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명나라)
명나라의 인물.
1. 아부로 승진가도를 달리다
1386년에 향거(鄕擧)[1] 로 국자감(國子監)[2] 에 들어갔으며, 절계로 가 전지(田地)[3] 를 조사하고 돌아와서 보고하자 산동안찰사시첨사, 북평안찰사첨사 등을 역임했다.
홍무제의 장남 황태자 의문태자(懿文太子)가 죽자 그의 16살된 아들이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해 건문제(建文帝)가 되었으며, 홍무제가 자신의 아들들을 각 지방의 왕으로 봉해서 영지를 줬다. 건문제는 황자들의 영지를 삭감해 세력을 약화시키려 하자 홍무제의 4남인 연왕(燕王) 주체가 이에 반발해 자신의 봉지였던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당시 수도였던 남경(난징)을 점령해 황제에 즉위하면서 영락제(永樂帝)가 된다.
이 과정에서 여진은 건문제를 배반하고 영락제에게 협력하는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영락제 시절에 여러 번 승진해 예부상서(禮部尙書)[4] 가 되었다. 학술적인 소양도 없이 예관(禮官)[5] 이 되어 일의 대체적인 요령을 잘 알지 못했고, 일은 잘못하는 주제에 아부만은 기막히게 잘했다.
2. 남다른 기억력에 대한 일화
무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기억력 하나는 출중해 아부하는데 유용하게 썼다고 한다.
영락제의 아들인 홍희제(洪熙帝) 때 그의 남다른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보통 조회 때 상소문을 올릴 경우 원본을 베끼고 주위 관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고를 올린다. 그런데 여진은 아무리 많은 상소문이라도 주위의 도움없이 그냥 입으로만 모든 내용을 한자도 틀림없이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홍희제는 신하들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비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1년 후에 그 비석이 생각난 인종은 비석을 가져오게 명했다. 그런데 여진이 수고스럽게 사람을 보낼 필요 없고 자신이 전부 써보겠다면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해 1년 전에 보았던 내용을 써냈으며, 과연 저 내용이 맞는지 궁금했던 홍희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 비석과 여진이 쓴 글을 비교해 봤는데 한자의 오류도 없이 정확했다고 한다.
3. 평가
이상의 기록을 살펴볼 때 무능력하지만,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재주만큼은 발군이었던 걸로 보이며, 그 기막힌 처세술로 1대 황제 홍무제부터 4대 황제까지, 2대 황제 때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바로 바뀐 주인에게 붙은 후 조정의 요직을 맡으며 잘 먹고 잘 살다간 인물.
4. 미디어믹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심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