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

 


1. 개요
2. 창작물에서


1. 개요


楊戲
(? ~ 261년)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문연(文然). 익주 건위군 무양현 사람이다.
어려서 자가 공홍(公弘)인 파서군의 정기, 자가 계유(季儒)인 파군의 양태, 자가 백달(伯達)인 촉군의 장표와 함께 이름이 알려졌다. 양희는 항상 정기를 추천해 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 주장했고, 제갈량은 그를 깊게 알고 있었다, 익주의 서좌를 지내다가 20여 세에 독군종사가 되어 형벌을 주관하면서 법률에 따라 의심나는 사건을 처리해 공평하고 타당하고 불렸다.
승상부 소속 주부가 되었다가 234년에 제갈량이 죽고 상서우선부랑이 되었으며, 장완의 초빙을 받아 치중종사사가 되었다가 또다시 장완의 초빙으로 동조연에 임명되었다가 남중랑참군, 내강도독의 부장이 되었다. 건녕태수를 겸임하다가 중앙으로 들어가 사성교위가 되었고 관직에 있으면서 청렴하고 간략하면서 번잡함이 없었으며, 241년에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을 편찬했고 257년에 강유를 따라 북벌에 참전해 망수까지 갔다.
양희는 마음 속으로 강유에게 복종하지 않고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할 때 늘 비웃는 말을 했으며, 이에 강유가 겉으로는 관대하게 대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견디지 못해 성도로 돌아온 후에 담당 관리가 강유의 마음을 알고 상주해 양희는 면직되어 평민이 되었다가 261년에 사망했다. 장완이 재상으로 있을 때도 동조연으로 있던 양희는 장완이 말을 걸어도 무시하였고, 이를 본 어떤 이가 양희에게 벌을 주자는 의견을 냈지만 장완이 관대하게 넘어갔는데, 이를 보면 상관들에게 한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여겨졌던 듯하다.
그의 성격은 게으르고 일을 허투루하게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거나 지나친 애정으로 대하지 않았다. 문서로 사무상의 지시를 할 경우에는 종이를 전부 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옛 친구에 대한 우정은 독실해 두터운 정으로 대했고 어릴 때부터 친한 한엄, 여도를 위해 각종 사무를 하면서 생활을 원조했으며, 또 당시 사람들은 초주는 그 시대에 맞는 재능이 없다고 말하며 그를 공경하고 귀의(歸敬)하는 사람이 적었지만, 양희만은 그를 중하게 여겨 초주에 대해 우리들의 자손은 키다리(초주)만 못하다고 했고 식견 있는 자들은 이 때문에 양희를 중시했다고 한다.
초주의 제자였던 진수는 양희에 대해 사람들에게서 탁월한 점을 발견하려는 의도로 인물을 평가했지만, 그의 지혜에 결함이 있어 세상을 재난을 만났다고 했다. 이를 보면 양희가 당히 촉한에서 스승을 인정한 몇 안 되는 사람임에도 진수 역시 그의 태도에 대해 좋게만은 평가할 수 없었던 듯하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을 지어 선제 유비와 그의 신하들을 칭송하여 서술하였다. 대부분 촉서(蜀書) 양희전 말미에 실려 있다. 진수는 양희전 아래에 계한보신찬을 기록하고 '간혹 칭송되어 수록되어야 되지만, 이 편에 없는 자도 있으니 양희가 칭찬한 자로 현재 전(傳)이 만들어지지 않은 자는 모두 내가 양희의 찬사 아래에 그들에 관한 이력을 기록하니, 그들의 대체적인 자취를 소략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라고 했다.[1]

2.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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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47, 무력 26, 지력 58, 정치 74, 매력 50이며 일러스트는 붓으로 종이에다가 글씨를 쓰고 있다. 개성은 법률, 능리, 사관, 주의는 명리, 정책은 태학 Lv 3, 진형은 정란, 전법 역시 정란, 친애무장은 초주, 혐오무장은 강유다. 생년은 195년, 몰년은 261년까지 되어있다.

[1] 이 이후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시호를 추가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