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조선시대 정치가였던 윤선도가 보길도를 배경으로 지은 연시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어부(漁父)로 살아가는 소탈한 삶에 대한 시다.
시조임에도 초장과 중장, 중장과 종장 사이에 운율을 맞추기 위한 다른 구절이 삽입되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1] 이다. 어부사시사를 공부한 고딩이라면 웬만해선 알고있을 정도. 하지만 이 변칙적인 구절이 시의 내용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 구절 때문에 어부사시사가 시조가 아닌 새로운 형식으로 정의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조금 변칙적인 시조로 인식된 뿐.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의 한계라는 점.
사실 이 소재는 고려 시대 때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작자 미상의 어부가가 바로 그것으로, 시조가 아닌 장가 11장(악장가사)이었다. 이후에도 중종 대에 이현보가 9장 장가로 개작하였고, 윤선도는 그 시를 계승한 것이라 보면 된다. 이전 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현보의 시는 도피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윤선도의 시는 사실적으로 어부의 삶을 그렸다는 것이다.(아래 참고)
어부라는 말을 듣고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직업인을 떠올려 이 시가 백면서생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시의 화자는 '''가어옹'''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귀족적인 컨셉의 시였다는 것이다. 시 자체도 당쟁에서 실각한 후 예전부터 눈독들여 왔던 보길도로 내려와 구경하고 노닌 걸 바탕으로 시간이 많이 날 때 쓴 시다. 그래서 한자도 漁夫가 아닌 漁父다. 현대의 국어사전에는 같은 뜻으로 나와있으나, 漁父는 실제로는 취미 삼아 낚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로 쓰인다.
그 전에도 고향인 해남에서 살 때 왕이 하사한 한양의 '''자기 집을 통채로 뜯어서 가지고 내려와 그대로 짓는다던가'''[2] 백성들을 동원하여 자기가 뱃놀이하며 놀기 위해 새로이 저수지를 만든다던가, 심지어 바닷가에 있어서 소금기에 쩔어 농사도 못 짓고 놀려두는 땅에 주인 표시를 걸어놓았다가, 떠돌다가 정착한 평민들이 수십년 동안 죽자살자 개간을 해놓으면 그제서야 땅문서를 흔들면서 ''''소작료 낼래, 그냥 쫓겨날래?'''' 하는 등 수많은 행패를 부린 전과가 있다.
1. 개요
조선시대 정치가였던 윤선도가 보길도를 배경으로 지은 연시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어부(漁父)로 살아가는 소탈한 삶에 대한 시다.
시조임에도 초장과 중장, 중장과 종장 사이에 운율을 맞추기 위한 다른 구절이 삽입되어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1] 이다. 어부사시사를 공부한 고딩이라면 웬만해선 알고있을 정도. 하지만 이 변칙적인 구절이 시의 내용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 구절 때문에 어부사시사가 시조가 아닌 새로운 형식으로 정의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냥 조금 변칙적인 시조로 인식된 뿐.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의 한계라는 점.
사실 이 소재는 고려 시대 때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작자 미상의 어부가가 바로 그것으로, 시조가 아닌 장가 11장(악장가사)이었다. 이후에도 중종 대에 이현보가 9장 장가로 개작하였고, 윤선도는 그 시를 계승한 것이라 보면 된다. 이전 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현보의 시는 도피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윤선도의 시는 사실적으로 어부의 삶을 그렸다는 것이다.(아래 참고)
2. 비현실성(?)
어부라는 말을 듣고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직업인을 떠올려 이 시가 백면서생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시의 화자는 '''가어옹'''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귀족적인 컨셉의 시였다는 것이다. 시 자체도 당쟁에서 실각한 후 예전부터 눈독들여 왔던 보길도로 내려와 구경하고 노닌 걸 바탕으로 시간이 많이 날 때 쓴 시다. 그래서 한자도 漁夫가 아닌 漁父다. 현대의 국어사전에는 같은 뜻으로 나와있으나, 漁父는 실제로는 취미 삼아 낚시를 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로 쓰인다.
그 전에도 고향인 해남에서 살 때 왕이 하사한 한양의 '''자기 집을 통채로 뜯어서 가지고 내려와 그대로 짓는다던가'''[2] 백성들을 동원하여 자기가 뱃놀이하며 놀기 위해 새로이 저수지를 만든다던가, 심지어 바닷가에 있어서 소금기에 쩔어 농사도 못 짓고 놀려두는 땅에 주인 표시를 걸어놓았다가, 떠돌다가 정착한 평민들이 수십년 동안 죽자살자 개간을 해놓으면 그제서야 땅문서를 흔들면서 ''''소작료 낼래, 그냥 쫓겨날래?'''' 하는 등 수많은 행패를 부린 전과가 있다.
[1] 한문 표기로 至匊悤 至匊悤 於思臥, 노 젓는 소리를 음차한 것이라고 하고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혹은 "삐그덕 삐그덕 어여차" 등으로 가르치는데, 의미야 그렇겠지만 발음은 그대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라고 원문에 직접 표시되어 실제 학계에서는 저 설이 부정된 지 오래다. '''그래도 불쌍한 중생들은 외운다.''' 물론 당시 중국 음으로 읽으면 진짜 노 젓는 소리와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2] 한옥의 특성 상 원리 상으로는 별 무리없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그 막대한 무게 때문에 소모되는 애꿎은 노동력이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