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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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김씨 왕가의 시조이자 경주 김씨, 강릉 김씨를 비롯한 현대 신라계 김씨의 시조.[4] 일반인들이 착각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박씨 왕조의 시조 박혁거세나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와 달리 김알지 본인이 생전에 신라 왕위에 오르지는 않고 김알지의 후손들이 왕위에 올라 추존된 것이다. 김알지가 기록상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의 탈해 이사금 편인데 이에 따르면 김알지는 탈해 이사금의 양자로 들어가 대보의 관직을 하사받았다. 김씨가 처음 왕으로 등장하는 것은 제13대 미추 이사금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신라본기에 "전설이라 솔직히 안 믿기지만 옛날 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이니 일단 써 놓는다."라고 적어놨다.[5] 사실 유학자 김부식은 괴력난신 술이부작에 기초해 박혁거세나 석탈해는 물론 고구려 동명성왕 신화도 믿을 수 없다고 하였고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자라와 물고기가 강을 건너는 주몽의 징검다리가 되어준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김부식 개인에 대한 평가를 떠나 현대인의 기준으로도 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므로 김부식의 이런 평가 자체는 합리적이다. 따라서 전설의 내용을 관찬 사서에 쓸까 말까 고민했던 흔적이다.
2. 설명
《삼국유사》에서도 알지 신화가 등장하는데 《삼국사기》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보이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동일하다.九年 春三月 王夜聞 金城西始林樹間 有鷄鳴聲 遲明遣瓠公視之 有金色小櫝 掛樹枝 白雞鳴於其下 瓠公還告 王使人取櫝開之 有小男兒在其中 姿容奇偉 上喜謂左右曰 此豈非天遺我以令胤乎 乃收養之 及長聰明多智略 乃名閼智 以其出於金櫝 姓金氏 改始林名雞林 因以爲國號
9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의 시림(始林)의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기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짝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金)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그것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이 설화의 내용은 박씨와 석씨보다 김씨가 우월하다는 점을 그들의 토템인 닭과 연결시켜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영평(永平) 3년 경신(庚申)【중원(中元) 6년이라고도 하나 잘못이다. 중원은 2년 뿐이다】 8월 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걸어가는데, 크고 밝은 빛이 시림(始林)【구림(鳩林)이라고도 한다.】 속에서 비치는 것이 보였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쳤는데 그 구름 속에 '''황금(黃金)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빛은 궤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또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이 모양을 호공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니 동남(童男)이 있는데 누웠다가 곧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赫居世)의 고사(故事)와도 같았으므로 그 말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閼知)라고 이름지었다. 알지란 곧 우리말로 소아(小兒)를 일컫는 것이다.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췄다. 왕은 길일(吉日)을 가려 그를 태자로 책봉했다. 그는 뒤에 태자의 자리를 파사왕(破娑王)에게 물려 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金櫃)에서 나왔다 하여 성(姓)을 김씨(金氏)라 했다. 알지는 열한(熱漢)[6]
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 혹은 구도仇刀)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味)鄒)를 낳으니 미추(未鄒)가 왕위에 올랐다. 이리하여 신라의 김씨(金氏)는 알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삼국유사》'''
알지는 훗날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김세한(金勢漢), 혹은 김열한(金熱漢)(김성한)이며[7] 이후 김알지의 후손인 미추 이사금이 왕위에 오르면서[8] 신라의 김씨 왕조가 시작된다.味鄒尼師今立【一云味照】 姓金 母朴氏 葛文王伊柒之女 妃昔氏光明夫人 助賁王之女 其先閼智 出於계林 脫解王得之 養於宮中 後拜爲大輔 閼智生勢漢 勢漢生阿道 阿道生首留 首留生郁甫 郁甫生仇道 仇道則味鄒之考也 沾解無子 國人立味鄒 此金氏有國之始也
미추 이사금(味鄒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일설에는 미조(味照)라고도 하였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이칠(伊柒)의 딸이고, 왕비는 석씨 광명부인(光明夫人)으로 조분왕의 딸이다. '''그의 선조 알지(閼智)는 계림에서 났는데 탈해왕이 데려다가 궁중에서 키워 후에 대보(大輔)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으며,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다. 그리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는 곧 미추왕의 아버지이다. 첨해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3. 정체가 뭐냐?
