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1. 개요
2. 외교-군사적 실책
3. 역사적 사실


1. 개요


여호사밧은 35세에 유다 왕이 되어 25년 간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실히의 딸로서 이름은 아주바였다고 하였다.

역대하 20:31 (공동번역성서)

남유다 왕국의 제4대 왕(재위 기원전 870년 ~ 기원전 848년). 한국 천주교 성경에서는 여호사팟이라고 한다. 행정적으로 뛰어났고, 외교력을 동원해 국력을 신장시켰으나 나중에 전투 한번 잘못 참여했다 군사력을 모조리 날려먹은(...) 왕이다.
주요 치적으로는 유다 왕국의 체제를 정비하였고, 국력을 모아 주요 강국으로 성장시켜 그동안 적대했던 북이스라엘과 동맹 관계를 맺고, 조공 무역을 이웃 약소국가인 모압, 에돔에서 받아내는 등 유다 왕국의 영향력을 크게 늘렸다. 또한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민심을 결집시켜 내부 민족 결속을 다지는 등 내치에서는 굉장히 유능한 면모를 보였다. 아래 후술할 실책 이후에는 재판관들을 각지에 세우는 등, 체제 정비에 힘썼다.

2. 외교-군사적 실책


다만 이 여호사밧의 단점이 있었다면 지나친 민족주의자였다는 점. 이것이 국력을 깎아먹는 원인이 된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공략전'''에 공동전선을 이뤄 공격해 들어가지만, 결과는 실제 지휘를 맡았던 북왕국 왕 아합이 전사하면서 연합군의 대패(...).
여기서 유다 국방력의 대부분을 날려먹어버리는 통에 결국 굴복시켰던 이웃 국가들이 침공해오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런 여호사밧의 기질은 변하지 않아서 북왕국과 또 공동으로 다시스와의 금무역을 시도했다가 폭풍으로 해군력을 대부분 바다속에 쳐넣어버리는 등(...) 국력을 신장시켰으나 그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이 국력을 깎아먹어 멸망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볼 수도 있다.

3. 역사적 사실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 '''남유다 왕국이 사실상 북이스라엘 왕국의 속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성서에서 대등한 동맹관계처럼 묘사된 것과 달리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복종해야 하는 제후였고, 아합이 군사를 보내라고 해서 군사를 이끌고 갔던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