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 김씨

 



'''禮安 金氏
예안 김씨
'''
'''宣城 金氏
선성 김씨
'''
}}}
'''관향'''
<colbgcolor=#FFF>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시조'''
김상(金尙)
'''중시조'''
김로(金輅)
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
'''집성촌'''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정안면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천안시 동면 구도리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어양리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산면 신암리, 석포리
예천군 유천면 손기리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
'''인구'''
3,216명(2015년)
1. 개요
2. 역사
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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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시조인 김상(金尙)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에서 예안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선성(宣城)은 예안(禮安)의 옛 지명인데, 후손들은 자신의 본관을 선성으로 하여 현재에는 두 이름을 같이 쓴다.[1]
2세손 김존성(金存誠), 3세손 김돈부(金敦富), 4세손 김희보(金希寶)까지 본관인 예안에서 호장을 쭉 지냈다. 그러다 조선 때 5세손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密直使), 6세손 김뉴(金紐[2])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손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역임하며 명가의 자질을 보였다.
8세손 김로(金輅)는 벼슬이 좌우위보승낭장에 일렀으나, 손자 김담(金淡, 1416~1464)이 출세하여 가선대부 호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김로의 아들인 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 대 가문이 커졌고, 넷은 예안 김씨의 중시조(中始祖)이다. 김담은 이조판서까지 지냈고, 문절공(文節公)이란 시호까지 받았으며 서원에도 배향되었다. 김담(金淡)의 현손인 참판공 김륵(金玏)은 대사헌을 지내고 역시 서원에 배향되었다.
분파론 교리공파(김증), 문절공파(김담), 통찬공파(김홍), 참판공파(김신), 대사헌공파(김지), 장령공파(김비), 학생공파(김존의) 등 총 7개로 분파되었다.

3. 인구


2000년에는 4,859가구 총 15,313명이였으나, 2015년에는 3,216명으로 1/5 수준으로 줄었다.
[1] 통계청에선 선성 김씨로 나온다.[2] 맺을 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