김알지의 실존 여부와 더불어 실존했다면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는 의견들도 분분하다. 신라 당대 기록인 문무왕릉비와 흥덕왕릉비 등에 등장하는 신라의 태조 성한왕(星漢王)을 김알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비문에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과 달리 김알지는 등장하지 않으며 김성한이라는 인물이 시조[9] 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한왕은 '알지'보다는 '성한'과 음이 더 유사한 김알지의 아들로 기록된 세한(혹은 열한)으로 보는 견해, 김씨 왕조의 시작인 미추왕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비석에 기록된 대수를 타고 올라가면 경주 김씨 족보에 기록된 세한이 성한왕의 대수에 해당된다. 당시 이름이 한문의 음차였던 것을 감안하면 성한왕(星漢王)=세한(勢漢)일 가능성이 높으며 김알지는 왕권을 위해 신화적으로 1대를 격상하여 등장하게 한 신화상의 왕으로 볼 수 있다. 문무왕릉비, 흥덕왕릉비, 김인문 묘비에 기록된 성한왕의 금수레 설화와 알지 거서간이라는 이명을 지녔던 박혁거세의 난생 설화가 융합되어 삼국사기의 김알지 설화가 탄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또한 고구려인들이 머리에 깃털을 달고 다니는 것을 신라인이 닭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어서 고구려인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10] 다만 조우관은 고구려인만 쓴 게 아니고 동아시아 한민족 문화권의 공통적 복식으로 원래 신라인들도 많이들 썼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고구려계라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한 전개이기는 하다.
문무왕릉비에 등장하는 김일제가 흉노의 왕자였다는 근거로[11] 흉노족 신라 왕족설을 차용한다면 알지는 금(金)을 뜻하는 몽골어 "알트"와 같은 어원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당시 몽골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고대 흉노어는 중세 몽골어와도 매우 달라서 우연일 뿐이며 오히려 튀르크어 계통의 "altin"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고구려가 몽고족의 조상격인 지두우족을 유연과 분할 점령했다지만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씨 일가가 당나라 문화 유입 이후 많은 한반도 토착민들은 한자 성씨를 사용하였고 김씨 또한 문헌에 나올 수 있는 긴 역사를 가지며 정통성을 높이고자 성이 같은 흉노 문신인 김일제를 끌어다 족보에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금관가야 김수로 세력과 관련된 사람을 양자로 들였다는 주장이나 마한 출신 왕족으로 마한 부흥 운동을 일으킨 사람일 것[12] 이라는 주장들이 있다.금(金)으로 사람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므로 김씨(金氏) 성을 하사했다.
'''《한서》 열전 김일제'''
4. 이름에 대한 해석
알지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한데 《삼국유사》에서는 '아지' 즉 "아기(아이)"라는 뜻이라고 해석을 했다. 실제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명왕후도 아명으로 '아지'를 사용했고 현대어의 강아지, 송아지, 돼지(돝/도+아지) 등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물론 이는 후대인 고려시대에 일연이 붙인 해석이라 김알지 당대에도 그리 사용됐는지는 의문.
최근에는 "알"부족, 즉 "금(金) 부족의 족장"이라는 견해가 설도 있다.하지만 알과 금이 왜 같은 의미인지 확실치 않다.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설화에서도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와 맨처음 한 말이 "알지거서간"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알지"라는 단어는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신라 초기 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신라의 초기 역사는 비록 삼국사기 등에서 상당히 큰 국가로 기록되어 있지만 고고학적 근거 상으로는 경주 도시국가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것이 기정 사실이다. 이 때문에 박/석/김 3개 가문은 한 나라의 왕이 아닌, 사로국(경주) 및 주위 도시국가의 맹주나 그 비유 등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5. 관련항목
알지에서 '알'은 금(金)을 뜻한다는 견해가 가장 합리적으로 본다. 특히 알타이산은 그 뜻이 금산(金山)이다. 알타이계통의 언어에서는 '알'이라는 말은 결국 '금'을 뜻하므로 결국 '알지'는 김씨라는 의미를 가진다. 김알지의 김은 알지를 한자어와 겹쳐 쓴 말이다. 세한왕은 쇠왕, 즉 김씨왕의 뜻이다. '한'은 '왕'이라는 뜻(예를 들어 징키스칸의 '칸'은 '한'으로도 읽힌다)이므로 뒤의 왕과는 겹친 말이다. 한자어와 우리 고유어를 겹친말로 쓰는 예는 지금도 보인다(역전앞 등). 결국 알지와 세한왕은 같은 의미로 보인다.