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혜왕

 


'''{{{#ece5b6 연나라 41대 국군
제 5대 왕
혜왕
惠王}}}'''
''''''
희(姬)
''''''
악자(樂資), 융인(戎人)
'''아버지'''
연소왕(燕昭王) 희직(姬職)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72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78년 ~ 기원전 272년
1. 개요
2. 생애
2.1. 태자 시절
2.2. 왕으로 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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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燕)나라 제41대 군주. 제5대 . 연소왕(燕昭王)의 아들. 연무성왕의 친척.[1] 죽음이 불분명한 군주다.[2][3]

2. 생애



2.1. 태자 시절


연 혜왕은 태자로 있던 시절에 악의(樂毅)가 잘나가는 것이 불만이어서 아버지 연 소왕에게 악의에 대해 참소했다. 그러자 연 소왕은 크게 노해 그에게 매질을 하면서까지 악의를 믿어주었다.[4] 연소왕이 죽어 태자인 그가 뒤를 이었다.[5]

2.2. 왕으로 있던 시절


연 혜왕 원년(기원전 278년), 연 소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齊)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은 반간계를 써서 연 혜왕과 악의 사이의 틈을 벌여 놓아 결국 악의가 실각하게 만들고, 그 자리를 기겁(騎劫) 이 대신하게 했다. 그러자 악의는 연 혜왕에게 죽을까 두려워 그 처자식을 버리고 조(趙)나라로 망명했다. 그리고 전단은 악의를 대신해 연나라의 대장군이 된 기겁에게 책략을 써서 제군의 전의를 불태우고, 화우지계를 써서 기겁을 죽이고, 연군을 무너뜨려서 몰아냈다.
연 혜왕은 그런 일련의 사태를 겪고 악의를 내쫓은 일을 후회해 악의를 다시 부르려고 했으나 악의는 조나라에 머물기로 하여 결국 거절한다. 그러나 악의의 아들인 악간은 창국군으로 봉해져 연나라와 조나라를 왕래하여 객경이 되었다.
연 혜왕 7년(기원전 272년), 연 혜왕이 공손조(公孫操)에게 살해당하고 그 일족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연 무성왕이다.[6] 일설에는 자연사했다고 전해지며, 연 무성왕이 연 혜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1] 일설에는 연무성왕이 연혜왕의 아들이라고 한다.[2] 일설에는 성안군(成安君)인 공손 조(公孫操)의 손에 살해당했다고 하고, 그냥 병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다.[3] 그만큼 연나라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증거다.[4] 그렇기 때문에 악의는 감동하여, 제나라를 민심을 얻고 최대한 조여가면서 멸망시키고자 했다.[5] 열국지에 의하면 연소왕이 신선술 에 빠져 중금속에 중독되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고 하나 사기에서는 그냥 죽었다고만 나온다.[6] 안타깝게도 연 무성왕의 이름은 실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