후, 앙리는 밀로(Milot)라는 마을을 왕도(王都)로 삼고, 그곳의 주교를 불러다 1811년 3월 28일에 '''국왕 앙리 1세'''로 즉위했다.
앙리 1세는 프랑스와 남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북부를 요새화했으며, 밀로에다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1] 을 지었다. 또한 4명의 친왕(Prince), 7명의 공작, 22명의 백작, 40명의 남작, 14명의 기사를 귀족으로 서임했는데 유럽에서는 이 귀족 서임을 비웃었다.
교육을 진흥하고 앙리 민법전(Code Henry)을 만드는 등의 업적은 있었으나, 인기없는 전제군주였던 그는 말년에 우울증을 앓다가 불안한 정세 등을 비관해 1820년 10월 8일에 53세를 일기로 총으로 자살했다.[2] 사후 아들 앙리 왕세자가 앙리 2세로 즉위했으나 10월 18일 16세를 일기로 암살당했고, 아이티는 남부 공화국에 의해 통일된다.
3. 기타
앙리 1세는 아이티의 마지막 군주는 아니었다. 앙리 1세 사후인 1849년~1859년에는 대통령이던 포스탱 술루크가 황제로 즉위했다가 폐위당했고 그 후 아이티는 쭉 공화정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